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9.05 17:37 수정 : 2012.09.05 17:37

강원도 정선 덕산기계곡 들머리, 취적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내려다본 동대천의 물돌이 지형. 둥글게 보이는 곳이 언내뜰이다.

[매거진 esc] 여행
강원도 청정고을 정선 덕산기계곡 트레킹

덕산기계곡 물길 옆의 한 민박집 팻말.
‘1박2일’ 소개되며
관광객 몰리기 시작
청정자연 훼손될까 근심

다시, 걸어다니기 좋은 때다. 지금 모든 길들은 호젓한 가을 골짜기를 향해 뻗어 있다. 골짜기를 메웠던 소란한 텐트 무리도 사라지고, 그 자리엔 다시 맑고 높은 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 물소리만 가득하다. 깊고 맑은 골짜기 중에서도 물빛이 별나게 아름답다는 골짜기로 떠난다. 강원도 청정고을 정선땅 덕산기계곡. 찻길도 오솔길도 제대로 없는 덕산기계곡의 상류 물길 탐방이다. 누구든 이런 길에 들어 왕복 너더댓시간, 무인지경의 물길 산길을 구름처럼 흐르다 돌아나온다면, 눈빛도 마음결도 가을처럼 깊고 고요해지지 않을 수 없을 터다.

덕산기계곡은 정선군 정선읍 여탄리에서 덕우리 거쳐 화암면 북동리로 뻗은 10여㎞의 물길이다. ‘정선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처럼 굽이굽이 휘고 돌고 늘어진 물길 따라, 흐르고 고인 옥빛 물줄기와 수직으로 솟은 뼝대(절벽)들이 이어진다. 몇년 전까지 오지 탐방꾼들만 찾아드는 곳이었으나,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여름철 피서객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피서객들 발길은 대개 방송을 탄 계곡 들머리 덕산1교 부근에 집중된다. 상류 쪽은 여전히 드나드는 이들이 뜸해 한적한 ‘오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덕산3교 지나 ‘(차량)출입금지’ 차단기 앞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해 마지막 민박집(게스트하우스) 지나 아담한 폭포가 있는 너럭바위까지 5㎞가량의 계곡을 둘러봤다.

“전국 계곡 여기저기 가봤지만, 그런 물빛은 첨 봤어요. 옥빛이 이런 빛깔이구나 했다니까요.”(서광원씨·53·서울 월계동) “큰비 온 뒤 사흘 뒤부터 일주일 사이에 오세요. 물이 줄어 잔잔해져야 보석 같은 물 빛깔을 만날 수 있습니다.”(홍성국씨·44·덕산기계곡 게스트하우스 주인)

탐방에 앞서 귀에 담아뒀던 덕산기계곡 ‘물빛 예찬’들에 대한 기대감은, 계곡 탐방 전날 밤새 쏟아진 폭우에 쓸려 사라져버렸다. 수량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차단기에서부터 마지막 민박집까지 가는 동안 허벅지까지 적시며 조심스레 물길을 건너야 하는 곳만 10여곳. 하지만 거센 물살 속에서도 느껴지는 투명하기 그지없는 물빛은 ‘환상적 덕산기 물빛’이 어떤 빛깔인지 짐작하고도 남게 해줬다. 절벽 밑마다 이룬 거대한 물웅덩이들엔 진초록 물이 고이고 흐르며 강바닥의 흰 자갈밭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평평한 자갈밭을 얇게 덮고 흐르는 물조차 연초록 물감을 푼 듯 영롱했다.

정선 장날 만난 새총·짚신 노점.
물길을 따라 걸어오르는 동안 만난 것이라곤 주민들의 민박 손님을 실어나르는 사륜구동 차량 2대와 트럭 1대, 그리고 길을 안내해주듯 앞서 날아가다 앉고 날기를 되풀이하던 두루미 한 마리뿐. 외지인은 민박집에 묵으러 와 있던 2가족이 전부다. 초록빛 물길과 흰 돌밭길 그리고 띄엄띄엄 나타나는 시멘트길과 깎아지른 절벽들이 거듭됐지만, 시들어가는 칡꽃 향기 맡으며 깨끗한 물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은 절로 가벼워졌다.

민박집 주인 김욱철(47)씨가 말했다. “12년 전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곳이 있었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는 곧바로 빈집을 구해 눌러앉았고, 3년 전부터는 집을 따로 마련해 민박 손님을 받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가끔씩 계곡을 따라 트레킹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계곡 들머리의 취적봉 산행만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골짜기 상류 쪽이 아직 청정지대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골짜기 안에는 11가구의 주민이 산다. 이 중 4가구가 민박집을 운영한다(차단기 안쪽엔 3가구). 민박집 주인을 포함한 주민들은 한결같이 계곡으로 인파가 몰려 청정환경이 망가질 것을 걱정했다. “‘1박2일’에 소개됐지만, 이 골짜기에서 1박2일 캠핑은 말이 안 됩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홍성국씨는 “화장실 하나 없는 골짜기인데, 쓰레기 쌓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망가질 것”이라며 “특히 대형 버스들이 들어와 수십 수백명씩 풀어놓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덕산기계곡의 한 폭포. 비가 와야 모습이 드러난다.

