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11.07 18:16 수정 : 2012.11.08 19:09

[매거진 esc] 라이프
도심 속 야외에서 영화보기의 즐거움 돋우는 특별한 공간과 프로그램들

옥상의 밤이 축제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 별천지가 되는 옥상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영화를 상영하는 실험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버려지기 일쑤인 옥상의 새로운 발견이다.

지난 1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 낮동안 잠잠하던 50여평 3층 옥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불을 밝힌 가운데 텐트 세 동이 세워지고 포장마차까지 들어섰다. 홍대 앞이니 무슨 일이 벌어진대도 이상할 건 없으려니와 다만 무슨 일인가 호기심이 생길밖에. 매주 목요일 6주 동안 열리는 ‘텐트에서 즐기는 캠핑영화관’. 이름하여 ‘텐트 올나이트’ 첫날이다. 젊은이 천지다.

“요즘 캠퍼스 삭막해요. 캠프 가기 힘들어요. 1박 한다는 건 꿈도 못 꿔요. 잠깐 교외로 놀러 간다는 느낌으로 왔어요.” 홍대생 김정은씨 일행 네 명은 영화감상에 앞서 저녁 대신으로 닭강정을 먹었다. 숭실대 전기공학과 조연경·김나래씨는 쌀쌀해진 날씨에 무릎담요를 준비했다.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
‘텐트에서 즐기는 캠핑영화관’
영화감상에 여행의 설렘까지

‘한움큼관’ 20여개 좌석이 차자 인디밴드 ‘왓썬더뷰리풀’의 공연이 시작됐다. 장난기가 뚝뚝 묻어나는 이 2인조 밴드는 상큼발랄한 젊은 노래를 연주했다. 가수와 관객은 이내 하나가 되어 같은 추임새를 주고받았다. 40분 안팎 공연이 끝나자 포장마차에 줄을 섰다. 60명분 어묵과 계란이 금세 동났다. 사람들은 화롯불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 영화 얘기를 했다.

“골라 보는 재미가 있어요.” 오재원(59·한강야생탐사센터), 정미향(45)씨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상영작은 <공기인형>(응큼관), <나는 인어공주>(상큼관), <언노운 우먼>(통큼관), <젤리피시>(한움큼). 이들은 인터넷 예약을 못했지만 여유 자리가 있다는 ‘응큼관’으로 향했다.

<언노운 우먼>의 통큼관. 기자를 포함해 관객 11명이 들었다. 밖에서 반투명 텐트천에 쏜 프로젝션 화면을 안쪽에서 보는 방식. 바닥에 편하게 앉았달 뿐, 감자칩 씹는 소리는 여느 영화관과 다르지 않다. 바람이 불어 텐트가 펄럭이면 스크린이 일그러지고 등장인물들의 표정도 구겨졌다. 지각 관객이 텐트 지퍼를 올리고 내리는 소리, 이웃 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대사가 간간이 섞여들 뿐 지상의 소리는 아득했다. 시간이 지나며 관객들은 화면으로 빨려들어갔다. 추리기법의 영화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오호, 아하 탄사가 들렸다. 일상의 외투를 벗은 관객들은 같은 표정, 같은 추임새다. 12월6일까지 열린다.

에스콜라 알레그리아
6월부터 브라질 영화 상영
음악도 즐기고 먹는 재미까지

옥상 하늘에 늦가을 별이 보였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군청에서 여름밤을 도와 시골을 돌며 영사기를 돌렸댔다. 마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산길을 넘고 개울을 건넜다. 농협 창고 시멘트 외벽이 영화 스크린. 차르르 영사기가 돌아가면 사람들 검은 머리통이 화면으로 불쑥불쑥 솟았다. 지나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가 끼어들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흐르는 가로수 그림자가 섞였댔다.

삼바 음악과 춤 교육 공간인 에스콜라 알레그리아(마포구 창전동 4-5)에 여는 ‘남십자성이 보이는 또다른 서울의 밤’은 숫제 ‘옥상영화제’라는 이름을 달았다. 6월부터 매달 둘쨋주 토요일 저녁 7시면 이 건물 옥상은 영화관이 되었다. 그동안 브라질 영화 <비니시우스> <삼바의 비밀> <흑인 오르페> <너무 아름다운 것> <눈을 향한 음악> 등을 틀었다. 상영에 앞서 영화와 관련된 브라질 음악을 연주하거나 함께 노래를 부르고, 브라질 음식을 조리해 함께 먹었다. 관객이 많게는 50명, 적게는 10명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 올해 마지막으로 상영하는 영화는 오는 10일 <음치들(지사피나도)>이다. 이날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울 예정이다.

브라질에서 남미음악을 공부하고 2000년 초반 귀국한 이승호씨가 이 공간을 차렸다. 현지인들과 뒤섞여 가난하지만 음악과 함께 살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삭막하기 이를 데 없더란다. 없어도 재밌게 사는 삶의 기쁨을 나누고자 춤과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영화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옥상영화제를 떠올렸다. 이 대표는 “지척이 홍대 번화가이지만 옥상에 올라가면 주변 소음과 차단돼 밤에 외국 영화를 틀면 먼 나라에 온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전국의 전망 좋은 옥상을 떠돌며 영화를 틀 생각이다.

life tip

‘텐트 올나이트’ 캠핑영화제 상영작

11월8일 <캐쉬백> <청설> <블레이드러너>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15일 <베니스의 죽음> <미투> <남극의 셰프> <50/50> 22일 <내가 사는 피부> <허니와 클로버> <렛미인> <자전거 탄 소년> 29일 <하녀> <500일의 썸머> <비카인드 리와인드> <르 아브르>

12월6일 <해변의 여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 <자전거 도둑>

영화관람 신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http://cafe.naver.com/seoulartspace/)

옥상영화는 젊은 영상작가들의 모임인 프로젝트 옥상의 ‘2010 옥상과 영상’전을 효시로 친다.

종로구 인사동 금좌빌딩 옥상에서 여는 ‘옥상과 영상전’은 올해로 벌써 세번째다. 2008년 영상작가인 심혜정·김홍빈씨가 자신들의 작품을 상영한 이래 2010년부터 해마다 8월이면 4층 40~50평 옥상에 스크린 두개와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청년작가들의 실험 영상, 애니메이션, 작가 대화 등을 선보였다. 상영공간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시작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독특한 행사로 굳어졌다. 올해는 별도로 서울영화집단과 함께 다큐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인사동 옥상은 휘황한 종로타워가 올려다보이고 전통 한옥이 내려다보이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장소성이 중요하게 느껴지면서 영화 상영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가 되더군요. 관객과 작가가 공간과 일체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를 주관하는 ‘프로젝트 옥상’ 배우리씨는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을 관객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옥상과 영상전이 주목을 받으면서 여러 대학에서 영상동아리들이 옥상영화제를 잇따라 열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j@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