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양다방 내부. 차를 나르는 이가 주인 이춘자씨
|
[매거진 esc]
60년째 영업중인 전주 삼양다방…커피전문점 경쟁으로 매출 급감, 살리기 운동도 벌어져
한국인이 처음으로 개업한 다방은? 1928년 영화감독 이경손의 ‘카카듀’다. 3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그 다방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입구에 있는 3층 벽돌건물의 1층에 있었다. 프랑스 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아지트였던 술집 이름을 땄다고 한다. 간판에는 붉은색의 바가지 세 개를 걸어놓고 실내는 인도식 직물에다 탈을 걸어놓았다. 얼굴마담은 하와이 출신의 ‘미스 현’이라는 여성.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여 내고 무료 전시회, 문학 좌담회를 여는 등 욕심을 부렸으나 경영 미숙으로 몇 달 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럼 현존하는 다방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디일까? 경남 진해 흑백다방과 전북 전주 삼양다방을 꼽는다. 흑백다방은 유택렬 화백이 1955년 칼멘다방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2007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딸 유경아씨가 음악감상실로 바꾸어 옛 공간을 지키고 있다. 이에 비해 삼양다방은 1952년께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2가 현재의 자리에서 개업한 이래 현재까지 그곳 붙박이다. 물론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고 차 맛 또한 달라졌을 터이지만.
지난달 29일 오후 그곳을 찾았다. 서울은 이미 다국적 브랜드의 커피숍 천지. 오래된 다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터, 60년 넘은 다방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삼양다방은 헌책방거리인 동문로 중간쯤 전주콩나물국밥집 맞은편 4층 건물의 1층에 자리잡고 있다. 전주역에서 79번 버스를 타고 팔달로 전동성당 앞에서 내리면 7~8분 거리다. 너비 4~5m의 동문로는 팔달로, 충경로에 비하면 뒷골목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길이 뚫리기 전에는 전라북도의 상권은 거기에 다 있었다고 할 정도로 메인스트리트였다. 옛 도청, 옛 시청, 법원, 우체국, 경찰서 등 관공서가 모여 있고 전주극장도 인근에 있었다. 몇 해 전까지도 그곳은 다방의 입지로는 최적이었다.
통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형 벽거울과 마주한다. 누군가를 만나기에 앞서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고치라는 기표다. 왼쪽으로 틀면 고아한 유리격자창. 작은 유리마다 ‘삼양’ 글자를 넣은 것이 바깥 공기를 한번 더 차단해준다. 90도 꺾으면 탁 트인 내부. 12개의 탁자가 각각 2인용 소파 두개씩을 거느리고 20평 안팎의 공간에 배치돼 있다. 입구 오른쪽 카운터에는 오래된 현금통과 전화기가 놓였고 벽에는 1988년에 발행된 영업신고증과 요금표가 달렸다. 커피, 홍차, 생강차, 율무차, 칡차, 녹차 등 대부분의 음료가 2000원. 냉커피, 주스류, 쌍화차, 홍삼차, 꿀차, 대추탕, 오미차 3500원이다. 요구르트는 1500원. 잉크가 빛바랜 것으로 미루어 몇 해 전 값 그대로인 듯하다.
|
빛바랜 요금표. 커피 한잔에 2000원이지만 단골들은 1000원만 놓고 가기도 한다
|
|
삼양다방 외부. 구두수선집도 다방만큼 오래됐다
|
문인, 화가 등 출입하는 고급다방
2, 3년 전부터 손님 줄어 60년대 인텔리 마담에
종업원도 좋은 대접
사진·그림 전시회도 열어 “2~3년 전부터 장사가 안돼요. 9시에 문을 열지만 11시쯤 서너명, 점심시간에 10명 안팎 손님이 들고 3시반 뒤면 뚝 끊겨요. 관공서 떠났죠, 식당에서 식후에 커피 서비스하죠, 약속은 모두 핸드폰으로 하죠. 그러니 다방이 잘될 리 없죠. 얼마 안 가 전주 시내 다방 모두 문 닫을걸요.” 주인 이춘자(63)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다방을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이씨는 커피를 끓여 내고 손님과 말상대를 하고 커피값 계산을 한다. 손님들은 모두 60대 이상의 노인들. 문인, 화가이거나 경찰서장, 신문기자, 출판사 사장을 지낸 분들이다. 50대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장기, 바둑을 둘 수 없다. 이씨는 88년 인수할 당시만 해도 관공서 공무원, 문인, 화가, 신문기자 등이 출입하는 고급다방이었다면서 한창때는 여종업원인 레지 두명을 숙식시켰다고 말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다방 앞에서 20년 넘게 구두를 닦았다는 임아무개씨가 손님의 구두를 걷어갔다. 전주시 원로들의 구술을 기록한 <8·15해방과 6·25전쟁>(2008)에서 전북도청 공보실 공무원을 지낸 이화욱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수수한 다방이지만 이상스럽게 사진쟁이들이 다 모입니다. 찍은 사진들을 여기다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림 그리는 분들도 그림전시회를 하고 그림을 걸어놓고 그랬어요.” 실제로 길 쪽과 주방 쪽을 제외한 두 벽에는 가짜 창문과 창턱이 있고 거기에는 전시회 뒤에 떨군 사진, 그림, 글씨가 놓여 있다. 이씨는 또 “여기 마담이 굉장히 인텔리였어요. 자기 말로는 전문대학을 나와 가지고 실연을 당해서 나왔다고 그러는데 알 수 없죠”라고 전하고 있다. 삼양다방과 비슷한 때에 인근에서 ‘아담다방’을 운영했던 고귀순씨의 증언을 보면 50~60년대 삼양다방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때 마담은 광주 소개소에서 데려오는데, 장사는 마담이나 레지가 해주는 거여. 아가씨가 잘 들어온다든가, 마담이 잘 들어온다든가, 이쁘다든가, 서비스가 좋다든가 그러면 주가가 올라가서 여그저그서 돈 더 준다고 데리러 오고, 또 못 가게 허니라고, 굉장헌 대접을 허고 그랬어. 그때는 종업원들이 통근이라는 게 없었어. 우리가 숙식을 제공했어.”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손님으로 온 홍남표씨는 삼양다방이 1952년께 만들어진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다방은 한국전쟁 직후 정삼룡씨가 처음 만들었어요. 전주농림학교 졸업 뒤 일본에서 사업하다가 돌아와 여기다 건물을 짓고 다방을 차렸지요. 원래 1층 건물이었는데, 1965년 전주문화방송이 들어오기 직전에 2~4층을 증축해 올렸어요.” 다방이 처음 문 열었을 때의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이견도 존재한다. 동석한 오석근씨는 “원래 다방 자리는 바로 옆 지하 ‘난타 노래방’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오씨는 “임실에 삼양다방보다 더 오래된 흙다방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양다방 살리기 모금운동을 펴는 커피박물관 박종만 관장은 “유럽의 100년 이상 된 카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지켜가면서 전통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