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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05 17:23 수정 : 2012.12.08 13:34

중심가인 넵스키대로에서 바라본 그리스도부활사원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

[매거진 esc] 여행
‘북유럽의 베니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기

여름의 백야가 지나간 러시아 북부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어둠이 짙게 깔린다. 지난 11월 중순 찾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전 10시가 돼서야 푸른 새벽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예년 같으면 이미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쌓인 눈이 어둠을 밝히는 조명 구실을 했겠지만 이상기온으로 서울보다 포근한 날씨에 부슬부슬 안개비가 도시를 감쌌다. 이 음울한 하늘 밑에서라면 도스토옙스키가 아닌 누구라도 라스콜니코프 같은 인물을 탄생시켰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

하지만 정오를 지나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햇살이 도시를 비추기 시작하니 ‘북유럽의 베니스(베네치아)’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도시 전체의 평균키를 맞추는 4~5층 규모의 바로크식 건물들은 하늘색, 노란색, 연두색 같은 화사한 색감의 옷을 입었고 이따금 보이는 러시아정교회 사원 꼭대기의 둥그런 쿠폴이 도시의 독특한 외관을 완성한다. 그리고 한강처럼 도시를 가르는 네바강 주변으로 이어진 작은 강과 운하들은 이 점잖고 우아한, 어떻게 보면 한껏 목에 힘을 주고 근엄한 척하는 듯한 이 도시에 소란스럽지 않은 생기를 부여한다.

에르미타주 미술관 전시실.
세계 3대 미술관 에르미타주
전시실 연결 출입문 1800여개
이동거리 27km에 270여만점

로마노프 왕조 영화의 상징 겨울궁전, 에르미타주박물관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이곳에 도시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뒤 사회주의 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200여년간 부단히도 세워 올린 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물론 그 바탕에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흰 뼈들 위에 세운 도시’란 오명도 생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물이라고 할 만한 에르미타주(예르미타시)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이덕형 지음)를 보면 표트르 대제 때 처음 지어졌고 대를 이어가며 증개축을 해서 점점 거대해진 이 겨울궁전의 건축현장은 당시에도 악명 높았다고 한다. 러시아 각지에서 차출당한 6천여명의 인부들이 일했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줄줄이 사람이 죽어나가 오히려 우랄 지방 광산으로 차출당하는 게 행운이라고 여겨졌단다.

러시아 고전주의 대표적 건축물 성이삭성당.
많은 역사적 건축물이 그렇듯 당대의 고통이 후대에는 영화로 각색된다. 수백개의 방에 빼곡히 걸려 있거나 세워져 있는 270여만개의 작품을 다 보려면 1800여개의 문을 열어야 하고 27㎞를 걸어야 한다. 루브르를 소개할 때 그렇듯 이곳 역시 제대로 보려면 며칠을 내리 봐도 모자란다는 말이다. 단기여행자들이 그렇듯 2시간여의 속성 코스를 밟았다. 어디서라도 비슷해 보이는 선사시대와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품을 다 통과해 18세기 이후 근대 회화들만 훑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음악>과 마주 보며 대구를 이루는 마티스의 <춤>, 피카소 청색시대 작품 중 하나인 <방문>(두 자매) 등이 대표 소장품 중에서도 대표주자들이다. 원칙적으로 박물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데 추가로 돈을 내면 찍을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서구의 대형 미술관과 달리 번듯한 기념품점이 없다는 것도 이 거대한 미술관의 특징이라면 특징. 아직 자본주의의 약은 머리에 덜 물들었다고 해야 할지, 낯선 풍경이었다.

차로 한시간 정도 가면 도착하는 교외의 여름궁전과 예카테리나궁은 로마노프 왕조의 호화로움과 과시에 대한 열망을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멀리 핀란드만을 바라보는 여름궁전의 우아하고 넓은 정원은 여름철 산책하기 좋아 보이는데 겨울에는 다소 을씨년스럽다. 하늘색 벽과 황금색 러시아식 쿠폴이 아름답게 조화된 예카테리나궁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연회장에 방방마다 일일이 그림을 그려 구운 도자기로 만든 대형 페치카가 그 옛날의 영화를 보여준다. 4개의 벽 전체를 보석의 일종인 호박으로 온통 꾸민 호박방(앰버룸)은 이 화려함의 절정이다.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이러니까 망하지….’

