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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5일째,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안나푸르나 남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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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여행작가 이하람의 네팔기행 (하) 여자 홀로 완주한 8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카트만두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자마자 주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안나푸르나로 가나요? 아니면 에베레스트?”
“아니요. 그냥 쉬러 네팔에 왔어요.”
타멜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주친 독일인 부부가 내게 말을 걸었다.
“트레킹 다녀왔나요? 정말 환상적이었죠?”
도대체 히말라야 트레킹이 뭐길래 머리 위로 솟은 커다란 배낭과 침낭을 짊어지고 모두들 고행길에 나서는 걸까? 여행자 거리 타멜에서 마주친 여행자들은 대부분 트레킹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거나, 트레킹을 곧 떠나기 위해 워밍업 중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등산은 지리산 종주였다. 2박3일 지리산의 봉우리들을 넘으면서, 고장나 버린 무릎과 골반을 움켜쥐면서 몇 번이나 후회의 탄식을 내질렀는지 모른다. 그런 내게 네팔은 자꾸만 트레킹을 떠나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을 눈앞에 두고 산속을 걷는 트레킹은 네팔에 오면 꼭 도전해봐야 할 과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5300미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4130미터. 산악인들이 베이스캠프에서 히말라야 봉우리까지 설산의 정상을 정복한다면, 나는 산 아래 제일 낮은 곳에서부터 베이스캠프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1915미터였으니 네팔에서의 등산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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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로지의 모습. 인기있는 로지는 금방 방이 차서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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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0미터
셰르파에게는 고작 언덕 10월 말. 하필이면 이때가 트레킹 최적의 시즌인 건 히말라야의 계시였을까? 나는 타멜의 골목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 지도를 하나 샀다. 침낭과 스틱, 두꺼운 등산점퍼와 헤드랜턴, 장갑……. 작은 것들은 구입하고 큰 것들은 대여했다. 두 걸음 건너 하나씩 보이는 트레킹에이전시에서 ‘셰르파’로 불리는 가이드 겸 포터 한 명을 고용했다. 과연 네팔은 아무 생각 없이 와도 당장 트레킹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최고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셰르파 도르지에게 내 영혼을 맡긴 채, 인생 최고의 등반을 위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로 향했다. 네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에 산을 그리라고 하면 모두 흰색 크레파스를 집을 것이다. 어린 시절 산을 칠하느라 제일 먼저 닳았던 크레파스가 초록색이었는데, 네팔인들에게 ‘산’은 오로지 설산(雪山)의 흰색뿐이란다. 도르지는 내가 사력을 다해 걸음을 오르는 이곳이 자꾸만 산이 아니라고 해서 내 힘을 쏙 빼놓곤 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나자 예상했던 대로 밀물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북한산이었으면 정상을 찍고 내려와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걸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8일의 트레킹 기간 중 겨우 반나절도 안 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산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도르지는 짓궂은 표정으로 저 멀리 보이는 마차푸츠레(마차푸차레)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마차푸츠레도 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르지는 선심 쓰듯 마차푸츠레(6993m)를 산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들에게 5000미터 아래는 힐(언덕). 5000에서 7000미터 정도는 피크(봉우리)다. 8000미터를 넘어가야 비로소 마운틴이라는 영광의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격려하고 다독이는
동료가 없으니 외롭고 지쳐
5일만에 캠프 도착 “그럼 한국엔 산이 없단 말이에요?” 한국인이 대한민국의 산에 대해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도르지가 알기나 할까? 나는 씩씩대며 걸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산이 아니라니 성질이 나기도 했고, 오기가 나 속도를 붙이니 금방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들의 언덕이나 구릉쯤을 오르기 시작한 첫날, 1500미터의 마을 란두룽에 도착했다. 로지(lodge)라고 불리는 여행자 숙소가 띄엄띄엄 보였다. 트레킹 시즌에는 로지가 있는 마을에 늦게 도착하면 잘 곳이 없을 수도 있단다. 쉬엄쉬엄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트레킹을 즐기려는 여행자와, 숙소가 다 찼을까봐 걱정이 돼서 서두르자고 보채는 셰르파 사이에선 본의 아니게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친절한 나의 셰르파, 도르지는 내가 지치지 않도록 속도를 맞춰주고 “조금만 가면 밥 먹을 수 있어요”라는 내게 가장 필요한 말로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둘째 날 아침은 모든 트레커들이 가장 고역으로 기억하는 날이다. 몸의 근육 하나하나 아프지 아니한 곳이 없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 또한 공포스럽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몸부림치는 관절과 근육들을 부여잡고 로지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 아침을 챙겨먹는 행위는 생존본능에 가까웠다. 주섬주섬 배낭에 짐을 챙겨 넣었다. 도르지가 힘이 들까봐 그에게 내 짐을 다 주지 않고 작은 배낭에 무게를 나눴었는데, 배낭을 정리하며 그가 멜 배낭에 내 짐을 몇 개 더 집어넣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침 7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한 트레킹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다. 둘째 날의 목적지 촘룽(촘롱, 2100m)으로 가는 길에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힘들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손을 잡고 끌어줄 사람도 없다. 등산화 발끝만 내려다보며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랐다. 도르지는 이미 저만치 올라가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니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나중에 정말 미운 사람이 생기면 히말라야 트레킹을 강력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났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히말라야가 온전하게 가슴에 담기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펼쳐진 풍광과 설산에 베일 듯 유리처럼 맑은 하늘. 깨질 것 같은 대자연의 풍경 앞에서 도시에서의 찌든 고민들은 바람이 쉬이 불 때마다 씻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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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일정을 함께하며 트레커와 셰르파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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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하산길
그래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여정 혼자 떠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하는 동료가 없으니 빨리 지치고, 로지나 식당에 도착해도 응원하고 다독여주는 친구가 없으니 고독하다. 그래서 홀로 떠나는 트레커들은 트레킹 가이드인 셰르파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말을 제법 할 줄 아는 도르지 덕분에 힘든 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이 통해도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면 입도 뻥긋 뗄 수 없을 만큼 숨이 찬다. 이때부터는 이 기나긴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 육체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공허함이 맞부딪쳤다. 가깝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인생사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생각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현재에 이르렀다. 기억하고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2600미터 도반에 도착했다. 이제 3일이 지났고 히말라야의 고봉들은 한 뼘 더 가까워졌다. 도반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바로 아래 로지가 있는 마차푸츠레 베이스캠프(3700m)로 향하는 길.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발을 내딛기가 힘들다. 숨이 가빠지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리하면 고소증세(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가 줄어들어 신체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가 올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겁이 났다. 내 속도가 줄자 도르지는 로지의 빈방을 먼저 맡아놓겠다며 앞장서 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옆으로 어느 단체팀의 포터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도 날다람쥐처럼 산을 누비고 다닌다. 로지에서 파는 음식이 입에 안 맞을 것을 대비해 4명 이상의 단체팀은 현지인 요리사를 고용하기도 한다. 음식 재료와 식기들을 함께 가져가야 하니 트레커 네댓에 포터가 열 사람 가까이 된다. 트레킹 인원이 많을수록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처럼 혼자 온 트레커가 요리사까지 대동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로지의 음식이 모두 맛있고 잘 맞는 내 식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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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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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트레킹을 시작한 첫날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마차푸츠레(6993m), 설산 등반은 금지돼 있다. 6. 트레킹 중 만나게 되는 작은 가게. 한국산 라면까지 필요한 건 다 있다. 7. 구룽족이 살고 있는 간두룽(1500m)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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