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7 18:04
수정 : 2012.10.17 18:04
[매거진 esc] 독자사연 맛 선물
80년대 후반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가장 큰 충격은 바로 ‘매점’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달려가서 빵이나 음료수를 마음껏 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특히 매점에서 흘러나오던 냄새는 어찌나 고소하던지! 바로 매점 아주머니가 굽는 햄버거 냄새였답니다. 당시만 해도 햄버거의 위상은 지금과 극과 극! 그때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먹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고급 음식을 매일매일, 그것도 보통 햄버거값의 반도 안 되는 몇백원에 사먹을 수 있다니!
그렇습니다. 아무리 지금보다 물가 싼 20여년 전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도 몇백원짜리 햄버거 패티는 지금 아이들이 먹는 두툼한 고기 패티가 아니라 어묵과 소시지의 중간쯤에 있는 정체불명의 ‘육류’였지요. 그럼에도 맛은 얼마나 황홀하던지요.
그래서 저의 도시락 멤버였던 짝과 뒷자리 친구 포함 우리 셋은 2교시가 끝나면 매점으로 직행해 햄버거를 사먹었습니다. 정말 매일매일 사먹었습니다. 값싼 햄버거였지만 매일 먹다 보니 나중에는 용돈이 감당 안 돼 종종 준비물을 포기하는 결단까지 서슴지 않았지요.
그렇게 한 학기를 지내고 난 다음 우리 셋에게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이름하여 ‘역도부 삼형제’. 수업시간에 킬킬거리며 잡담을 하다가 선생님으로부터 “거기 역도부 삼형제 조용히 못해?” 꾸중을 들은 뒤 얻은 별명이었죠. 왜 하필 역도부였을까요? 우리 학교에는 역도부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몇달 동안 매일 먹은 햄버거 때문에 성장기에 있던 우리 소녀들은 엄청나게 성장해버린 겁니다. 옆으로 말입니다. 기골이 장대한 소녀 셋이 뭉쳐 앉아 있으니 역도부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했죠. 다행히도 2학기에 들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셋의 햄버거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렸고 덩치도 어느 정도는 원상복구가 됐습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패티가 구워질 때의 향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경란아, 혜욱아, 잘 지내지? 언젠가 같이 모여 그때 먹던 정체불명의 햄버거를 같이 먹고 싶구나.
김영주/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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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sler tip
햄버거 패티나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고온에서 빠른 요리가 가능한 스테인리스스틸 프라이팬을 사용하면 좋다. 두꺼운 재료도 단시간에 겉과 속이 골고루 익어 특유의 맛과 질감을 살릴 수 있다.
응모 방법 ‘맛 선물’ 사연은 <한겨레> esc 블로그 게시판이나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200자 원고지 5장 안팎으로 올려주세요. 연락처와 성함을 남겨주세요.
상품 70만원 상당의 휘슬러코리아 피암마 2종 세트.(스튜포트 20㎝, 소스팬 16㎝)
문의 mh@hani.co.kr(※끼니에 ‘영원히 못 잊을 닭백숙’을 올리신 독자님은 문의 메일로 연락처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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