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4 18:30
수정 : 2012.11.14 18:32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사랑의 육체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 5선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육체적 끌림에서 시작해 육체적 합일로 끝장을 보는 것이라는 점을 낙인찍듯 보여주는 몇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어쩌면 섹스에서 시작하거나 확신을 얻는 사랑이 있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그거 빼고 말하면 너도나도 아마추어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열풍이라 혹시 ‘그런 책들’ 더 없나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난이도별 추천작을 소개한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구경미·한유주·김이설 외 지음)
이 책의 부제는 ‘여성 작가들의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다. 김이설이 쓴 ‘세트 플레이’는 고등학생들의 탈선을 그렸다. 채팅으로 만난 아줌마와 모텔에서 섹스를 하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주인공. 그에게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맞아 반신불수가 된 형이 있고 그 사이에 어머니가 있다. 작가 특유의, 폭력 장면에서 묻어나는 처연함이 소재의 선정적인 면을 감싸안는다. 이평재가 쓴 ‘크로이처 소나타’도 문학과 섹스가 어떤 접점을 가질 수 있는지, 흥미진진한 상상을 보여준다.
'제리'(김혜나 지음)
“애초부터 아프지 않게 집어넣을 방법 따위란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수록 더 강한 힘을 주어 밀어넣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까지도.” 귓불에 피어스를 집어넣는 순간을 묘사하는 표현의 생생한 육체성은 이 책 전체가 보여주는 고통의 감수성과 닮은 데가 있다. 수도권의 별볼일 없는 2년제 야간대학 학생인 ‘나’, 그리고 노래바나 호스트바에서 선수로 뛰는 ‘제리’. 출발부터 뒤처진 그들에게 일상은 무의미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섹스뿐이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섹스라는 표현의 관계가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청춘들의 삶은 그들이 갖지 못한 미래에의 희망보다 생생한 몸의 언어에서 도드라진다.
'더블 판타지'(무라야마 유카 지음)
어떤 소설인들 작가의 이력에서부터 그 이야기가 비롯했으리라 추측하지 않겠는가만 <더블 판타지>는 유난히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책이다. 남편에게서 떠나 섹스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우는 여자의 이야기다. <실락원>의 와타나베 준이치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거기에서 얻은 실감을 소중히 키우고 승화시켜 완성한 것이다”. 일상도 부부관계도 고요한 호수 같다면, 그런데 그 문제없는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파격적인 답.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 지음)
‘그림자’ 시리즈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이 가장 재밌다는 사람과 3권이 가장 낫다는 사람으로 나뉘는 듯하다. 1권에서 사도마조히즘적 섹스를 처음 구경한 사람은 그 신기함이 3권까지 이어지지 않으며 내용이 너무 뻔하다고 불평하고, 주인공들과 주변인들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 알고 싶은 사람은 3권으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고 말한다. 영미권에서 이 책은 로맨스의 하위장르인 ‘에로티카’로 분류되는데, 연애감정보다 섹스신이 더 비중있게 다뤄지는 성인 여성을 위한 장르다.
'O 이야기'(폴린 레아주 지음)
앞의 책들이 가진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그냥 커피라면, 이 책은 티오피…다. 애인의 손에 이끌려 간 낯선 곳에서 옷을 다 벗고 채찍질을 당하고 전시당한 뒤 그의 앞에서 낯선 남자들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여자주인공 O는 애인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뿐만 아니라 결국은 그 안에서 쾌락을 찾아낸다. 필명을 쓴 작가가 남자일 거라는 오해를 받아왔지만 사드의 소설에 매혹된 기혼자 애인을 위해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사실이 수십년이 지나 알려졌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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