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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시클테크 과천센터 주인 이봉주씨는 욕심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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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넥타이보다 작업복이 어울리는 남자들
어! 그 빵집 어디 갔지? 그 커피점은? 낯익은 거리도 보름 뒤면 새 간판이 수두룩하다. 다시 들어서는 것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뜯고 노는 데다. 노동 외의 것을 축약하면 그것일 터이고, 큰 투자나 기술 없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그럴 법하다. 그러다 보니 간판쟁이 좋은 일만 시키고 손 털고 나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지난 14일 자전거포 두 곳을 찾았다. 주인들은 모두 화이트칼라 출신으로 잘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가게를 차렸다. 넥타이에서 작업복, 펜대 대신 스패너다. 큰길에서 한 블록 뒤 골목에 자리잡은 게 특징. 자본금은 7천만원 정도. 떼돈이 벌릴 리 없지만 그럴 생각도 없다. 9~10평. 주된 품목은 생활자전거이고 한편에 정비대와 공구대를 갖췄다. 그래서일까, 사장님보다는 주인 또는 아저씨로 불리기를 바란다. 이들은 굳이 자전거가 친환경이니 뭐니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20년은 갈 거라고 했다.
바이시클테크 과천센터 주인 이봉주(48)씨의 직함은 미캐닉(정비사)이다. 2010년 7월 애초 자전거 8대로 시작해 120대로 늘었어도 명함은 그대로다. 그럼 가게는 뭐라고 자칭할까? 바이크 숍? 자전거포? 그는 ‘자전거 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숍이기를 바라는 이한테는 숍, 포이기를 바라는 이한테는 포가 되려 한다고 덧붙였다.
“옛날 자전거포는 펑크를 때우고 헌것을 수리해서 팔기도 했지요. 구태의연한 대신 인간미가 흘렀습니다. 지금은 그런 데가 없어요. 요즘 생긴 숍은 규격화한 표준을 갖고 정비를 합니다. 동호인 사랑방 구실도 하고요.”
그는 자출족이었다. 과천에서 강남까지 5년여 동안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자전거 동호회도 참여했다. 생활과 취미의 일부가 변해 제2의 삶터가 됐다.
“숍을 하면 자전거를 많이 탈 줄 알았는데 아닙디다. 팔도를 돌아치다가 요즘은 초보자 교육 핑계로 일주일에 한번 한강 다녀오는 것밖에 없어요.”
과천 이봉주씨팔도를 폼잡고 주름잡다
9평 작은 점포 맴돌지만
단골·자전거와 일체감 대신 그의 손을 거친 자전거가 잘 구르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전거와의 일체감은 자전거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자전거를 바닥에 뉘거나 뒤집지 않고 정비대에 똑바로 고정시켜 정비한다. 손님들도 마찬가지. 자전거가 대우받는 데서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덤은 필수. 정비 외에 체인, 브레이크, 변속기를 손보고 오일을 뿌려준다. 그래도 여름 280㎞, 겨울 혹한기 두 가지 랠리를 다녀온다. 순위 경쟁이 아닐뿐더러 워낙 힘들어 완주에 의미를 둔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 흐트러졌을지도 모르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다. 홀로 라이트 하나 밝히고 칠흑 어둠을 지나며 집안과 식구, 가게와 손님들과의 관계를 되짚어본다. “그 전 직장에 비해 공간과 관계가 축소되었지요. 단골이 곧 저의 인간관계의 척도입니다. 일상이 그만큼 진해졌달까요.” 그는 처음 구매하려는 사람한테 혼자 탈 거냐, 동호회 활동을 할 거냐고 묻는다. 후자라면 좋은 것을 사는 게 이중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저가는 외제나 국산이나 비슷해요. 엔진, 즉 타는 사람이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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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자전거포 주인 박상준씨의 제1원칙은 ‘자전거로 사람 차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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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자전거포 아저씨
구르는 바퀴 앞에서
손님은 모두 평등 출판사 편집장으로 잘나가다 기름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넉달 전. 헌책방과 자전거를 고민하다가 자출 경험도 있고 해서 자전거다 싶었다. 정비학원 다니며 보아하니 욕심부리지 않으면 살 만하다고 판단했다. 헌책방은 행여 출판계 선배를 귀찮게 하지 않을까 애초 싹을 잘랐다. 11월에서 2월까지 비수기라는데, 운을 떼자 그건 알고 시작했다고 했다. 옆눈치 안 보고 적게 벌어 적게 쓰겠다는 거다. 그가 세운 제1원칙은 ‘자전거로 손님을 평가하지 않는다’. 비싼 자전거면 ‘귀빈’, 싼 자전거면 ‘안 귀빈’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꾸로 자기 자전거를 뽐내거나 동네 가게라고 무시하는 손님은 ‘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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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자전거를 타는 이봉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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