비 올 때 반짝하는
폭포와 물줄기
맑은 옥빛으로 탄성 나오네

특이한 것은 폭우 땐 계곡의 수량이 급격히 늘지만, 며칠 지나면 물이 다 빠져버려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평소엔 거의 말라 있다시피 한 건천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 와야 하천’인데, 물길 따라 걷는 동안 전날 폭우로 생긴 ‘비 와야 폭포’도 네댓개나 나타나 물줄기를 쏟아부었다. 폭포 중 하나는 ‘나가라 폭포’라는 별칭을 가졌다. “저 폭포가 물줄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탐방객들은 지체없이 이 계곡에서 나가야 합니다. 물이 불어 며칠씩 고립될 수 있으니까요.”(김욱철씨) 물이 빠지면 물 흐름은 끊기지만, 주민들 집터 부근의 물길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선인들이 물이 마르지 않는 곳에 집터를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덕산기계곡 물길은 오래전부터 정선읍과 북동리를 잇는 옛길로 이용된 곳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골짜기 안에 40여집이 살았다고 한다. 구진베리(굽은 절벽·굽은탱이)·새질내기(새로 길 낸 곳)·미네미(뫼넘이)·도사골(산 사이 골짜기) 등 정겨운 옛 이름들이 계곡 곳곳에 남아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물길 따라 500m쯤 오르면 수량이 제법 풍부한 물웅덩이 옆에 널찍한 바위자락이 나타나 앉아 쉴 만하다. 여기서 2㎞쯤 더 오르면 물길이 갈리는 지점인 북동리(북동교)다. 다시 왼쪽 물길로 3㎞를 더 오르면 물탱크 지나 오른쪽 작은 골짜기 초입에 ‘옻물내기’ 약수터가 있다. 예로부터 피부병에 좋다는 약수다.

덕산기계곡 들머리엔 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취적봉(728m)이 있다. 이 산에 폭군 연산군의 네 아들에 얽힌 얘기가 전해온다.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의 어린 아들 넷이 이곳으로 유배된 뒤, 산 밑 절벽(취적대)에서 피리를 불며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네 아들은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짧은 삶을 마쳤다고 전해온다. 덕산기 물길이 동대천(동천)과 합쳐지는 지점의 절벽인 낙모암 앞쪽에 취적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바위능선길이 있다. 이 능선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방울처럼 보이는 물돌이 지형(언내뜰)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덕산기계곡은 평소엔 물이 적으므로, 비가 내린 뒤에 찾는 것이 좋다. 알맞은 수량이 유지돼야 걷는 맛도 상쾌하고, 옥빛 물색깔 감상도 가능하다.

정선=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travel tip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진부나들목. 59번 국도 따라 정선읍 지나 까칠재터널~월통교로 좌회전~월통교 건너 우회전~여탄천~여탄리 제분소 앞 우회전~여탄리~덕산기계곡.

먹을 곳 곤드레나물밥 정선읍 싸리골식당(033-562-4554)·동박골식당(033-563-2211) 등. 순두부 화암동굴 앞 주차장 팔도식당(033-562-2647), 된장찌개 정선읍 시골밥상(033-563-6114) 등.

묵을 곳 정선읍에 모텔 몇 곳과 전통 주거문화촌인 아라리촌(와가·너와집·돌집·굴피집 등)이 있다. 덕산기계곡에 물맑은집·산을닮은집·솔밭밑민박 등 민박집과 게스트하우스인 정선애인이 있다.

볼거리·즐길거리 정선오일장은 2·7일 장이다. 장날 음악·마술공연 등 다양한 공연행사와 떡메치기 등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또 12월까지 장날마다 군청 옆 문화예술회관에선 정선아리랑극 ‘어머이’ 무료공연(오후 4시40분부터)이 열린다. 정선오일장과 연계한 시티투어 버스도 이용해볼 만하다. 1만원(입장료 별도). 장날마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선역까지 정선오일장 열차가 하루 1회 왕복운행한다. 화암약수·화암동굴·소금강·몰운대 등 화암8경을 둘러보고, 레일바이크나 집와이어(zip-wire) 체험을 해볼 만하다. 집와이어는 325m 높이에서 도르래를 이용해 쇠줄을 타고 1.1km를 시속 70km 속도로 활강하며 동강의 경치를 감상하는 모험 레포츠(4만원). 정선 관광안내 1544-9053.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