등록 : 2012.07.11 18:25
수정 : 2012.07.11 18:25
[매거진 esc] 나의 첫 화장
얼굴에 바르는 건 연고만 알던 나에게 화장은 먼 것이었다. 팽팽하던 피부에 이상이 온 건 강원도 화천의 칼바람 때문이었다. 영하 30도의 강추위 앞에서 얼굴 피부는 갈라졌고 모공은 넓어졌다. 노화의 급격한 진행. 의료용으로 큰 용량의 베이비로션을 샀다. 벽에 도배하듯 흥건히 처발랐다. 심미적인 기능은 차치하고 철저하게 실용과 의료에 입각한 드럼통 베이비로션은 겨울용 약품이나 다름없었다. 제대하고 여자친구에게 남성 전문 스킨과 로션을 선물받으면서 내 피부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도래하고야 말았다. 고교 시절부터 꾸준히 동년배보다 5살 선배의 형상을 하고 있던 내 ‘용안’은 잠에서 깨어나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아기같이 수줍게 스킨과 로션에 무장해제당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비롯되었다. 선물을 매번 받을 수도 없는 것이고 가난한 고학생이라 남성 전문화장품을 사기 어려웠다. 동물성 사료만 먹던 강아지 메리가 삼겹살을 맛본 뒤 단식투쟁을 벌이는 것처럼 내 피부는 싸구려 화장품을 거부하며 피부 트러블이라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투쟁과 파업을 마냥 용인할 수 없는 처지라 싸구려 스킨과 로션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그것도 거부하면 베이비로션 지급 중단이라는 채찍을 같이 써 겨우 진압했다.
김수경/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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