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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지하층의 보존용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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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낡아서 훼손된 서적들 복원·보존 작업하는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센터
책도 사람처럼 늙고 병든다. 대한민국의 모든 책이 영구 수장되는 국립중앙도서관. 1997년 소장자료 300만건을 돌파한 이래 2~3년마다 100만건씩을 늘려 2001년 400만, 2004년 500만, 2006년 600만, 2008년 700만, 2011년 800만건을 넘겨 올 6월30일 현재 857만788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납본받은 책은 77% 657만3013건. 도서관자료를 발행 또는 제작한 경우, 그 발행일 또는 제작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그 도서관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야 한다는 도서관법 제20조(도서관자료의 납본)에 따른 것이다. 도서관은 이들 자료를 지하 3~5층 1만2766㎡ 보존서고에 온도 20±2℃, 습도 40±5%의 항온항습 장치를 두어 관리한다. 이곳의 책 역시 세월에 장사가 없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센터를 찾았다. 본관 옆 자료보존관 2층 250평에 자리한 자료보존센터는 일종의 ‘책 병원’. 아픈 책들을 입원·치료하는 곳이다. 보존·복원처리실, 보존과학연구실, 매체변환실, 전자매체보존처리실, 제본실, 탈산처리실, 자료촬영실 등 7개 전문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훼손되는, 또는 훼손된 자료를 보존처리 또는 복원하며, 그 작업이 끝난 귀중자료를 반영구적인 마이크로필름에 옮겨담는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절굿공이처럼 들릴 만큼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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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존센터 탈산처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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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지나면 누렇게 바스러져
중성화로 수명 2~3배 늘려 처음 안내된 곳이 탈산처리실. 1980년대 이전에 생산된, 골병든 산성지 자료를 치료하는 곳이다. 산성지는 잉크의 번짐을 막으려 펄프에 황산알루미늄을 섞어 만든 탓에 시간이 지나면 황화현상을 일으키면서 쉽게 바스러진다. 대개 수명은 50년, 길어야 100년이다. 탈산처리실에서는 pH 4.0~5.0으로 산성화한 80년대 이전의 책자 속지에 알칼리성 약품인 산화마그네슘과 탄산칼슘 가루를 침투시켜 종이 내부를 pH 7.0~8.0인 중성상태로 바꿔준다. 그럼으로써 종이의 산성화를 막고 보존수명을 2~3배 늘려준다. 알칼리성 가루를 푼 휘발성 용액에 2박3일 동안 책자를 담가 페이지마다 가루가 충분히 달라붙도록 하는 방식이다. 탈산처리기 두대를 풀가동해 한해 4000권을 산성화로부터 구출해내고 있다. 신문, 지도 등 대형자료, 또는 훼손 정도가 심한 자료는 손으로 뿌리는 방식을 쓴다. 한혜원 연구관은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본질적이란 점에서 탈산처리를 ‘보험 들기’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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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열람용 책을 수리, 복원하는 제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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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전자매체보존처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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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본실은 정형외과
보존·복원처리실은
생명 불어넣는 심장수술실 자료보존센터의 꽃은 보존·복원처리실. 소장문화재, 귀중본, 보존용 자료의 건·습식 세척, 부분배접, 결실부분 보강, 리프캐스팅, 재제본 등을 맡고 있다. 심장 수술실이랄까. 흰 가운을 입은 정희수씨는 붓, 메스, 핀셋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1914년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청춘> 합철본을 낱권으로 해체해 수리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표지에 붙인 분류기호 견출지를 조심스럽게 떼어내니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그린 인물 표지화의 표정이 드러났다. 무심한 것은 견출지뿐이 아니다. 아름다운 표지에는 장서인이 붉은 인주로, 대출기간 제한 알림이 푸른 잉크로 큼지막하게 찍혀 있다. 표지를 들추자 원래의 실 제본 구멍 외에 여러달치를 묶을 때 박았음직한 스테이플러 구멍, 도서관 합철제본을 위해 뚫었던 노끈구멍이 보였다. 관리의 편리와 수명보존을 위한 조처가 오히려 책을 훼손하고 있었던 것. 그는 군데군데 찢어진 낱장마다 전분풀을 먹인 얇은 한지를 붙여나갔다. 원래의 종이와 색맞춤한데다 반투명하기 때문에 수리한 흔적은 흉하지 않고 활자가 그대로 보였다. 그는 한해 동안 잡지 합철본 5책을 풀어 보존처리를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복원하고 나면 주변에서 그런 게 있었느냐며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6년차인 정씨는 남들이 모르는 곰팡이 냄새를 분간하다 보니 집안일을 할 때도 민감하게 되더라며 웃었다. 보존과학연구실 박소연씨는 최근 한지펄프를 이용한 리프캐스팅 실험에 성공했다. 리프캐스팅이란 바스러져가는 종이자료를 낱장 복원하는 기계식 배접을 말한다. 종이의 물리적 강도를 높이고 화학적인 탈산처리까지 가능해 오래된 신문의 보존처리에 이용해 왔다. 박씨는 기존의 리프캐스팅용 펄프 대신 세단기로 일정하게 잘라 물에 푼 한지펄프와 활엽수 펄프를 반반씩 섞어서 실험한 결과 강도, 지합, 불투명도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하더라고 말했다. 질긴데다 산화 속도가 느려 수명이 긴 한지펄프를 기계식 배접에 성공적으로 적용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연구결과를 학회지에 보고하고 자신이 개발한 방식으로 훼손된 <동의보감>을 배접해냈다. 그는 보통 4명이 달라붙어야 하는 일을 한사람이 해낼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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