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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8 18:49 수정 : 2012.11.30 10:30

황성덕씨의 사진작품. 그는 계절과 열차가 조화 또는 충돌하는 장면을 즐겨 찍는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아마추어 뛰어넘어 책 내고 철도를 업으로 삼는 등 철도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

철도마니아들의 철도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최고를 추구하고, 돈벌이는커녕 자신의 돈을 써가면서 이를 즐기는 게 공통점이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의 행태를 빼박았다.

브라스 열차 모형에 미친 선진정밀 이현만 대표.

폐선된 수인선의 빈정철교.
주말마다 간이역 폐선 답사
찍은 사진만 1만여장

순수한 취미로 따로 직업을 갖고 있으며 철도를 즐기는 아마추어. 대부분의 마니아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주로 주말을 이용해 자료를 모으고 답사를 한다. 엔에이치엔(NHN)에서 커뮤니티서비스를 관리하는 임병국씨. 그는 2000년 초부터 3년에 걸쳐 600여개의 간이역을 답사했다. 고속·직선화하면서 조그만 역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울 뿐 아니라, 그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추억조차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사진에 담았다. 그 작업을 마치니 폐선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사를 한 결과 전국에 40여군데에 이르렀다. 도계~통리, 마산~진주처럼 직선화하면서 두 지점 가운데에 생기는 폐선 또는 이설 구간, 노반·철교·역사 등 기초공사를 완료하고 궤도를 부설하기 전 공사가 중단된 곳, 노반공사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중단돼 일반도로로 활용되는 곳 등 폐선의 등급도 다양하다. 어떤 곳은 문헌에 나오는 한 문장을 토대로 현지 지형을 답사해서 찾아내고, 어떤 곳은 현지 노인들의 구술을 통해 발굴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조사한 폐선 자료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15분의 1에 불과한 마니아로는 소비할 수 없는 특수주제인 탓이다. 그는 때가 무르익으면 책으로 묶어낼 생각이다.

로또리치기술연구소 김명진 연구원. 로또복권 통계 전문가이지만 주말에는 폐선 답사를 한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밭으로 변한 노반, 문을 달아 김치창고로 이용되는 터널 등이 보인다. 최근에 답사한 곳은 수려선. 1930년 개통돼 1972년까지 운용된 수원~여주 협궤철도로 여주의 쌀을 실어날라, 수인선을 거쳐 인천으로 보냈다. 김씨는 철길이 지명과 주민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밤에 아스팔트 길을 살펴보니 땅속에 묻힌 철로의 흔적이 보이더라고 했다.

마니아에서 코레일 직원이 된 황성덕씨.
코레일로 직장 옮겨
일과 취미 환상적 조화

철도가 좋아 코레일 직원으로 철도마니아들의 꿈은 코레일 직원이 되기. 취미와 일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경우다. 경기도 고양시 고속경정비센터에 근무하는 황성덕씨. 케이티엑스 열차 행선표시기, 차내 독서등 전원장치, 동력차 제어카드 일부를 수리하는 게 그의 몫이다. 그곳에 입사한 지 2년이 돼 가는데도 아직 꿈꾸는 기분이다. 전 직장에서 아침마다 느끼던 도살장 끌려가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처음 발령나던 때, 그는 철도원의 꿈을 키워준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아 술을 올렸다.

그의 취미는 철도사진. 변하는 계절과 변하지 않는 열차가 조화를 이루거나 충돌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좋아하는 포인트는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구글지도에서 적절해 보이는 곳을 ‘찝어’ 주말을 이용해 무작정 찾아간다. 초기에는 셀 수 없이 허탕을 쳤지만 요즘은 쓸 만한 사진을 80%쯤 건진다고 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1만장을 넘는다. 그의 사진에는 마니아들만 아는 코드가 숨어 있다. 지금은 없어진 추억의 열차들이다. 2007년 12월에 찍은 태백선 6칸편성도 그런 예다. 앞 세 칸은 민둥산역에서 갈라져 철암으로, 나머지는 정선선 구절리로 가는 것인데, 그해 말로 정선선이 폐선되면서 사라졌다.

