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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되기 직전 흥전역의 스위치백 구간. 객차는 심포리로 직진하고, 화물차는 나한정으로 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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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라이프
전세계 최후의 스위치백 방식 운행하다 폐선한 강원도 통리~도계 구간 답사기
철도마니아 취재의 정점은 스스로 마니아 되기. 나의 선택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폐선 답사다. 고민 끝에 강원도 통리~심포리~흥전~나한정~도계 구간을 찍었다. 이 구간은 6월 말 동백산~도계 직통 터널이 개통되면서 더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싱싱한 폐선이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까지 스위치백으로 열차가 운행하던 흥전~나한정 구간이 포함돼 있다.
지난 21일 오전 강원도 도계역. 첫발은 김연수 부역장의 ‘스위치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
스위치백을 이해하려면 철도를 알아야 한다. 열차는 쇠바퀴와 철로의 마찰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선로 기울기가 3/100, 즉 100m 거리에 높이차가 3m를 넘으면 기관차는 헛바퀴를 돈다. 오르막에서는 아무리 출력을 높여도 제자리에 머물고 내리막은 브레이크를 걸어도 미끄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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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선 뒤의 흥전역 부근.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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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늦게까지 스위치백 운행
지난 6월말 동백산~도계
직통 터널 뚫리며 폐선 동고서저의 지형을 타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 해발 680m 통리에 이른 열차는 도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도계의 고도는 245m. 직선거리는 6.3㎞인데 고도차는 435m에 이르러 열차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적용된 방식이 인클라인과 스위치백이다. 통리역~도계역 사이에 열차를 고개 너머로 이동시키기 위해 심포리, 흥전, 나한정역이 만들어졌다. 즉 고도차가 209m나 되는 통리와 심포리 사이 1.1㎞에 인클라인이 설치됐다. 쇠줄로 열차를 끌어 오르내리는 설비인 인클라인은 1963년 산골터널을 우회하는 7.7㎞ 노선이 만들어지기까지 운용됐다. 다음으로 심포리와 도계의 고도차가 226m. 심포리에서 노선을 구부려 천천히 고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여 흥전까지 고도를 349m로 낮춘 다음, 도계에서 서서히 올라와 나한정에서 고도 315m에 이른 철길과 Z자로 연결했다. 고도차 34m를 1.5㎞의 사선으로 극복한 것이다. 그게 바로 열차가 후진하여 고도를 조정하는 스위치백 구간이다. 부역장은 단숨에 이치를 설파하고 머리 나쁜 기자를 승용차로 실어 나한정역 근처에 떨궜다. 걸어야 할 곳은 나한정에서 흥전을 거쳐 심포리까지 오른 다음 되돌아 도계까지 내려오는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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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리역. 폐선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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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석 구간의 열차대피소.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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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용 레일바이크
운행할 예정 심포리로 가는 오르막길. 철길 가운데 구절초가 시들고 길가 억새꽃이 오후 잔광에 새하얗다. 철길과 등을 지고 앉은 민가의 감나무 열매는 아직 붉다. 몇번의 부름에 고개를 내민 중년 사내는 열차가 다니지 않으니 조용하고 좋다는 대답이다. 열차를 이용하려면 도계까지 나가야 하는 그에게 집 뒤를 지나가는 열차는 시끄러운 철물이 아니겠는가. 터널을 지나 맞닥뜨린 짧은 누드터널. 땅속을 뚫고 나아가는 터널과 달리 콘크리트 구조물이 노출돼 있다. 날선 철길이 기슭을 베고 나아가면서 행여 있을지도 모를 낙석으로부터 열차를 보호하기 위한 피난시설로 쓰였다. 아치형 구조물은 왼쪽으로 몇개의 창을 열고,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도레미 키를 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또다른 터널 앞에서 뒤돌아 계곡으로 떨어진다. 초겨울 벌거벗은 나무 사이로 난 골짝길이 언덕을 넘으면 심포리로 이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지만 웬걸, 계곡은 누런 물이 흐르고 그 길의 끝에는 무덤 몇개와 어린 소나무가 심어진 거대한 흙산이 가로막고 있다. 하릴없이 돌아내려오니 승용차를 끌고 온 남자가 더러운 계곡 옆에서 약수를 받고 있다. 길의 끝에는 탄광이 있었고, 흙무덤은 탄을 소진한 갱도를 파묻은 자취라는 설명이다. 탄을 실은 트럭이 오가던 길은 이제 산전을 일구는 주민이 이따금 오갈 뿐이라고 한다. 차를 얻어타고 내려와 이른 나한정. 기척 없는 몇몇 인가에 재래종 닭이 꼬꼬거리고 도사견이 이방인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철길은 소먹이로 쓸 옥수숫대와 비닐하우스용 철골 차지다. 후진하는 열차를 위한 신호등은 불이 꺼지고 무인 건널목 경고판은 무람없다. 도계로 이어지는 철길은 다만 지루하다. 평행한 철길은 재미없고 자갈길은 반복에 반복. 도계에 미치면 철로변 마을. 국민주택으로 이름을 바꾼 석탄공사 사택들이 쏟아낸 십구공탄 재가 “여기는 탄광도시요”라고 말한다. 60년 전에 난 철길은, 이제 인클라인, 스위치백을 산중에 남겨두고 동백산에서 도계를 직행하는 솔안터널로 자리를 옮겼다. 최신식은 또다른 최신식한테 구실을 넘기고 기억이 됐다. 폐선이 되면 철길은 걷어내는 게 원칙. 하지만 옛길을 그대로 두어 정선선, 문경선처럼 관광용 레일바이크를 운행한다는 계획이다. 폐선이 레저지구로 거듭나는 2014년이 되면 손님이 많아질 것이라는 전두시장 식당 주인을 끝으로 답사 완료. 이 정도면 철도 덕후 대열에 낄 수 있으려나. 말을 꺼내놓고도 어림없지 싶다. 도계=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유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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