성이삭성당 내부. 희귀석과 대리석, 이콘화들로 화려하게 꾸몄다.
성이삭성당·그리스도 부활사원
러시아적 숭고미 느껴져
시청에는 레닌의 유물 전시

러시아의 종교적 숭고미 성 이삭 성당과 그리스도 부활 사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건축물들이 서구 유럽에 ‘우리도 힘과 품위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진 유럽 스타일인 반면 사원들에서는 러시아정교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 이삭 성당은 표트르 대제 때 목조로 지어졌던 걸 19세기 초 알렉산드르 대제가 대규모로 증축한 것으로 러시아 고전주의의 대표적 건물이다. 입구 쪽에 세워진 화강암 원주 기둥들은 각각 무게가 120t 가까이 나가는데 이어 붙인 게 아니라 하나의 돌덩이란다. 내부도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색이 서로 다른 대리석들과 희귀석들로 벽을 치장했고 천장에는 성스러운 이콘(아이콘)화가 그려져 있다.

성 이삭 성당이 압도적이라면 그리스도부활사원은 이국적이다. 알렉산드르 2세가 피습을 당해 피 흘리고 쓰러진 자리 위에 세워져 ‘피 흘리신 구세주 사원’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원은 꼭대기의 알록달록한 쿠폴들과 독특한 문양의 외벽이 러시아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며 내부를 가득 채운 이콘화들도 신비롭다. 제단과 교회 공간을 가르는 이코노스타시스가 반짝반짝 눈부실 정도로 빛난다. 이곳에서는 평소에도 정교 예배가 진행돼 아름다운 성가를 들을 수 있다. 두 성당처럼 관광지는 아니지만 진짜 그리스정교 예배의 성스러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넵스키 대로변의 카잔 성당도 들를 만하다. 시민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인데 웬만한 연주회 못지않은 수준으로 연주되는 남녀 혼성 중창의 장엄한 성가가 마음을 흔든다.

travel tip

12월부터 직항으로 도착!

대한항공은 8일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정기 취항을 시작한다. 여행 수요가 몰리는 여름에만 운항을 해왔으나 올해부터 주 2회 겨울철 직항을 개설했다. 인천에서 9시간 걸린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성인 입장료는 400루블(1루블≒40원). 매달 첫주 목요일에는 입장료가 무료이니 여행 일정에 참조하면 좋다.

러시아 여행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기차로 3시간이면 핀란드 헬싱키에 도착해 보통 유럽 북부와 한 묶음으로 여행 일정을 짜는데 러시아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면 복수비자를 만들어 가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랑은 미술과 건축 외에 수준 높은 발레와 오페라 공연이다. 특히 마린스키 극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극장으로 하절기에는 주로 국외 공연을 하고 9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현지 시즌이 진행된다. 시즌 시작과 함께 빠르게 표들이 예약되는 터라 현지에서 표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평일 표는 구해볼 만하다.

10월 혁명 직후 레닌의 집무실 책상. 친필로 쓴 사회주의 헌법 초안이 놓여 있다.
10월 혁명, 레닌그라드의 흔적을 찾아 지금의 여행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로마노프 왕조가 이룬 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곳은 레닌이 혁명이 성공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10월 혁명의 성지이기도 하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도시의 이름도 레닌그라드가 아니었던가. 지금 도시 곳곳에서 혁명의 흔적을 찾긴 힘들지만 시청에 가면 뜻깊은 레닌의 유품을 만날 수 있다. 본래 귀족 소녀들의 기숙학교였던 지금의 시청은 혁명군대가 접수하면서 레닌이 이듬해 모스크바로 옮길 때까지 집무실로 사용했다. 어느 교사의 작은 방에서 아내와 기거했던 레닌은 이곳에서 혁명 정부의 헌법 초안을 직접 손으로 썼으며 그때 그가 썼던 원고와 펜, 전화기 등이 역시 그가 썼던 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 방과 위층의 집무실은 당시의 상태 그대로 보관돼 있으며 상시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지만 전화로 시청에 예약을 하면 방문해서 당시의 자료들을 보면서 혁명의 열기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글·사진 김은형 기자 dmsgud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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