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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24 17:22 수정 : 2012.10.25 17:11

네스호의 호숫가에 있는 어커트성.

[매거진 esc] 여행
전설의 괴수 네시를 찾아서

괴수탐험 역사의 현장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네스호와 일대 탐방기

인버네스에 도착한 것은 슬금슬금 비가 뿌리는 오후였다. 스코틀랜드 날씨에는 두가지가 있다. 비가 오고 있거나, 아니면 비가 올 예정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일행이 삐죽댔다. “비 오면 네시 잘 안 보이는 거 아냐?” “…비 안 오면 볼 수 있냐?”

그렇다, 우리는 네스호의 괴수, 네시를 보러 온 길이었다. 우리가 영국하고도 스코틀랜드, 그것도 관광 거점 에든버러에서 자동차로 꼬박 4시간이 걸리는 인버네스까지 온 것은 킬트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보러 온 것도,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해서도 아니었다. 우리는 네시를 보러 왔다. 네시, 바로 그 네시다. 80년대와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소년소녀들은 모두 네시를 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소년××>과 <과학××>에는 로즈웰 우주센터와 유에프오, 링컨 암살의 비밀과 함께 잊을 만하면 네시가 나왔다. 물속에서 목을 삐죽이 내민 네시의 흑백 사진 옆에는 ‘네스호의 괴물은 실존하는가­충격 증언’ 같은 글자들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곤 했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네시 조각이 서 있지는 않았지만, 인버네스는 어쨌거나 네시의 도시였다. 네스호의 관문인 네스강이 도시를 관통하고, 네스호 보트 투어 예약도 여기서 받고, 네시 과학탐사도 여기서 시작한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본 기념품 가게들은 온통 네시였다. 스코틀랜드 전통 타탄 무늬 모자를 쓴 네시 인형, 네시 도자기 조각, 네시 티타월, 혓바닥을 뾰족 내민 웃기는 네시와 위스키 몇 잔 들이켠 ‘술 취한 네시’, 관광객에게 하트를 날리는 ‘섹시한 네시’가 진열대 가득 놓여 있었다. 역전 골목 2층 중국집에 앉으니 그제야 새삼, ‘네스호의 괴수’가 목전에 있다는 감격이 밀려왔다. 스코틀랜드 전통 백파이프 연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싱가포르 볶음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네시를 목격할까 고민했다. 보트 투어가 있지만 비가 오니까 배 타봐야 소용없다. “빗줄기와 파문이 네시랑 잘 구분이 안 되잖아.” “그렇지, 호수가 장판처럼 잔잔해도 간신히 등짝이나 볼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운이 엄청 좋아야 해. 보통은 잘 안 보이… 너, 혹시 네시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스호는 괴수의 괴담이 창조한 일종의 ‘테마파크’다. 네시의 캐릭터 상품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네시 인형, 네시 도자기
술취한 네시, 섹시한 네시 등
네시 기념품이 도시 가득

네스호에서 ‘괴물’을 봤다는 주장은 1933년 관광객 부부에 의해 처음 나왔다. 네스호 입구 도로 아래로 “키 1.2미터, 몸길이 7.6미터쯤 되고, 목이 기다란 괴물체가 뭔가를 입에 물고 지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용처럼 생긴 괴물체’에 대한 증언은 지역 신문, 이어 영국 전역을 도배했다.

이듬해 런던의 의사 로버트 윌슨이 “지나가다가 급하게 찍었다”며 목 긴 괴물체의 흐릿한 흑백 사진을 제시하자 전세계가 들끓었다. 물 밖으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목 긴 괴물­관광객 부부의 증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바로 이 사진이 우리가 숨죽이며 읽었던 소년잡지의 바로 그 네시 사진이었다. 이어 동네 어부, 사냥꾼, 생물학을 공부하는 학생까지 너도나도 괴물을 봤다며 잇달아 증언하고, 사실 7세기 고문헌에 일찌감치 그 괴물이 등장하더라는 주장도 나왔다. 어쨌거나 이 주장들의 일관된 점은 ‘도로’에서 ‘괴물’을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네스호를 따라 난 호반 도로를 천천히 달리며 네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네스호는 기다란 호수였다. 진짜 길다. 인버네스와 에든버러를 잇는 산악지대의 가운데에 난 이 호수는 산을 양쪽으로 끼고 40여킬로미터를 내처 내달린다. 구글 어스로 보면 산 사이에 끼어 있는 소시지처럼 보인다. 한쪽 끝에 인버네스가 있고, 다른 쪽 끝에 포트오거스터스라는 작은 마을이 있고, 중간쯤 드럼나드로킷(Drumnadrochit)이라는 몹시 발음하기 힘든 이름의 마을이 있다.

