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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25 17:58 수정 : 2012.10.08 16:44

[매거진 esc] 일산에서 성인용품점 운영하는 김씨 이야기…비아그라 물질특허 만료되면서 영업 힘들어져

“길모퉁이 일층이 편의점 자리로는 최고죠. 우리는 그렇게 하면 100% 망합니다.”

경기도 일산의 상가건물 3층에 자리잡은 성인용품점. 주인 김아무개씨는 입지조건을 묻는 기자를 딱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당신이라면 대놓고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주차장 쪽으로 난 창문 위, 빨간 바탕에 볼드체로 쓴 ‘성인용품’ 간판이 도드라진다. 인쇄매체나 전단지 등을 통한 광고를 할 수 없으니 멀리서도 눈에 띄는 자리에 눈길을 잡아끄는 간판을 내건 것이다. 정작 출입구는 측면으로 90도를 꺾어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출입하는 손님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다.

“입구 근방을 맴돌다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오죽하면 이곳을 찾아오겠습니까. 안타깝죠. 꼭 필요한 분들은 전화로 주문한 뒤 건물 입구에서 받아가기도 해요.”

김씨는 손님들이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게 아니라 호기심 가득한 20대에서 뒤늦게 애인이 생긴 80대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40, 50대가 가장 많다는데, 멋모르고 아이를 한둘 낳아 어느 정도 가정이 정착된 다음 부부간 성생활의 즐거움에 눈뜨면서 좀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했다.

“단골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자주 온다고 해봐야 한 달에 한 번이니까 의미가 없어요. 낯이 익었다고 해도 아는 척할 수 없어요. 해서도 안 되고요. 그게 여기서 통하는 불문율입니다.” 보험이나 자동차 업계가 안면영업을 하는 것과 달리 불특정 다수가 주고객이다.

“길모퉁이 일층 자리
우리는 거기다 자리 펴면
100% 망해요”

손님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은 5분 남짓. 길어야 10분이다. 주인과 손님의 대화는 거의 없다. 대개는 필요한 것을 미리 찍어서 오기에 용품의 위치를 묻는 게 고작이다. 주인은 물어올 때만 응대할 뿐, 손님의 동태에 무관심한 척한다. 물건을 골라오면 사용하는 방법을 아주 간단히 설명해줄 뿐이다. 그조차도 생략하기 일쑤다.

손님과 손님 사이도 단절돼 있다. 자연스런 칸막이가 되도록 물건들을 쌓고 걸었다. 자기 외 다른 사람의 존재가 껄끄러운 것. 같은 시간대에 머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무엇을 찾는지 곁눈질하거나, 정면으로 얼굴을 쳐다보는 것은 말 안 해도 금기다. 눈길이 머무는 자리가 곧 내밀한 사생활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결제는 대부분 현금. 불가피하게 카드를 쓸 때는 명세표에 업체 이름이 어떻게 찍히는지 먼저 확인한다고 한다. 실제 성인용품점은 도소매업으로 분류돼 있다. 그것도 완구점. 하긴 취급품목이 성인 장난감이기는 하다.

손님이 따로 들고 따로 나가는 풍경은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 회원은 200여명. 이들은 카페에서 유령처럼 정보를 얻어간다. 혹여 질문을 올리거나 용품을 주문할 경우 볼일이 끝나면 자신의 흔적을 반드시 삭제한다. 그래서 게시판은 텅 비어 있다. 그러므로 회원 간의 정보교환은 없다.

포장지가 검은 비닐봉지인 것도 같은 맥락. 일단 포장을 하면 내부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거리에서는 술이나, 과자와 구분되지 않는 ‘상품’이 되었다가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비로소 ‘물건’으로 바뀐다.

공적인 단절 이면에는 은밀한 공간에서의 귀엣말 입소문이 전제돼 있다. 써보니 어떻더라는 또래집단의 술자리 담화는 곧 정보가 된다. 귀엣말은 얇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파 경로. 따라서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한번 평판을 그르치면 치명적인 것은 그런 탓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한테
포상 차원에서라도
성적인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품질에서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번지면 당장 매출에 영향을 줍니다. 품질관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용품점의 잇따른 폐업도 품질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게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얼마 전 이웃한 상가의 한 매장이 문을 닫았다면서 신제품 동향에 둔감한 채 값싼 중국제 판매에 미련을 둔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비아그라에 대한 물질특허가 만료되면서 비공식 약품판매에 타성적으로 의존해온 매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업계 근황을 전했다.

“성인용품은 일정한 재질이나 규격 등 품질기준이 없어요. 수입과 유통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한번 사용한 분들이 불만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문제가 없다고 간주할 뿐이죠. 여기서는 무소식이 희소식입니다.”

서울의 한 성인용품점 주인은 당국의 고루한 법 적용을 성토했다. 넘쳐도 곤란하겠지만 숨쉴 공간은 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

“가장 억지스러운 데가 세관입니다. 성기와 모양이 비슷하대서 공식적으로는 보조용구를 통관시키지 않습니다. 의수와 의족이 손발과 비슷하다고 단속하지 않잖아요?”

그는 언제까지 금욕적인 유교전통에 매달릴 거냐면서 이제 음지의 성인용품을 양지로 끌어내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고 말했다. 개업한 지 8년 됐다는 그는 초기 4~5년까지 식구들한테 그 사실을 숨겼다고 털어놨다.

“우리나라의 40~50대들 정말 불쌍해요. 남자들은 밖에서 죽어라 일만 하고 주부들 역시 국가의 노동자원을 재생산하느라 노심초사하면서 서로간의 애틋한 감정을 잃고 있어요. 열심히 일한 사람들한테 포상 차원에서라도 성적인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는 맨손체조도 좋지만 헬스기구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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