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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9 18:19 수정 : 2012.08.29 18:19

충북 충주시의 벤츠대형당구클럽. 휴가철이라 주말 저녁인데도 한산했다.

[매거진 esc] 당구장 대형화 숨은 속사정…향유인구 고려한 현실적 대책 나와야

24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당구장. 지하 50여평, 8대의 당구대 가운데 세 팀만이 들어 당구를 즐겼다. 주인은 게임 중간중간에 당구대 턱과 바닥을 걸레질하고 당구공을 바꿔주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 빈 컵을 거두어 새 음료수를 채우고 수북한 재떨이를 비웠다. 10년 이상 당구장을 했다는 주인은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여기는 동네 놀이터라며 일산 같은 큰 데를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저녁 충북 충주시에서 가장 크다는 당구장. 9대의 당구대에 역시 세 팀이 당구를 쳤다. 얼마 전 당구장을 인수했다는 김아무개씨는 다음달 확대개업을 할 예정이니 그때 다시 오라고 했다. 왜 그럴까?

인천시 부평에서 활동하는 당구 전문가 박아무개씨를 어렵게 만나 당구계 현황을 듣고 그 궁금증이 풀렸다. 두 차례 당구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현재 당구장 매매 알선을 하고 있다. 그는 당구업계가 대형화·고급화 추세 한가운데 있다고 했다.

“외환위기 직전 당구장이 3만군데가 넘었어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도 하죠. 차려놓기만 하면 영업이 된다고 했지요. 위기가 정리될 무렵 그 숫자는 1만5000군데로 반토막 났지요. 그 뒤부터 점점 늘기 시작해 작년에 2만6000군데에 이르렀습니다. 5년이면 세 차례 주인이 바뀔 정도로 과포화상태예요. 당구장은 5년 주기로 움직이는데 지금은 경기 자체가 불황인데다 자체 사이클도 바닥입니다. 매장별로 환경, 시설, 서비스 등 죽기살기 경쟁입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가 대자본 위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점수 계산을 위한 스코어보드
외환위기 후 반토막 났던
매장수 거의 복원됐지만
부익부 빈익빈 심화

“전에는 중간 크기의 당구대인 중대밖에 안 쳤는데 요즘은 대형 당구대인 대대를 엄청 많이 쳐요. 대대는 스리쿠션 전용인데, 요즘에는 70~80%가 스리쿠션을 치기 때문이죠. 큰 당구장을 가면 대개는 대대가 있기 마련이라 손님들도 그런 데로 몰리는 거죠. 그러니 작은 당구장이 죽을밖에요.” 스리쿠션으로 통일되다시피 한 당구계의 현실도 이런 대형화 추세에 큰 몫을 한다는 얘기다. 예외적이라 할 정도로 한국이 유독 편애가 심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치는 것은 공을 누가 먼저 구멍에 집어넣느냐를 겨루는 포켓볼. 우리도 1990년대 초 한때나마 붐이 일었다. 번화가에 전용 당구장이 5~6개나 생겨날 정도였다. <컬러 오브 머니>(1986)라는 폴 뉴먼,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당구를 치든 안 치든 큐 가방에 큐를 넣어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포켓볼이 반짝 유행했던 반면 일본은 완전히 포켓볼로 돌아섰다. 현재 스리쿠션에서는 한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구장의 문제로 쏠림현상 못지않게 법규의 미비를 꼽는다.

현재 당구장은 청소년 유해시설로 분류되어 정화구역인 학교 주변 반경 50m 안에는 들어설 수 없다. 50m 밖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신고만 하면 누구나 개업할 수 있다. 동시에 스포츠 시설이기도 하다. 청소년들, 특히 초등학생들도 당구장에 와서 당구를 칠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하면 금연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아요. 술을 파는 것도 곤란하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당구장은 금연법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됐어요. 본래 올해 말부터 적용하려다가 2015년까지 연기됐고 당구업자들의 모임인 당구협회에서 반발하며 제외된 거죠.” 애초 법 자체도 구멍투성이였다. 벌금 대상이 손님이었던 것. 업주가 대신 내겠다고 하면 금연법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에 따라 금연법을 대비해 발빠르게 칸막이 된 별도의 흡연부스와 환풍시설을 갖췄던 일부 업주만 손해 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구도박을 다룬 영화 <컬러 오브 머니>의 한 장면(위), 영화 <폭력써클>의 한 장면(아래)
스리쿠션 칠 수 있는
대형 당구대 선호
법규 미비로 부정적 인식 여전

인천시 부평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또다른 박아무개씨는 몹시 격앙했다. “당구 인구가 1000만입니다. 야구, 축구, 골프와 함께 메이저 스포츠에 속하죠. 그렇게 많은 인구를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방치된 스포츠가 없어요. 골프를 보세요. 인구는 당구보다 훨씬 적은데, 시설이나 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요. 골프는 레슨프로가 많아도 먹고살아요. 당구는 완전히 사각지대예요. 정부에서는 법규 정비를 생각하지 않아요.”

전문가들은 바닥에 깔린 당구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지적한다. 가수 이승기의 한 뮤직비디오에서도 싸움의 무대가 당구장으로 나올 정도다. 또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가운데 공개적으로 당구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고 업체를 관리하는 공무원이 그렇다. 그들은 아직도 당구장 하면 폭력배들의 온상이고 툭하면 싸움이 일어나는 곳으로 생각한다고. 동호인이 당구보다 적은 종목이 제도적인 뒷받침을 받는 데 비해 당구가 찬밥 신세인 것도 그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구는 야구처럼 대통령기 쟁탈 대회 같은 게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갈등이 없지는 않죠. 한국의 당구 역사를 보면 순종 때 일본인에 의해 도입된 고급 사교 스포츠였어요. 당구장에 독립군이 숨어 지냈다고도 합니다. 나쁜 인상은 자유당 때 만들어졌어요. 그때부터 당구장은 조폭 아지트가 되어 뻑하면 칼부림이 나고 공이 날아다녔죠. 지금은 안 그래요.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되었고 한국 선수들이 메달도 땄죠.”

당구는 도시인들이 즐기기에 맞춤하다. 특히 노령화 사회에 적합한 운동이다. 큰 힘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허리·팔다리 운동이 된다. 걷기 운동도 만만치 않다. 테이블 한 바퀴를 돌면 10m인데, 한 시간이면 1㎞를 걷는 셈이다. 실외운동인 게이트볼은 겨울에는 못하지만 당구는 사계절 가능하다. 당구가 제구실을 할 때는 언제일까.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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