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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31 18:32 수정 : 2012.10.31 18:32

[매거진 esc] 스타일
패션 저널리스트 홍석우가 지켜본 ‘2012 추계 서울패션위크’의 앞과 뒤

10월22일 월요일부터 10월28일 일요일까지, ‘2012 추계 서울패션위크’가 열렸다. 지난 10여년의 서울패션위크를 돌아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코엑스(COEX)와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리던 시기를 거쳐 지난 4월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광장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껏 전부 ‘강남’에서 진행한 셈인데, 이번에는 무대를 강북으로 옮겨서 용산 ‘전쟁기념관’과 합정동 ‘자이갤러리’에서 컬렉션과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김서룡·고태용
스티브 제이&요니 피
올해도 실망시키지 않아

전쟁기념관에서는 기존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는 경력 디자이너들을 중심(참가 기준은 ‘최근 3년 이내 컬렉션 5회 이상 참가 디자이너와 독립 브랜드 5년 이상, 제너레이션 넥스트 3회 이상 참가(심사)한 기성 디자이너’이다)으로, 자이갤러리에서는 ‘제너레이션 넥스트’라는 이름으로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들 중심(참가 기준은 ‘독립 브랜드 1년 이상~5년 미만의 신진 디자이너’이다)의 패션쇼가 열렸다.

올해 4월의 2012 춘계 서울패션위크 때에도 첫날에는 계절상으로 봄답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을 고하는 듯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징크스일까. 이번에도 첫날에는 어김없이 가을비가 내렸다. 지난 장소들에 비해 한없이 넓어 보인 이번 패션위크의 장소를 처음 듣고는 ‘패션=강남’이라는 공식을 허물 기회이려니 싶었다.

소위 세계 4대 패션위크라는 파리, 밀라노, 런던 및 뉴욕과 서울패션위크의 다른 점은 독특하게도 일반인에게 컬렉션 표를 사전 판매한다는 것이다(외국은 보통 패션 업계와 비즈니스를 위해 철저히 외부인을 통제한다).

6개월 앞서 내년 봄의 패션 트렌드를 미리 선보이는 패션위크답게, 이제 막 쌀쌀해지는 날씨와 달리 화사하고 밝은 옷들이 주를 이뤘다. 오랜만에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김서룡(김서룡 옴므)은 특유의 세심한 테일러링(맞춤복) 기술을 양껏 선보였다.

마치 지중해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여유롭고 아름다운 소재가 빛을 발했다. 이제 막 10번의 컬렉션을 치른 고태용(비욘드 클로짓 바이 태용)은 선배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자리를 비운 서울패션위크의 양념 같은 존재였다. 붉은 체크무늬의 아노락(방수·방한용 파카) 점퍼부터 이삼십대가 편애할 만한 감색 레인코트는 당장에라도 입고 싶었다. 그는 이번 컬렉션을 선보인 뒤 비즈니스 미팅에서 내년 봄 다섯곳의 외국 편집매장과 백화점에 입점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봄옷의 화사한 색에는 아무래도 여성복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 마련. 현재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인 스티브 제이(정혁서)와 요니 피(배승연)는 지난 시즌보다 다소 편안한 느낌의 일상복들을 선보였는데, 얼마 전 시작한 데님 라인의 영향인지 소위 ‘청청’ 패션 또한 세련되게 풀어냈다. 여성복에 중점을 두던 컬렉션에서 점점 남성복 비중을 넓히는 점 또한 그들의 수많은 남성 팬을 생각하면 환영할 만했다. 아직 신진 디자이너 범주에 속하는 계한희(카이)는 거리 문화를 즐기는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에게 특히 호응받을 법한 컬렉션을 세련되게 풀어냈다. 여성복 비중을 높인 그는 구두 디자이너 양현선(젬마 양)과 협업한 액세서리와 가방, 구두를 쇼와 함께 선보였다.

다시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장소였던 용산 전쟁기념관과 합정동 자이갤러리로 돌아가 보자. 기사를 쓰기 위해 디자이너와 패션지 기자 그리고 국내외 바이어들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이번 컬렉션 장소 선택에 문제가 많았다’는 점이었다(이것도 꽤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6·25 전쟁이라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지닌 우리에게 전쟁기념관은 특별한 곳이다. 외국 관계자들도 많이 오는 최근 서울패션위크를 생각하면, 단지 ‘패션’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서울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 알릴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방문한 전쟁기념관에서 그러한 ‘장치’들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과 중동을 오가는 한 오스트레일리아 바이어는 사석에서 “정말로 이상한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소풍 나온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다니고, 한쪽에서는 요란하게 치장한 사람들이 패션쇼를 보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린다. 다른 쪽에서는 어느 보수단체가 정치색 가득한 시끄러운 집회를 연다.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라기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모두가 동떨어져 보였다.

2012 추계 서울패션위크가 열린 전쟁기념관.(왼쪽 사진) 비좁았던 행사장 안 런웨이와 관람석.
강북으로 옮긴 첫 무대
턱없이 좁고 이동도 불편
어정쩡한 입지 정리해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받은 장소 선택의 문제는 비단 외부 요인뿐만이 아니었다. 컬렉션이 열린 두곳의 공간을 살펴보자. 전쟁기념관 지하 1층에 마련된 컬렉션 장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혔다. 1년에 두번 열리는 패션위크에는 국내를 비롯한 외국의 수많은 관계자가 자리한다. 한눈에도 지난 패션위크보다 반으로 작아진 공간에서는 첫날부터 불만이 속출했다. 한정된 좌석에 먼저 입장하는 외국 바이어 및 기자들과 연예인 등의 브이아이피(VIP)를 들이고 나면, 정작 한국 패션에 가장 관심 둬야 할 국내 언론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앉을 자리는 턱없이 모자랐다.

기성 디자이너와 유명 브랜드가 참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기우는 전쟁기념관은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일주일 단위로 하루 평균 열 개의 컬렉션이 1시간 간격으로 배치된 이번 패션위크는 용산과 합정동이라는 두곳의 장소에서 번갈아 가면서 컬렉션이 열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둘은 결코 가깝지 않다. 주최 측에서는 셔틀버스를 운영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용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고래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듯이, 자이갤러리의 신진 디자이너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나 싶다. 패션위크의 ‘꽃’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모델도 연예인도 아닌, ‘디자이너’와 그들이 새로 창조한 ‘옷’이다. 하지만 제반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축제여야 할 패션위크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강남이라는 무릇 폐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벗어나 여러 장소에서 서울패션위크를 연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간의 제약과 함께 진행의 문제점도 여럿 보였다. 이제는 선택해야 할 때다. 패션 비즈니스를 위해 더 한정된 공간에서 소규모의 컬렉션을 치르든지, 아니면 더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동선과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한 제대로 된 축제를 여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이 위정자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 여느 때보다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인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다시 한번 반복하지 않으려는 관계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글·사진 홍석우 패션저널리스트·사진제공 서울패션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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