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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태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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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운해와 숲길, 호수, 꽃바다 즐기는 강원도 횡성 4색 자연경관
한우의 고장 강원 횡성. 인구 4만4000여명에 소가 5만여마리, 소가 더 많다. 이 많은 소는 누가 키우나. 2300여 한우 농가들이 집중적으로 키운다. 50마리 이상 기르는 대규모 농가가 700여호나 된다. 품질 좋고 맛있다는 횡성 한우 고기를 찾아 여행객들이 몰려들지만, 정작 여행지로서 횡성은 알려진 것이 적다. 체험거리도 편의시설도 소박하고 투박한, 그래서 더 자연스런 맛이 살아 있는 횡성의 ‘4색 자연경관’을 둘러봤다. 태기산의 눈부시게 흰 구름바다,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청태산 숲길, 그리고 횡성호의 잔잔한 물빛과 떼춤 추는 코스모스 꽃바다다.
일교차 큰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구름바다를
품고 솟는 태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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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태기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력발전기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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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1261m)은 횡성군 둔내·청일면, 평창군 봉평면, 홍천군 서석면의 경계에 있다.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왕의 전설이 깃든 산이다. 신라와의 전쟁에서 진 태기왕이 이 산에 군사를 끌고 들어와 산성을 쌓았다. 4년을 버텼으나 박혁거세가 이끄는 신라군의 집요한 공격에 무너졌다. 결국 태기왕은 이 산에서 생을 마쳤다. 그래서 태기산이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태기왕이 올랐다는(또는 박혁거세가 다녀갔다는) 어답산(789m)이 있고, 태기왕이 갑옷을 씻었다는 갑천도 있다. 동틀 무렵 태기산 정상은 온통 구름속이다. 여명이 밝아오자, 구름이 구름밖 세상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다. 넘실대며 산줄기들을 타넘어가는 운무 무리는 쫓는 군사를 닮았고, 지워지고 또 드러나며 수시로 모습을 바꾸는 산줄기들은 쫓기는 군사를 닮았다. 쫓는 자도 쫓기는 자도 한 폭의 눈부신 수묵화 안에 들어 있다. 쫓든 쫓기든 아랑곳없이, 20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은 능선을 따라 버티고 서서 수묵화에 깃들기도 하고 먹칠도 하면서 세찬 구름파도를 잘라내기에 바쁘다. 일교차 큰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구름바다를 품고 솟는다는 태기산. 한국방송 송신소가 있는 정상까지 찻길이 나 있어 차량을 이용해 편하게 구름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산빛 붉게 물들어가고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철 이른아침이 운해 감상에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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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청태산자연휴양림의 나무데크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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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과 영동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선 청태산(1200m)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아름다워 여름·가을철 산행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강릉지역으로 갈 때 들렀다가, 아름다운 산세에 반해 ‘청태산’(靑太山)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온다. 이 아름다운 산의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를, 남녀노소 누구나 불편없이 둘러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2곳 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청태산자연휴양림과 녹색문화재단이 마련한 숲체원이 그곳이다. 어린 자녀나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들에게 인기다. 완만한 경사의 나무데크를 숲 깊숙이까지 설치해 편하게 숲길 산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휴양림 숲길의 경우 잣나무·소나무·참나무류가 고루 우거진 완만한 산기슭에, 800m가량의 나무데크를 지그재그로 설치했다. 손잡고 산책하며 심호흡하고 사진찍는 가족·연인들이 많다. 곳곳에 쉼터와 나무의 종류와 특징 등을 적은 학습시설을 설치해 자연스럽게 숲공부를 겸하게 된다.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다람쥐들의 재롱도 인기다. 청태산 숲길을 본격적으로 탐방하려면, 6개 코스의 숲탐방로(등산로)를 이용하면 된다.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11동)과 산림문화휴양관(29실), 운동시설인 숲속수련장, 30개의 야영 데크에다 취사장·화장실·샤워실을 갖춘 캠핑장도 있다. 1만여평 넓이에
분홍 꽃바다 펼쳐진
코스모스 축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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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우천면 오원리의 코스모스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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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호는 12년 전인 2000년에 완공된 인공호수다.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섬강의 상류 갑천을 막아(횡성댐), 가을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번지는, 고즈넉한 산중호수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가을엔 호숫가를 한바퀴 도는 27㎞ 길이의 ‘횡성호수길’을 만들었다. 물가에 무리지어 흔들리는 코스모스들과 산기슭에 피어난 야생화들을 감상하며 거닐 수 있는 흙길이다. 횡성호수길은 모두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보통 걸음으로 1시간에서 2시간3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1.5~7㎞ 길이의 산책로들이다. 가장 완만한 코스가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호숫가와 산길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4.5㎞ 길이의 가족길(제5구간)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조용한 호숫가를 따라 완만한 흙길을 걷는 동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인적이 뜸하므로 혼자 걷는 것은 비추. 횡성호가 만들어지면서 구방리·화전리·부동리·포동리·중금리 5개 마을이 수몰됐다. 수몰된 마을을 한데 묶어 흔히 ‘화성 지역’으로 부르는데, 화전·부동리 일대가 본디 횡성현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몰된 화전리 지역엔 향교터·옥담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망향의 동산에 세워진, 5개 마을 터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주민들이 쓰던 농기구·생활도구, 마을 사진·지도 등을 전시한 ‘화성의 옛터 전시관’이란 명칭도 이를 뜻한다. 수몰된 옛 5개 마을 1000여명의 주민들은 횡성·원주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매년 6월 첫주 일요일 망향의 동산에 모여 반가운 재회를 한다. 망향의 동산엔 멋진 쌍탑(통일신라시대)이 세워져 있다. 수몰된 중금리의 ‘탑둔지’에 있던 것을 옮겨다 세운 것이다. 2기의 탑은 모두 상처투성이다. 이주민으로 전시관을 관리하고 있는 한종기(72·구방리)씨는 “왜정 때 일본인이 탑을 해체해 우마차에 싣고 가져가다 실패해, 탑재들이 한동안 강가에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코스모스 축제 펼치는 1만여평 분홍 꽃밭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코스모스축제(10월14일까지)가 벌어지고 있는 우천면 오원리의 코스모스공원에 들러볼 만하다. 오원3리의 널찍한 빈터를 활용해 조성한 1만여평에 이르는 대규모 코스모스밭이다. 꽃길을 걷는 연인, 가족들이 꽃에 파묻혀 다 꽃이 되어버리는 꽃밭이다. 선생님을 따라나선 우천어린이집 어린이들을 만났다. 줄지어 걸어도 서 있어도 꽃다운 얼굴들인데, 녀석들이 와르르 꽃밭으로 뛰어들자 꽃밭이 한결 풍성해졌다. 재잘거리는 아이들도, 방긋거리는 선생님들도 코스모스가 되어 하늘거렸다. 꽃밭 사이로 난 산책로엔 원두막과 포토존 등이 설치돼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다. 축제장에 횡성 농특산물 판매장과 먹거리 장터 등도 마련돼 있다. 축제 기간이 지나더라도 10월말까지는 코스모스 무리를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횡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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