그리고 역시 발음하기 난감한 이름의 어커트(Urquhart)성이 있다. 네스호 관광 브로슈어 어디에나 나오는 아름다운 고성이다. 성 앞에 커다란 주차장이 있어서, 네시를 보러 온 관광객들은 관광버스를 세우고 차례로 줄을 서서 들어간다. 네시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온 우리도 얼떨결에 줄을 섰다. 네시에게 공격당한 아름다운 공주, 네시가 긁고 간 성벽 뭐 그런 거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없다! 네시의 ‘네’자도 없는 ‘낚시’ 관광지였다. 네시가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일이라 그 앞 천년간 여기 살던 귀족들께서는, 뭐 수시로 네시를 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온한 삶을 보내셨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네시를 실제로 보거나 혹은 본 것 같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게 아니라면 네시 관광객들이 갈 곳은 네시 관광 거점인 드럼나드로킷 정도였다. 각종 네시 책자를 파는 조그마한 관광 안내소도 있고, 커피숍도 있고, 호텔을 개조해서 만든 네시 전시관도 있다. 네시에 관심이 많은 동네 유지들이 만든 이 전시관은 유물 한 점 없이, 아니, 네스호 탐사에 쓴 잠수함이 한 점 있으니까 유물 두 점 없이 어떻게 관광 상품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 하겠다. ‘괴물 네시’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 상상력, 소년잡지를 통해 습득한 약간의 지식을 백분 활용하는 전시였다. 네시는 과연 있는가 없는가, 우리 주민들은 지난 70년간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정말 피나게 노력해왔다는 이야기를 6개의 전시관을 차례로 지나가며 동영상만으로 설명해준다.

네스호와 네시 탐사의 역사를 기록한 책.
네스호 끼고 도는 산자락
괴수를 못 봐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름다워

정말, 열심히도 탐사했다. 네시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처음 나타난 1930년대 이후 전쟁 시기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네시 과학탐사가 이뤄져 왔다. 특히 1960년대에는 연인원 1000명이 넘는 11년짜리 대탐사도 있었다. 비디오 촬영, 수중 촬영, 잠수함 탐사, 음파 탐지 등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했던 이 조사의 결론은 ‘없다’였다.

사람들이 네시라고 주장해 온 것들이 사실은 물에 떠 있는 나무토막, 지나가던 물범의 동그란 머리, 드물게는 강을 건너는 사슴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룡과 함께 멸종했어야 할 해양파충류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가 설명되지 않았다. 겨울엔 영하 20도까지 훌쩍 떨어지는 스코틀랜드의 차가운 겨울을 변온동물인 파충류가 견딜 수 없고, 먹이도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없다는 걸 보면 네시가 초식동물이거나 물만 먹고 산다는 건데 설득력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우리가 숨죽이며 봤던 외과의사의 사진도 안타깝게도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네시 목 주변의 파문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물체를 수면으로 던졌을 때 발생하는 파문이라는 것이다. 장난감 잠수함에 괴물 머리 모양을 붙여서 만들었다는 ‘협력자’의 증언도 나왔다. 그럼 네시는 없는 것인가.

travel tip

하루 일정이면 넉넉

스코틀랜드 인버네스가 네스호 관광의 중심지다. 런던에서 인버네스까지 기차로 8시간, 스코틀랜드 관광 거점인 에든버러에서는 기차로 약 4시간 걸린다. 기차(www.nationalrail.co.uk) 요금은 예약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달 전 예약할 경우 런던~인버네스 편도 약 14만원, 에든버러~인버네스 약 2만원 정도부터 구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만 여행한다면 곳곳을 자유롭게 버스로 다닐 수 있는 버스 패스 (www.citylink.co.uk/explorerpass.php)도 이용할 만하다. 3일짜리 패스가 약 8만원.

