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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에서 열린 ‘마르쉐@혜화’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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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
디자인적 감각과 생태적 가치가 결합한 ‘마르쉐@혜화’…도시의 새로운 장터 풍경 흥미진진
은행잎이 비처럼 흩날리던 11월 초 청명한 가을 아침,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앞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 장터가 한창이었다. 직접 기른 농산물들과 올바른 방식으로 요리한 다양한 음식들이 도시인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바로 마르쉐@혜화의 두번째 장터가 열리던 날. 하늘을 가르며 세워진 노란색과 파란색의 가림막들은 마르쉐@혜화를 상징하는 또다른 로고이기도 했다.
마르쉐@혜화는 건강한 먹을거리, 소규모 직접생산을 통해 자립의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도시 장터이다. 시장, 장터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marche’에 장소 앞에 붙는 전치사 at(@)을 사용하여, 어디든 장터를 열고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마르쉐@○○○로 불린다. 지금은 혜화동에서 열리고 있어 ‘마르쉐@혜화’이지만 이후 어디든 뒷자리를 바꿔가며 도시 장터를 열 수 있게 진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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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나온 유기농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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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의 삶 꿈꾸는
젊은이들 응원하는 장터 처음 이 장터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인생사용법’ 전시에서였다. 첫번째 전시공간에 마련된 <우연한 공동체> 파트에는 김수향, 길종상가, 노네임노샵, 더북소사이어티 등이 참여하여 소규모 단위의 공동체 활동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가닉 카페 수카라 대표이자 세계 로컬시장 마니아인 김수향씨의 <나의 시장 만들기>였다. 그가 직접 일본어로 녹음한 내레이션과 함께 한 짧은 영상 안에는 원전 사고 이후의 두려움(원전 사고 당시 그는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가치를 찾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내가 구입하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의 생산, 유통 과정을 알고 소비하고 싶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후 그녀는 십년후연구소 대표인 송성희씨, 문래·홍대옥상텃밭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보은씨와 함께 마르쉐를 기획하게 된다. 손님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기르고 만든 제품을 당당하게 건넬 수 있는 도시 장터. 그것이 마르쉐의 시작점이었다. 전시에서는 도시농부와 핸드메이드 작가들, 올바르고 투명하게 재배된 농작물과 음식,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공동체 ‘마르쉐’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만난 공동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의미도 좋았지만, 함께 전시되어 있던 각양각색의 병절임 채소들, 도시농부들의 재미있는 프로필 소개에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겼던 기억이 있다. 서교동 누군가의 옥상에서 채소들이 자라고 부암동 어귀에서 벼가 자라난다. 소박하지만 정직하게 자라난 채소들이 마르쉐@혜화라는 작은 시장을 통해 서울의 시민과 공유되고 있다. 두번째 열렸던 11월의 마르쉐@혜화에서는 홍대텃밭다리와 문래도시텃밭, 암사동, 성북동과 부암동, 노원, 노들섬의 도시농부들이 생산한 각종 채소를 비롯하여 광명, 김포, 과천, 용인, 일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생산된 계절 채소와 유정란, 텃밭 채소 등 각종 먹을거리가 서울 로컬푸드의 맛을 전했다. 농부와 요리사 파트 외에도 직접 바느질하고 핸드메이드로 완성된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아티스트 파트가 함께한다. 재미있는 것은 장터에 참여하는 농부, 요리사들의 대부분이 디자인이나 예술 등의 장르에 배경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적인 감각과 생태적 가치의 중요성이 결합해 삶의 또다른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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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잼이 장터를 찾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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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품 안쓰는 음식 등
진화하는 장마당 눈길 참여한 팀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파릇한절믄이’(나혜란)에서는 파절이 고구마로 만든 파블리크빵을, ‘암사동짚달걀’(김의숙)에서는 짚달걀, 마늘고추장, 말린 나물, 푸성귀, 비즈 액세서리 등을 판매했으며 ‘레슈바빈’(박미진&시릴)에서는 발라 먹는 초콜릿, 유럽 채소 병절임, 브라우니와 사과케이크, 바질주스, 유럽 채소 등을 선보였다. ‘다정한 영자씨의 무우’(김성은)에서는 배추, 무, 3년 묵은 된장과 국간장 등을 팔았으며, 얼마 전 디자인 칼럼에 소개했던 ‘파머스파티’ 사과도 많은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ㅂㅂㄹㄷ’(하미현)에서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찰음식 핑거푸드를 내놓아 인기를 얻었고 ‘Dancing Drops’(전은하&Frantisek)에서는 발효음료와 헝가리 음식인 굴라시(구야시: 수프)를 내놓아 뜨끈한 행복을 전했다. 이외에 ‘cafe EAT’(이지희, 이인숙)에서는 애플사이다, 뿌리채소 병절임, 장아찌, 생강시럽 병절임, 단호박수프&치아바타(차바타), 파운드케이크를, ‘굿핸즈굿마인드’(조남룡)에서는 나무소품, 치즈도마, 나무접시 등을 판매하며 마르쉐 장터에 활기를 더했다. 도시형 장터는 서울에서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마르쉐 이외에도 달시장, 서울 농부의 시장 등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는 장터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과 함께하는 영등포구의 ‘달시장’(dalsijang.kr)은 유기농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들까지 파는 아트마켓, 벼룩시장 등으로 진행된다.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리는 서울 농부의 시장(seoulfarmersmarket.com)은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으로 도시농부들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마르쉐에는 다른 장터와 차별화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조립식 형태로 장을 열 수 있게 제작된 ‘마르쉐@ 키트’다. 재능기부로 참여한 디자인그룹 노네임노샵은 전통시장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매대, 불자리, 물자리 등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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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풍의 찻잔을 가지고 나온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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