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정선 덕산기계곡 들머리, 취적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내려다본 동대천의 물돌이 지형. 둥글게 보이는 곳이 언내뜰이다.
|
[매거진 esc] 여행
강원도 청정고을 정선 덕산기계곡 트레킹
|
덕산기계곡 물길 옆의 한 민박집 팻말.
|
관광객 몰리기 시작
청정자연 훼손될까 근심 다시, 걸어다니기 좋은 때다. 지금 모든 길들은 호젓한 가을 골짜기를 향해 뻗어 있다. 골짜기를 메웠던 소란한 텐트 무리도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다시 맑고 높은 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하다. 깊고 맑은 골짜기 중에서도 물빛이 별나게 아름답다는 골짜기로 떠난다. 강원도 청정고을 정선땅 덕산기계곡. 찻길도 오솔길도 제대로 없는 덕산기계곡의 상류 물길 탐방이다. 누구든 이런 길에 들어 왕복 너더댓시간, 무인지경의 물길 산길을 구름처럼 흐르다 돌아나온다면, 눈빛도 마음결도 가을처럼 깊고 고요해지지 않을 수 없을 터다. 덕산기계곡은 정선군 정선읍 여탄리에서 덕우리 거쳐 화암면 북동리로 뻗은 10여㎞의 물길이다. ‘정선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처럼 굽이굽이 휘고 돌고 늘어진 물길 따라, 흐르고 고인 옥빛 물줄기와 수직으로 솟은 뼝대(절벽)들이 이어진다. 몇년 전까지 오지 탐방꾼들만 찾아드는 곳이었으나,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여름철 피서객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피서객들 발길은 대개 방송을 탄 계곡 들머리 덕산1교 부근에 집중된다. 상류 쪽은 여전히 드나드는 이들이 뜸해 한적한 ‘오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덕산3교 지나 ‘(차량)출입금지’ 차단기 앞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해 마지막 민박집(게스트하우스) 지나 아담한 폭포가 있는 너럭바위까지 5㎞가량의 계곡을 둘러봤다. “전국 계곡 여기저기 가봤지만, 그런 물빛은 첨 봤어요. 옥빛이 이런 빛깔이구나 했다니까요.”(서광원씨·53·서울 월계동) “큰비 온 뒤 사흘 뒤부터 일주일 사이에 오세요. 물이 줄어 잔잔해져야 보석 같은 물 빛깔을 만날 수 있습니다.”(홍성국씨·44·덕산기계곡 게스트하우스 주인) 탐방에 앞서 귀에 담아뒀던 덕산기계곡 ‘물빛 예찬’들에 대한 기대감은, 계곡 탐방 전날 밤새 쏟아진 폭우에 쓸려 사라져버렸다. 수량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차단기에서부터 마지막 민박집까지 가는 동안 허벅지까지 적시며 조심스레 물길을 건너야 하는 곳만 10여곳. 하지만 거센 물살 속에서도 느껴지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물빛은 ‘환상적 덕산기 물빛’이 어떤 빛깔인지 짐작하고도 남게 해줬다. 절벽 밑마다 이룬 거대한 물웅덩이들엔 진초록 물이 고이고 흐르며 강바닥의 흰 자갈밭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평평한 자갈밭을 얇게 덮고 흐르는 물조차 연초록 물감을 푼 듯 영롱했다.
|
정선 장날 만난 새총·짚신 노점.
|
|
덕산기계곡의 한 폭포. 비가 와야 모습이 드러난다.
|
폭포와 물줄기
맑은 옥빛으로 탄성 나오네 특이한 것은 폭우 땐 계곡의 수량이 급격히 늘지만, 며칠 지나면 물이 다 빠져버려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평소엔 거의 말라 있다시피 한 건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 와야 하천’인데, 물길 따라 걷는 동안 전날 폭우로 생긴 ‘비 와야 폭포’도 네댓개나 나타나 물줄기를 쏟아부었다. 폭포 중 하나는 ‘나가라 폭포’라는 별칭을 가졌다. “저 폭포가 물줄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탐방객들은 지체없이 이 계곡에서 나가야 합니다. 물이 불어 며칠씩 고립될 수 있으니까요.”(김욱철씨) 물이 빠지면 물 흐름은 끊기지만, 주민들 집터 부근의 물길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선인들이 물이 마르지 않는 곳에 집터를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덕산기계곡 물길은 오래전부터 정선읍과 북동리를 잇는 옛길로 이용된 곳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골짜기 안에 40여집이 살았다고 한다. 구진베리(굽은 절벽·굽은탱이)·새질내기(새로 길 낸 곳)·미네미(뫼넘이)·도사골(산 사이 골짜기) 등 정겨운 옛 이름들이 계곡 곳곳에 남아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물길 따라 500m쯤 오르면 수량이 제법 풍부한 물웅덩이 옆에 널찍한 바위자락이 나타나 앉아 쉴 만하다. 여기서 2㎞쯤 더 오르면 물길이 갈리는 지점인 북동리(북동교)다. 다시 왼쪽 물길로 3㎞를 더 오르면 물탱크 지나 오른쪽 작은 골짜기 초입에 ‘옻물내기’ 약수터가 있다. 예로부터 피부병에 좋다는 약수다. 덕산기계곡 들머리엔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취적봉(728m)이 있다. 이 산에 폭군 연산군의 네 아들에 얽힌 얘기가 전해온다.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의 어린 아들 넷이 이곳으로 유배된 뒤, 산 밑 절벽(취적대)에서 피리를 불며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네 아들은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짧은 삶을 마쳤다고 전해온다. 덕산기 물길이 동대천(동천)과 합쳐지는 지점의 절벽인 낙모암 앞쪽에 취적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바위능선길이 있다. 이 능선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방울처럼 보이는 물돌이 지형(언내뜰)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덕산기계곡은 평소엔 물이 적으므로, 비가 내린 뒤에 찾는 것이 좋다. 알맞은 수량이 유지돼야 걷는 맛도 상쾌하고, 옥빛 물색깔 감상도 가능하다. 정선=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