인버네스에서 네스호 보트 투어가 출발한다. 이동교통편 포함한 30분짜리 보트 투어가 4만원 정도다. 네스호 전시관(www.lochness.com)과 어커트성 입장료는 각각 어른 1만2천원 정도. 보트 투어, 전시관, 어커트성까지 천천히 둘러봐도 하루 정도면 넉넉하다.

여행 일정이 짧거나 교통편이 여의치 않으면 인버네스나 에든버러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관광 상품이 편리하다. 네스호를 중심으로 하일랜드 주요 명소인 글렌코 등을 돌아보는 투어다. 가격은 어른 기준 8만원 정도. 에든버러 출발편의 경우는 12시간짜리 상품으로 대부분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된다.

자동차 여행도 해볼 만하다. 에든버러 공항이 픽업 포인트. 에든버러에서 인버네스까지 자동차로 3~4시간 걸린다. 인버네스에서 네스호 끝 포트오거스터스까지 달리기만 하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교통표지판의 기준도 킬로미터 대신 마일을 사용한다. 4인승 승용차는 하루 10만원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그러나 전시장 끝으로 연결된 박물관에는 네시 천지였다. 뭐든 하나라도 더 만들어 팔아보겠다는 처절한 노력이 엿보였다. 머그컵과 셔츠는 물론 연필, 볼펜, 장식품에 심지어 빨대에까지 웃거나 찡그린 네시 캐릭터를 붙여 팔고 있었다.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조용히 어정거리고 계셨는데, 낯이 익다 싶더니, 좀 전 동영상에 등장한 지역 네스 탐사의 선봉장이셨다. 이분이 쓴 <네스호 괴물 과학탐사의 기록>은 3.99파운드라는 가격표 옆에 ‘세계 어디서도 살 수 없고 여기서만 살 수 있는 책’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팔리고 있었다. 책을 사기는커녕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고, 영감님을 알아보고 달려가 질문을 퍼부어 기쁘게 하려는 관광객은 더욱 없었다. 영감님은 멋쩍게 네시 인형들을 들었다 놨다만 몇 번 하다 뒷문으로 사라졌다.

4. 네스호 수중탐사에 이용된 잠수함. 5. 귀여운 네시 인형은 스코틀랜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6. 1934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실린 네시의 사진. 런던의 의사 로버트 윌슨이 찍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거부해 ‘외과의사의 사진’이라고 불렸다. 위키피디아 코먼스 제공
굳이 네시가 아니어도 네스호는 와볼 만한 곳이었다. 호수를 끼고 도는 산자락들은 아름다워서, 영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특히 계속 비가 오거나 내릴 예정이어서, 날씨만 맑으면 정말 아름다울 텐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특히 레이크 디스트릭트와 비슷했다. 산 사이로 난 물을 따라 달리자니 어디서 많이 본 풍경 같다 싶었는데, 스케일이 조금 큰 북한강 드라이브 길과 비슷했다. 오고 가는 차가 많아 교통 정체가 발생하고, 뒤에서 오는 차가 빨리 비키라고 바짝 추격해 오는 것도 딱 북한강 드라이브였다. 그리고 호수의 끝에 마을이 나오고, 마을 구석구석까지 펜션이, 아니 영국식으로는 비앤비(베드 앤 브렉퍼스트)가 들어서 있는 것도 비슷했다.

그날 밤엔 베르너 헤어초크 감독의 네스호 다큐멘터리를 봤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새집 냄새’가 풀풀 나는 객실의 2층이었다. 네시가 없다고 주장하는 영화 촬영 스태프에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낮에 본 영감님도 네시에 열광하는 해양생물학자로 카메오 출연을 하고 계셨다.

멸종한 고대 파충류 네시는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스호의 괴수 미스터리’만큼은 더이상 선연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인버네스와 네스호 주변의 주민, 관광객, 그리고 소년잡지의 귀퉁이를 접으며 네시를 읽던 소년소녀들에게는. 사실, 그러게 여행 아닌가. 인버네스 주민들이 이 글을 읽고 나를 찾아와 때리지 말아야 할 텐데.

인버네스(스코틀랜드)=글·사진 최명애 <북극여행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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