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10.10 23:11 수정 : 2012.10.10 23:11

서미애씨가 1980년대 가내공장 동료 이경미씨한테서 받은 손글씨 편지

[매거진 esc] 라이프
1000여통의 손편지 고스란히 모은 서미애씨·편지쓰기로 문인 된 이수옥씨

“많이 기다렸지.
그럼 배달부 올 시간이
되어서 그만 쓴다”

요즘은 편지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손글씨로 쓴 편지라면 더 그렇다. 올해 8월까지 28억통의 우편물 가운데 사신은 4500만통으로 1.6%에 지나지 않는다. 해마다 점점 줄고 있다. 휴대전화로 당장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전자우편(이메일)으로도 사연을 전달할 수 있는데 굳이 편지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손편지를 전부 대신할 수는 없다. 편지지에 꾹꾹 눌러쓰는 동안의 사랑과 그리움,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삶을 채웠던 설렘을 어떻게 담겠는가. 예전에는 집집이 <편지투백과> 한권쯤은 갖추고 있었다. 가을을 맞아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 한장 어떤가. 좀 생뚱맞은가?

“올라간 후 몸 성히 잘 있는지. 그리고 작업이 있는지 무척 궁금하여 전화를 낼려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 전화요금 절약하려고 그냥 있다가 마침 인편이 있어 몇 자 적는다. 이곳은 다 무사하며 너의 어머니는 3일 전부터 버섯공장에 일 나가고 나는 나무라도 많이 할 예정이다. 아버지는 한동안 마음이 무척 괴로워 술을 당분간 마시다가 이젠 정신을 똑바로 차려 가정 일에 전념을 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네 일을 열심히 하기 바란다.”(하략)

서미애(51·서울 중랑구)씨는 4일 편지 몇 통을 보여줬다. 1000여통 가운데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왔다는 낡은 편지에 우리의 70~80년대가 고스란하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서씨는 1976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일을 돕다가 경산읍 소재의 섬유업체 직공으로 취업했다. 79년 상경해 성북구 장위동 가내 편물공장에서 일을 했다. 이 편지는 1980년 무렵 아버지가 인편에 부친 것이다. ‘공순이’가 보낸 돈은 시골에서 송아지가 되고, 송아지가 커서 남동생 대학등록금이 되었다.

편지쓰기를 매개로 만난 서씨(왼쪽)와 이수옥씨.
“그저께 언니한테 갔다 왔다. 내가 거기 있을 때 너의 편지가 도착되더라. 편지 내용은 보니 불편한 점이 많은 모양이던데 어쩌겠니.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참아야지. 언니도 하는 말이 어디에 가나 그만한 불편은 있다고 하면서 참고 견디라고 하더라. 네가 부탁한 주민등본은 내가 바빠서 이제야 부친다. 많이 기다렸지. 그럼 배달부 올 시간이 되어서 그만 쓴다.”

비슷한 때 엄마가 우편배달부가 올 무렵 급히 쓴 편지다. 자식들이 부모한테 객지의 어려움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겠는가. 언니한테 보낸 편지에서 서씨의 속사정을 읽은 엄마는 “참아야지 어쩌겠니?”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조곤조곤 편지가 잔정 깊고 어쩌면 우유부단해 보이는 반면 엄마의 말투는 단호하다. 여장부 어머니가 있어 집안 꼴이 유지된 예가 어디 한둘일까.

“그리운 언니야. 지금도 밥해주느라, 아니 밥공장 대표이사님 직을 역임하시느라 얼매나 수고가 많겠노. 경아는 요즈음 허리가 30이나 되는지 돼지가 사돈 삼자고 할까 봐 걱정될 만큼 살이 쪘다우. 이번달 월급 타면 언니 돈 다 해줄려고 하고 있으니 기다리신 김에 조금만 더 참으시구랴. 언젠가 형편이 풀리고 살길이 트인다면 언니에게 진 신세, 웃으면서 보답하오리다.”

한때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이경아씨가 보내온 편지다. 아주 친하게 지내다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다른 공장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어린 노동자들은 함께 자취를 하며 깊은 정이 들고 푼돈을 빌리고 빌려주면서 얽히고설켰다. 편지는 서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있던 1985년에도 이어졌다. “언니. 시집가. 가만히 시골에 앉아계시다가 중매 나오면 선도 보고. 좋은 혼처자리 나올 거야. 서울. 말만 해도 지겨워 죽겠는데 뭐하러 와. 전망 없는 편물 또 하려고는 생각도 하지 마.”

서씨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낙심해 있던 때 5, 6학년 담임교사가 보내준 격려편지도 갖고 있다. 선생님의 조언은 그가 치러야 할 신산한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낯간지러운 연애편지,
진실이고 싶은 거짓사연으로
포장한 펜팔편지를 부치려고
우체통으로 달렸다”

“책 읽기에 한결 좋은 가을이 찾아왔구나. 편지를 받고 선생님은 아주 기뻤다. 미애는 다른 어린이만큼 훌륭히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건강 때문에 중학교에 못 간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단다. 그러나-. 생각해보렴. 어려운 일을 헤치고 굳세게 살아가면 무엇인가 하늘이 돕는 일이 있단다. 꼭 미애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매사에 노력해 보렴. 우선 책을 구해 공부도 해보고 또 기술도 배워보렴.”

서씨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고 있다. 서씨처럼 방송대를 다니는 이수옥(60·경기도 하남시 덕풍1동)씨. 지난 6월 남편 환갑을 맞아 창작집 <동류항 두개로 이룬 꿈>을 펴냈다. 3년 전에 낸 수필집에 이은 두번째 책이다. 그를 문인으로 만든 것은 편지다. 부부싸움 끝에 보관해온 1000여통의 편지를 모두 태워 증거는 없지만 여공 시절을 추억한 글 ‘가슴시린 고구마편지’를 보면 편지로 성장해온 그의 궤적이 여실하다.

“유치찬란하고 낯간지러운 연애편지, 진실이고 싶은 거짓사연으로 포장한 펜팔편지를 부치려고 점심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우체통으로 달렸다. 가난이 문신처럼 새겨진 우리들이 밥을 먹는 것보다 편지를 부치러 가는 일에 더 달떴으니 실로 풋풋한 연둣빛 시절이었다.”

<선데이서울> <새농민> 같은 잡지 뒷부분에는 으레 애인, 친구 구함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서 얻은 주소지로 띄우는 편지는 하루 열두 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던 그에게 달콤한 청량제이자 넓은 세상으로 열린 창이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life tip

<전략적 편지쓰기>가 전하는 팁

편지가 좋은 점 1.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적의 도구가 된다. 2. 창의력과 문장력을 키워준다. 3. 주위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준다. 4.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다. 5.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고 낭만을 되살려 준다.

편지를 쓰기 전에 1. 편지지, 편지봉투, 우표를 항상 준비해둔다.2.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사용하여 편지 쓰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3. 편리한 엽서를 가방이나 핸드백에 항상 넣어두고 외출 중에 활용한다.

편지를 쓰려면 1.악필이라고 걱정 마라. 그게 오히려 정감 있다. 2. 논지는 분명히하되 굳이 잘 쓰려고 애쓰지 말라. 3. 단, 읽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4. 자기만의 신선하고 독창적인 문장을 구사하라.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