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0 23:52
수정 : 2012.10.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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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오름을 오르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트라이애슬론 연맹’ 사무국장 안병식(사진 뒤)씨와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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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esc] 커버스토리
트레일 러너 안병식씨와 함께 뛴 제주 오름 트레일 러닝 체험기
땀 흘리며 뛰다가
멈춘 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관
한국은 트레일 러닝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다. 산과 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강이나 바다를 찾아 나서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막상 첫 트레일 러닝을 하러 나서기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모든 처음과 도전에는 긴장이 뒤따른다. 어떤 준비를 거쳐 포장이 안 된 오솔길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주목하길 바란다. 지난 10월4일 억새가 지천으로 깔리기 시작한 제주로 떠나 트레일 러닝 대회를 주관하는 안병식씨와 함께 6킬로미터 코스의 트레일 러닝을 체험해 봤다.
공들인 스트레칭, 열 장비 안 부럽다 트레일 러닝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육상경기 운동장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달리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트레일 러닝과 포장도로를 달리는 로드 러닝(road running)이다. 로드 러닝으로 경쟁하는 스포츠가 일 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마라톤 대회이다. 국내에서는 로드 러닝 인구가 많은 편이지만, 국외에서는 트레일 러닝 역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3일간의 스테이지 레이스(매일 일정 구간을 뛰는 경기 방식. 한번에 경기 구간을 뛰는 방식은 논스톱 레이스라고 한다.)가 2012 트레일 런 제주라는 이름으로 펼쳐진다. 장소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일대이다. 체험할 코스는 가시리 야외 공연장부터 잣성길, 갑마장길,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6킬로미터 코스였다.
완만한 오름을 보니 자신감이 샘솟는다. 대충 몸을 풀고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무슨 운동을 하든 스트레칭은 꼼꼼하게 해줘야 해요. 트레일 러닝 앞뒤 10분 정도는 스트레칭을 꼭 해줘야 합니다”라고 안병식씨는 말했다. 그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막상 등산이나 자전거타기를 하기 전 스트레칭에 공을 들이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그리고 운동을 마치고 난 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생겼던 근육통의 기억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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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큰사슴이오름(대록산) 앞에서 트레일 러닝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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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도로 달리기와
쓰는 근육 달라
전후 스트레칭 반드시
안씨는 트레일 러닝에서 스트레칭이 더욱 중요한 이유를 한가지 꼽는다. “비포장과 포장 도로를 뛰는 것은 달라요. 쓰게 되는 근육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 실제로 안씨의 다리를 보면 일반 마라토너의 다리와 완전히 다르다. 일반 마라토너의 종아리는 비교적 매끈한 반면, 안씨 종아리 근육은 앞부분이 발달해 있다.
트레일 러닝을 위해선 종아리근과 대퇴사두근(허벅지 앞부분) 등을 단련시키는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그리고 트레드밀이나 도로 달리기보다는 비포장도로를 걷거나 뛰어보면서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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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열린 20여개국 500여명이 참가한 ‘트랜스 알파인 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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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는 뛰기 전 숙지를 드디어 바람을 가르며 뛸 차례. 코스에 진입하기 전 온라인에서 지도를 보고 왔지만, 어디로 들어서는지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안병식씨가 일러준 곳으로 진입하기는 했지만, 일반도로가 아닌 오솔길이어서 뚜렷한 길의 흔적을 찾기도 힘들었다. “이 길이 아닌가 보네” 하며 망설이길 수차례. 