케이티엑스 유기윤 기장, 서빙고역 신명식 부역장도 철도사진을 찍는 마니아. 유 기장은 공항철도 개통 당시 인천항에서 전동차를 바지선에 실어 영종도까지 운반하는 이례적인 사건을 영상으로 기록하였고 신 부역장은 전국의 간이역을 수년에 걸쳐 답사하고 <간이역 오감도>라는 책을 썼다.

구로역 관제센터에 근무하는 이재원씨. 그는 지하철·전철역에 관한 모든 정보를 종합한 MEIS(www.meis.pe.kr)를 운영하는 블로거. 가장 빠르게 환승할 수 있는 방법을 처음으로 총정리해 많은 사람들이 덕을 보고 있다. 전동차 정차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운 역이 생길 때마다 업데이트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파워블로그인데도 일체의 광고가 없으며 축적된 정보는 거저 제공돼 지하철역 경로 검색 애플리케이션 기초자료로 쓰이고 있다.

빼박은 기관차 모형 제작
외국서 귀빈 대접 받기도

기관차 모형 만들기에 빠진 사람들 7월 철도문화체험전에 유독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작은 공간에 축소한 철도에 모형기차가 달리는 1/160 크기의 모노라마가 그것. 모형 제조업체인 지에스모형에서 판을 깔고 모형마니아들이 소장한 기관차 모형들을 내놓았다.

지에스모형 조병훈 대표는 본디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는 건축물모형 전문가. 철도 기관사로 일했던 아버지 퇴임선물로 자신의 전공인 건축물모형과 철도모형을 결합해 철도 디오라마를 만들어본 게 빌미. 취미로 시작한 그 일은 정교하고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면서 철도 관련 업체, 철도 마니아층에서 한둘씩 주문이 들어왔다. 이젠 명실공히 국내 일인자가 됐다. 연말이면 사무실에 대형 디오라마를 마련하고 열차모형 마니아들을 초대해 함께 즐긴다.

cover story tip

폐선 답사 여기부터

안성선 미양~안성 구간 미양역 터에 플랫폼 일부, 주변에 농협창고가 남아 기차역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안성시내 초입에는 안성천철교를 건너던 교각의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수인선 야목~어천 구간 마지막 협궤철도 레일 일부가 남아 있다. 어천역사 건물과 방송대 근처 화산터널이 볼거리다.

동해중부선 일제 때 건설되다가 중단된 교각, 노반, 플랫폼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척의 용화~장호 구간은 현재 해양레일바이크를 운행하고 있다.

중앙선 단양지역 수몰구간 볼거리는 중앙선 터널. 30여년 전,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옮겨간 구간인데, ‘충북단양역’ 플랫폼의 잔해가 가끔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장항선 선장~도고온천 구간 장항선이 복선화하면서 옛 도고온천역~선장역~학성역~신창역 구간이 옮겨갔다. 선장역 일대의 넓은 들판과 철길 풍경이 볼만하다. 아직까지는 특별한 활용계획 없이 방치되어 있다.

국내 기관차를 모델로 한 모형을 처음으로 만든 한국정밀모형 이명수 대표.
체험전에서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은 또다른 것은 초기 미국에서 운행했던 증기기관차인 빅보이 모형. 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실제로 구동하는 이 모형은 시가 1억8천만원에 이르는 고가품. 철도마니아인 선진정밀 이현만 대표의 작품이다. 그는 그동안 일본, 미국, 유럽의 기관차 50여종을 만들어 수출했다. 한정판인 이들 모형은 구입 즉시 가격이 올라 외국에서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될 정도이며 바이어들 사이에 ‘미스터 리’는 귀빈 대접을 받는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적지만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정밀모형 이명수 대표는 한국 기관차 모형 제작에 승부를 걸었다. 체험전에 출품한 7434기관차 모형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제작된 국내 모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판금식이 아니라 모두 깎아서 만들었으며 0.2㎜까지 정교하게 재현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코레일에서 국가기밀이라며 기관차 제원을 공개하지 않는 탓에 실물을 일일이 자로 재어 설계했다. 국내 수요가 거의 없어 메이저 업체조차 꺼렸던 것이다. 코레일 쪽에서 자료 공개를 거부해 더는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는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후회는 없다고 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임종업 기자, 황성덕, 임병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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