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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인 넵스키대로에서 바라본 그리스도부활사원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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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북유럽의 베니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기
여름의 백야가 지나간 러시아 북부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어둠이 짙게 깔린다. 지난 11월 중순 찾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전 10시가 돼서야 푸른 새벽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예년 같으면 이미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쌓인 눈이 어둠을 밝히는 조명 구실을 했겠지만 이상기온으로 서울보다 포근한 날씨에 부슬부슬 안개비가 도시를 감쌌다. 이 음울한 하늘 밑에서라면 도스토옙스키가 아닌 누구라도 라스콜니코프 같은 인물을 탄생시켰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
하지만 정오를 지나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햇살이 도시를 비추기 시작하니 ‘북유럽의 베니스(베네치아)’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도시 전체의 평균키를 맞추는 4~5층 규모의 바로크식 건물들은 하늘색, 노란색, 연두색 같은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었고 이따금 보이는 러시아정교회 사원 꼭대기의 둥그런 쿠폴이 도시의 독특한 외관을 완성한다. 그리고 한강처럼 도시를 가르는 네바강 주변으로 이어진 작은 강과 운하들은 이 점잖고 우아한, 어떻게 보면 한껏 목에 힘을 주고 근엄한 척하는 듯한 이 도시에 소란스럽지 않은 생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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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주 미술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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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연결 출입문 1800여개
이동거리 27km에 270여만점 로마노프 왕조 영화의 상징 겨울궁전, 에르미타주박물관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이곳에 도시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뒤 사회주의 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200여년간 부단히도 세워 올린 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물론 그 바탕에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흰 뼈들 위에 세운 도시’란 오명도 생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물이라고 할 만한 에르미타주(예르미타시)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이덕형 지음)를 보면 표트르 대제 때 처음 지어졌고 대를 이어가며 증개축을 해서 점점 거대해진 이 겨울궁전의 건축현장은 당시에도 악명 높았다고 한다. 러시아 각지에서 차출당한 6천여명의 인부들이 일했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줄줄이 사람이 죽어나가 오히려 우랄 지방 광산으로 차출당하는 게 행운이라고 여겨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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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고전주의 대표적 건축물 성이삭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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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삭성당 내부. 희귀석과 대리석, 이콘화들로 화려하게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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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적 숭고미 느껴져
시청에는 레닌의 유물 전시 러시아의 종교적 숭고미 성 이삭 성당과 그리스도 부활 사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건축물들이 서구 유럽에 ‘우리도 힘과 품위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유럽 스타일인 반면 사원들에서는 러시아정교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 이삭 성당은 표트르 대제 때 목조로 지어졌던 걸 19세기 초 알렉산드르 대제가 대규모로 증축한 것으로 러시아 고전주의의 대표적 건물이다. 입구 쪽에 세워진 화강암 원주 기둥들은 각각 무게가 120t 가까이 나가는데 이어 붙인 게 아니라 하나의 돌덩이란다. 내부도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색이 서로 다른 대리석들과 희귀석들로 벽을 치장했고 천장에는 성스러운 이콘(아이콘)화가 그려져 있다. 성 이삭 성당이 압도적이라면 그리스도부활사원은 이국적이다. 알렉산드르 2세가 피습을 당해 피 흘리고 쓰러진 자리 위에 세워져 ‘피 흘리신 구세주 사원’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원은 꼭대기의 알록달록한 쿠폴들과 독특한 문양의 외벽이 러시아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며 내부를 가득 채운 이콘화들도 신비롭다. 제단과 교회 공간을 가르는 이코노스타시스가 반짝반짝 눈부실 정도로 빛난다. 이곳에서는 평소에도 정교 예배가 진행돼 아름다운 성가를 들을 수 있다. 두 성당처럼 관광지는 아니지만 진짜 그리스정교 예배의 성스러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넵스키 대로변의 카잔 성당도 들를 만하다. 시민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인데 웬만한 연주회 못지않은 수준으로 연주되는 남녀 혼성 중창의 장엄한 성가가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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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 직후 레닌의 집무실 책상. 친필로 쓴 사회주의 헌법 초안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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