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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가나안농장’의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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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몸에 좋은 사료와 쾌적한 사육환경 제공
한우 고급화 실천하는 축산농가를 가다
추석이 코앞이다. 추석 선물로 한우는 인기다.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에는 화려하게 포장한 선물용 한우세트가 눈에 띈다. 한우는 외래종과 섞이지 않은 우리 고유의 종자다. 흔히 누런 황소만 생각하는데 칡소나 흑소도 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3월 기준, 전국 한우농가는 약 282만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한 농가당 18.2마리다. 솔잎 사료와 솔잎 생균제로 키운 ‘하동 솔잎한우’, 상주 감을 먹인 ‘명실상감 한우’ 등 독특한 사료로 차별화한 한우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무엇을 먹이느냐’가 한우의 맛과 질을 결정한다.
구제역 광풍 피해간경기도 광주 축산농가
건강사료 개발·확산시켜 지난 21일 오후 2시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가나안농장’을 찾았다. 축사 들머리에 발걸음을 붙이자마자 “음매” 굵은 소리가 들린다. 황소들이다. 마치 성형외과라도 다녀온 것처럼 황소들의 눈은 크기만 하다. 주인 임종선(50)씨는 커다란 봉지를 뜯어 그 안에 든 것을 황소들 앞에 확 푼다. 먹이다. 끔벅끔벅거리던 녀석들이 커다란 머리를 쑥 내밀어 씹어 삼킨다. 시큼한 향이 진동한다. 티엠에프(TMF·Total Mixed Fermention, 완전혼합발효) 사료다. 곡물과 조사료(목초, 볏짚, 건초, 씨 있는 과일 껍질 등 섬유질의 함량이 높아 소화 영양소가 적게 들어간 사료) 등을 섞은 사료에 미생물 등을 첨가해 발효시킨 사료다. 소들의 소화흡수율을 높인다. 가나안농장은 전국한우협회 광주시지부가 세운 광주한우영농조합에서 만든 이 사료를 먹인다. “유산균, 효모, 고초균이 들어가고요, 깻묵(식물의 종자에서 기름 짜고 남은 찌꺼기), 미강(쌀겨), 우리 지역에서 많이 나는 청보리 같은 것도 넣어요.” 5년간 협회 지부장을 맡았던 임씨의 말이다. 미생물은 광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배양했다. “구제역 광풍이 불었을 때도 저희 지역은 피했습니다. 미생물의 영향이 컸죠.” 경기도 광주는 구제역도 피해간 청정지역으로 유명하다. 소는 번식기, 육성기, 비육전기, 비육중기, 도축 직전인 비육후기마다 먹이는 사료가 다르다. 이곳도 배합 사료의 배율이 성장 단계마다 조금씩 다르다. 초창기 번식기에는 조사료 비율이 56%가 될 정도로 높다. 도축 직전에는 곡물의 비율이 높다. 마블링(근내지방)의 함량이 높아진다. 등급 판정은 마블링의 정도로 정한다. 임씨는 25년 경력의 한우 생산자이다. 송아지까지 포함해 110여마리 키운다. “한우농가가 살길은 고급육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소 생리에 맞는 사료 배합비율을 개발하는 데 노력했어요. 예전보다 등급 판정도 좋아졌어요.” 여러 차례 한우파동을 겪었던 임씨는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피해자”라며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티엠에프 사료를 먹이는 곳은 경기도 광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충청남도 아산시 한살림아산축산생산자연합 소속 6농가도 티엠에프 사료를 쓴다. 한살림 생산자 조직에서 운영하는 푸른들축산사료공장에서 사료를 만든다. 볏짚, 청치(덜 여물어 푸른빛을 내는 쌀알), 미강, 조사료 등을 85도 이상에서 2시간 찐다. 그 사료에 소화 흡수를 돕는 미생물 2~3가지를 넣어 증식, 발효시킨 다음 볏짚 등을 또 섞어 압축한다. 이 지역 생산자연합회의 축산가공을 하는 한들식품의 김주일 대리는 “증기로 찌면 볏짚 등이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소화 흡수가 빠르다”고 말한다. 이곳은 유기축산으로 소를 사육한다. 논-지엠오(Non-GMO) 원료를 사용하고 항생제, 항균제를 안 쓰는 것은 기본. 유기축산의 조건은 까다롭다. 아산생산자연합회 소속인 ‘다롱농장’의 전학수(59)씨는 “하루 3~4시간, 운동장에 소들을 내보내요. 개구쟁이들이에요. 뛰어다니고 노는 거죠”라고 말한다. 하루 일정시간 동안 규칙적인 운동이 조건이다. 운동장의 크기는 축사의 2배다. 이 크기도 유기축산의 조건이다. 83마리를 키우는 전씨 농장은 축사가 991.7㎡(300평)이고 운동장이 1983.4㎡(600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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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한살림아산축산생산자연합의 황소들. 하루 3~4시간 축사를 벗어나 운동장에서 논다. 한살림아산축산생산자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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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축산
운동장 넓이가 축사 두배 ‘사는 곳’은 어떨까? 소들은 한 마리당 9.9㎡(3평)를 차지하고 보슬거리는 왕겨를 툭툭 치면서 논다. 국가 유기축산 기준에는 수소 한 마리당 약 7.1㎡(2.1평), 암소는 9.9㎡(3평) 사육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뿔도 자르면 안 되고 거세도 하면 안 된다. 동물복지 차원이다. 이곳 아산생산자연합회에서 사육하는 소들은 모두 비거세우다. 그러다 보니 재미난 일들도 벌어진다. 김주일 대리는 소들을 “힘이 넘치는 고등학생”에 비유한다. 소들 사이에는 서열이 있다고 한다. 힘센 놈이 1번이다. 서열 2번은 3번, 4번과 작당해 1번에게 대든다. 드물게는 그러다 죽기도 하지만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면 2번은 1번이 되고 1번은 꼴등으로 밀려난다. 각오를 다진 1번은 한동안 사료만 열심히 먹는다고 한다. 마침내 2번과 대격돌 한판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과거 작당했던 3, 4번은 안 도와줘요.” 이런 사정 때문에 일반 농가들이 약 30개월이면 도축하는 반면 이곳은 25개월이면 출하한다. “30개월에 가까워질수록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죠.” 목표 체중을 일찌감치 달성하는 것도 이유다. 전씨 농장은 특이한 점이 있다. 베토벤을 꿈꾸는 소들도 아닌데 해뜨기 전부터 음악을 듣는다. 물소리, 새소리 등 이른바 ‘그린음악’이다. “성질이 좀 순해져요.” 전씨가 3~4년부터 유기축산을 하게 된 이유는 토마토 때문이다. 그도 화학비료를 쓰면서 채소류 등을 생산했었다. “1990년 병원에 실려 갔죠. 화학비료 때문이었어요.” 그는 퇴원하고 바로 유기농법을 들여왔다. 긴 세월 유기농업을 하다 보니 축산도 자연스럽게 유기축산으로 넘어갔다. “우리 소 맛은 옛날 동네 소 맛이에요.” 이곳 소들의 85%는 3등급이다. 마블링을 과도하게 만들기 위해 곡물사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블링에 집착하다 보면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모두 잔혹한 인간의 욕심이다. 한살림 관계자는 “등급은 그저 마블링 분포 기준일 뿐, 생산과정의 안전성이나 소의 건강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광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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