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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카페 테라스의 밤> 모델이었던 아를의 한 카페와 실제 작품(작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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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유럽미술기행 중에 도착한 고흐의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27㎞가량 떨어진 오베르쉬르우아즈. 전형적인 시골마을이 이름을 얻은 것은 그곳에 고흐가 묻혀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미술에 입문한 그는 8년여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900점의 그림과 1700점의 스케치를 남겼다. 죽기 한해 전 작품 한점을 팔았을 뿐, 동생 테오가 대주는 돈으로 연명했던 그에게 캔버스에 찍어 올린 물감 튜브 하나하나는 식사 한 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는 추위에 떠는 겨울 밀처럼 마지막 두달 동안 이곳에서 8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로마~피렌체~니스~생폴드방스~아를~파리를 경유하는 유럽미술기행. 12일 여정 끝에 비로소 인상파에 이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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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마차가 지나던 랑글루아 다리는 기능을 잃은 채 기념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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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니의 정원 등
고흐 그림 속 장소가 곳곳에 서른일곱 고흐가 숨을 거둔 라부 하숙집 다락방. 그곳으로 통하는 나무계단은 낡아서 삐걱거렸고, 침대 하나와 세숫대야 하나면 족한 방에는 천창에서 떨어진 햇볕이 사선을 그렸다. 수도사처럼 외로운 고흐의 시간이 박제된 그곳에 들어가기가 부담스러웠다. 티끌세상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고흐의 방 전후에 거쳐야 하는 기념품 매장이 훨씬 넓고 편했다. 골목에서 문득 만난 <오베르의 계단>. 아낙 넷이 걸어 들어가는 골목길에 동양인 30여명이 두런거렸다. 오른쪽으로 난 계단에는 잡초가 어지럽고 그림 속 빨간 지붕의 건물은 무성한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꺾어 3~4분 걷자 뾰죽한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회를 바라보면서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면 성모교회는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듯한 모양으로 서서히 바뀐다. 아! <오베르의 교회>다. 꿈틀거리는 교회는 그가 즐겨 그렸던 사이프러스의 변형.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향이 종탑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로 치환된 것. 고흐가 이젤을 놓고 몽당붓 방아를 찧었을 법한 자리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자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진득하니 머물며 고흐의 기도에 동참할 수는 없는가. 오른쪽 언덕길은 무덤으로 가는 길. 가난한 화가는 죽어서도 공동묘지 뒤쪽 구석자리에 묻혔다. 육개월 뒤 그의 분신이었던 동생 테오가 뒤를 따랐고 1914년에 형의 곁으로 옮겨왔다. 형제의 무덤에는 봉분 대신 아이비가 무성했다. 화가는 죽은 뒤 서서히 빈센트 빌럼 반 고흐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은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빛난다. 살아서 이름없고 죽어서 이름없을 사람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앞서 묵상에 잠기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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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실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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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위해 주민들이 밀농사
오베르역은 갤러리 겸해 묘지 맞은편 밀밭으로 난 길. 주민들은 관광객을 위해 밀을 심고 고흐의 그림 입간판을 세웠다.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밀밭과 꿈틀거리는 코발트 하늘이 대비를 이루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가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밀밭은 한참 전에 수확이 끝나고 뙤약볕에 그루터기 색이 바랬다. 까마귀 대신 비행기들의 배기가스가 너절한 직선을 그렸다. 주민들은 까마귀까지 날려 현장을 재현하고자 했다는데 다른 데로 날아가 버렸다나 어쨌다나. 무덤을 본 사람들은 서둘러 식당으로 갔다. 일행과 떨어져 들른 오베르역. 열차가 하루 몇 차례 다닐 뿐인 그곳은 갤러리를 겸했다. 길 건너 고흐공원은 마을 노인 몇몇이 벤치에서 무료한 시간을 죽였다. 비쩍 마른 동상 속 고흐는 오른손에 초크를 쥐고 있었는데, 초크의 끝이 닳아서 반짝거렸다. 필시 나처럼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쥐었다 놓았다 한 흔적이리라. ‘가셰 의사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만국기가 걸린 ‘마을호텔’을 만났다. 뜰 앞에 주차한 자동차들을 제거하면 <오베르 마을회관>이 분명 맞는데 안내판이 없다. 피자집에서 피자 한판을 사서 나처럼 길을 잃은 숙녀 한분과 골목길 그늘에 자리를 폈다. 식후에 찾아간 ‘의사 가셰의 집’. 담벼락에 붙은 <의사 가셰의 초상> 속에서 박사는 삐딱하게 고개를 고인 채 이렇게 물었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마을을 헤매고 다니는 이유가 뭔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보는 즐거움이 하나. <카페 테라스의 밤> <별이 빛나는 밤에> 등 고흐가 오베르쉬르우아즈로 오기 직전 2년 반 동안 머문 아를에서 시작된 놀이다. 왜 그는 하필 그 자리에서 스케치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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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쉬르우아즈 공동묘지에 있는 고흐 형제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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