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7 18:42
수정 : 2012.10.1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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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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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요즘 홍대 앞 출몰하는 크루저 스케이트보드 도전기
기존 스케이트보다 작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인기
여성 보더들도 늘어나
도심 속 가을바람을 가르는 방법은 여럿이다. 달리기,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색다른 재미와 긴장감을 주는 다른 한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스케이트보드다. 스케이트보드 자체가 새로운 발명품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서울 용산 일대 미군부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나름 그 역사는 20년이 넘는다.
스케이트보드는 그동안 10~20대 마니아들, 그들만의 스포츠 또는 놀이문화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최근에는 그 양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를 가장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지역 가운데 한 곳인 서울 홍익대 주변 도로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여성들 가운데서는 분홍, 연두, 보라 등 다양한 색의 작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이 많다. 그전에 봐왔던 스케이트보드의 데크(발을 올리는 판)와 한눈에 보기에도 달랐다. ‘저 작은 스케이트보드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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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스케이트보드(사진 아래)와 크루저 스케이트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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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멍 몇 군데 드는 것은 각오해야 해요. 여름 지나 이제 긴 바지 입어도 되니까 다행이에요.” 대학생인 이민아(24)씨는 종아리를 까보이며 말했다. 그가 작은 스케이트보드를 탄 지는 3개월째, 지난여름부터다. “아주 더웠잖아요. 그때 친구들 여럿이서 스케이트보드를 장만해 배워서 타보니까, 그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 그렇게 4명의 여성 스케이트보드 동지들은 거리 곳곳에서 그들만의 놀이에 빠져들었다. 궁금한 그 기분. 그 작은 스케이트보드를 4일 동안 체험해 봤다.
작은 스케이트보드에는 따로 이름이 있었다. ‘크루저 스케이트보드’라고 한다. 데크의 길이와 너비가 일반 스케이트보다 훨씬 작고, 데크의 노즈(앞부분)와 테일(뒷부분)의 모양 역시 다르다. 크루저 스케이트보드는 2010년 국외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발명 순서는 크루저 스케이트보드가 앞선다. 본래 바다에서 하는 서핑을 육지에서도 훈련하고 즐기기 위해 197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만들어진 게 스케이트보드이다. 당시 스케이트보드가 크루저 스케이트보드였다. 여기에 시간이 갈수록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하기 좋게 그 모양이 진화해 갔다. 진화한 스케이트보드가 우리가 이전까지 봐왔던 일반 스케이트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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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바이닐 크루저 스케이트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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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 브랜드인 스테레오사운드에이전시 한국지사의 한재훈 대표를 찾았다. 이 브랜드는 스테레오 바이닐 크루저라는 크루저 스케이트보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밖에 페니 보드 등에서도 크루저 보드가 나오고 있다. 크루저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받아든 지난 11일에는 5번 정도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 발은커녕, 한 발을 데크 위에 놓고 발을 굴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한 대표를 찾았던 것이다. 체험기를 쓰기 위해서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이렇게 하다가는 분명 넘어졌다는 이야기밖에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두 발 올리기까지만
엉덩방아 여러번
바람을 가르는 이 맛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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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의 바퀴는 취향에 따라 바꿔 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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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산한 도심 공원을 찾았다. 넓은 공터는 아니었지만, 초보자 실력으로 넓은 공터는 필요없었다. 단 50m라도 두 발을 올려놓고 탈 수 있게 되는 게 목표였으니까. 한 대표는 “오른손잡이면 일단 왼발을 데크의 앞쪽에 올려놓고, 살짝 상체를 구부려 몸의 무게중심을 낮춰야 해요”라고 말했다. 발은 저만치 앞으로 밀려나가고 몸은 스케이트보드를 따라가지 못해 수차례 넘어졌던 지난밤이 떠올랐다. 다시 멈칫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자신감이 조금 생긴다. 30여분 낑낑대고 나니, 겨우 오른발을 굴린 뒤 두 발을 데크 위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진행 방향은 내 마음이 아니라, 도로 마음대로였다. 도로가 기울어지고 꺾어진 대로 바퀴가 흘러갔다. 다시 한재훈 대표가 거든다. “머리와 상체, 그리고 팔을 움직여가며 방향을 틀면 돼요. 오른손잡이로 왼발을 데크 앞쪽에 올려놓았을 경우, 몸 안쪽 방향으로 원을 그리고 싶으면 어깨와 머리를 진행 방향의 오른쪽으로 옮겨보세요. 이때 왼발 앞쪽에 힘을 주면서 데크 방향도 같게 하고요.” 조금 복잡해 보이는 설명이었지만, 데크에 올라서 몸과 상체, 발의 무게중심을 이리저리 옮겨보니 제법 방향을 틀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아픔도 컸다. 데크 위에 발을 올리는 것만 연습할 때는 넘어져도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두 발을 다 올려놓은 채 방향틀기를 연습할 때는 속도 조절이 힘든 상황이라 크게 넘어졌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서울 시내와 교외에서 짬이 조금이라도 나면 크루저 스케이트보드를 타보았다. 조금씩 원하는 대로 방향을 틀게 되고, 8m 정도 되는 너비의 길에서 유턴에도 성공! 스케이트보드 마니아들이 보기에는 이제 걸음마를 뗀 사람일 뿐이었지만, 그뿐이라도 좋았다. 여기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거리를 누빌 때는 왠지 ‘거리의 악동’이 된 듯한 느낌이 짜릿했다. 하지 말라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런 기분이었을까? 아마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저렇게 노느냐’는 편견 또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보았기 때문이리라.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자 직접 거리로, 공원으로 나서 보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스케이트보드 마니아들이 추구하는 정신 또한 이런 맥락에 놓여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술 하나를 연습하려고 1년 넘는 시간을 들이기도 해요. 한계에 도전하면서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죠. 국내에서는 아직 이런 제대로 된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보편화하지는 않았어요. 이제 조금씩 알려지겠죠.” 한재훈 대표는 말했다. 스케이트보드 타기가 한때의 트렌드가 아닌 제대로 된 문화, 스포츠로 자리잡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그날이 멀지는 않아 보인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스테레오사운드에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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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tip
보드를 찾아서
▣ 스케이트보드는 온라인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서울 동대문과 홍익대, 이태원 등지에서는 오프라인 스케이트보드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스케이트보드의 데크와 바퀴, 트럭(데크와 바퀴를 고정시키는 부품) 등을 따로 사서 조립하면 개성 넘치는 자신만의 스케이트보드를 만들 수도 있다.
▣ 스케이트보드를 타보기에 앞서 다른 애호가들이 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동대문의 훈련원 공원으로 가면 된다. 한강 난지공원, 뚝섬 엑스장 등에서도 스케이트보더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비메오 등을 통해 스케이트보드 관련 영상과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동호회 수가 많지는 않지만, 최근에 많이 생겨나고 있다. 스케이트보드와 관련한 국내외 정보, 영상들을 얻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으로는 데일리그라인드(dailygrind.kr)가 있다. 입문자들을 위한 정보뿐 아니라 국내 프로 스케이터들의 활약상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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