대회 에선 운영 도우미가 있기 때문에 이런 걱정까지는 할 필요 없지만, 혼자서 트레일 러닝을 할 때는 코스를 익혀두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적인 코스의 길이와 환경 등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가시리의 오름 트레일 러닝 코스의 시작 지점은 다소 질퍽한 흙길이었다. 누렇게 져가는 잡초들 사이로 드러난 오솔길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잣성이라는 돌담 옆으로 길이 이어졌다. 같은 흙길이겠구나 예상했지만, 또 예상은 빗나갔다. 돌담 옆으로는 현무암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다. 흙길보다는 돌밭길에 가까웠다. 오르내림이 심하지는 않지만 뛰는 동안 점프에 가까운 동작을 많이 하게 됐다. 확실히 평지에 견줘 부담스럽다. 발목과 무릎 관절은 예상치 못한 길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조금씩 뻐근해져오는 종아리와 발목 부분을 잠시 쉬는 동안에 주물렀다. 1킬로미터가량을 뛰고 나니, 온몸에는 땀이 흥건하다. 이날 한낮 기온은 24도에 머물렀지만, 따가운 가을 햇볕이 더해져 더위는 한여름에 맞먹었다. 고마웠던 것은 쉼없이 불어주던 제주의 가을바람이었다. 잣성길 옆 조성된 풍력발전기의 금속성 날개 소리는 서늘한 기운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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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비오름으로 향하는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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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오르막이건 만만하게 여기지 말 것 잣성 돌담길과 방풍림 사이를 지나 당도한 따라비오름 앞. 야트막한 오름은 가을 억새로 뒤덮여 신비로운 제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야트막한 오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르막길이 시작되자마자 숨이 턱에 차올랐다. 일반 등산 걷기로 오른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뛰어오르는 것은 다르다. 오르막길 50여미터를 뛰어올랐다. 전속력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마냥 하늘이 노래진다. 트레일 러닝을 위해 체력을 기른답시고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탔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안병식씨는 함께 뛰어오르며 “소질이 있는 것 같은데요”라며 응원했지만,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힘에 부쳐 허덕대는 것을 보고 안씨는 “트레일 러닝을 하다가 힘들면 걸어도 돼요. 주변 경관을 놓치면 트레일 러닝의 의미가 줄어드는걸요. 주변 오름이랑 한라산 풍경, 정말 좋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들어오는 코스 주변의 풍경은 말을 잃게 만들었다. 제주에는 전역에 360여개의 오름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그 오름 가운데서도 동부 오름 군락은 신비로운 기운이 뻗친다. 따라비오름 맞은편의 큰사슴이오름(대록산)의 모습이 가장 가깝고, 멀리 성산 일출봉도 한눈에 들어왔다. 300미터 이상 이어진 오르막과 능선을 타고 올라 정상에 서니 억새 물결이 반긴다. 귓전을 때리는 바람은 어느 때보다 신선하고 시원했다.
이어서 전해져 오는 허벅지와 종아리의 뻐근함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평소 아무리 등산이나 걷기 등으로 다져진 몸이라 해도, 오르막 달리기는 확실히 하체 잔근육까지 쓰기 때문에 그 뻐근함의 차원이 달랐다. 다행히 발목 등을 접질리거나 하는 부상은 없었지만, 다음날이 걱정됐다. 이럴 때 다시 떠올려야 하는 것은 ‘스트레칭’. 따라비오름에서 내려온 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주=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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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tip
서울 안, 트레일 러닝 코스?
▣ 아차산 초급자가 달리기에 좋은 코스이다. 아트투어길부터 정상까지는 300여m 정도의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 사이 긴고랑 입구부터 삼각지점까지는 능선이 이어져 있다.
▣ 청계산 청계골 입구에서 매봉, 원터골 쉼터로 이어지는 구간은 트레일 러닝을 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이곳에서 이효리 등 연예인들이 등산 또는 트레일 러닝을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다만, 평일이 아니고서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 어렵다는 것은 단점이다.
▣ 인왕산 3호선 녹번역 인근 아파트 단지 뒷길로 시작해 경복궁 옆 청운동까지의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능선이 많아 트레일 러닝을 즐기기에 좋다. 주변 북한산과 안산, 그리고 도심 풍경이 다채롭게 이어져 지루하지 않은 트레일 러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강동구청~경찰병원 구간 어린이도 쉽게 오를 수 있을 만큼 완만한 곳이다.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숲이 우거져 있는 곳이어서 공기 좋기로 소문난 코스 가운데 하나이다.
▣ 수서역 자연생태공원~대모산 구간 자연생태공원 초입에는 평평한 오솔길로 시작한다. 그 뒤 산길이 이어진다. 대모산은 서울시내에서도 가장 야트막한 산 가운데 하나이다. 공원처럼 중간중간 의자 등이 마련되어 있어 부담없이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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