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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의 우퍼들이 1일 경기도 남양주시 한솔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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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며 숙박·식사 제공받는 ‘우프’ 참여자들의 농사체험기
지난 1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한솔농장(농장주 김병수)에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인 8명, 외국인 5명 등 13명. 이들은 오전에 포도·오미자 묘목에 월동비닐을 씌우고, 오후에는 양계장에 쌓인 닭똥을 걷어냈다. 이들은 일을 하는 동안은 물론 점심을 먹으면서도 재잘재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일을 마친 다음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농장주는 유기농 밀로 만든 빵을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젊은이들은 우퍼(WWOOFer), 유기농을 하는 한솔농장은 우퍼 호스트농가다. 우프(WWOOF)는 ‘전세계 유기농가 체험’(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 여행객이 농가에 들어가 하루 4~6시간 노동을 하는 대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우퍼는 현지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생활언어는 물론 현지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농가에서는 일손을 보충하는 윈윈의 기회가 된다. 2012년 한해 동안 전세계 10만여명의 젊은이가 100여개 나라 1만2000여 농가에서 유기농 체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호스트농가는 56곳, 우퍼는 외국인 350명, 내국인 50여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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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퍼들이 외국에서 유기농업을 체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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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개 나라 농가에서
유기농 체험
한국은 호스트농가 56곳 이날 참여한 사람들은 출신과 직업이 다르지만 유기농업과 육체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여행자’ 애나 트레이닌. 유럽 6개국을 돌고 올해 2월부터 사북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노동 뒤의 피로감을 즐긴다면서 그것은 다음 날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고 했다. 우프는 음식을 통한 한국 문화 배우기의 도구다. 특히 한국은 음식을 나누는 전통이 있으며 식탁이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장소라고 파악한다. 시골에 남아 있는 인사말 “밥 먹었어요?”가 그 잔재라는 것. 그는 또 유기농법 또는 자연농법이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로 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네 살 때인 1991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패스트푸드가 넘치는 미국은 음식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나라라면서, 음식이 존중받는 문화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헝가리에서 온 미남 페테르. 그는 자연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창조하며 사는 삶을 최고로 친다. 그에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만들어내는 디지털 세계는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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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퍼들이 외국에서 유기농업을 체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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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
출신 지역·직업도 다양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그는 헝가리를 위해서 두 가지 모두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는 집단농장 체제로 농촌공동체를 파괴했으며 단작을 권장하면서 곡물과 채소의 다양성이 소멸됐는데, 자본주의는 그나마 남은 농업 자체를 말살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농사를 짓지 말라며 보조금을 주고 있으며 농산물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헝가리의 미래를 한국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유기농을 기반으로 한 농촌공동체, 도시와 농촌을 잇는 소비공동체가 그것. 그는 한국의 대학이 아닌 우프활동을 통해 진정한 농업을 배웠다면서 한국 대학생들 역시 농촌 현실에 너무 둔감하다고 비판했다. 페테르는 1~2년 더 한국에서 농사 체험을 한 뒤 헝가리로 돌아가 농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웹디자이너인 사뮈엘 뱅보. 프랑스에 없는 것을 배우기 위해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 왔다. 한국의 농촌공동체를 통해서 다양한 체험을 했지만 꿈꾸는 것을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비대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결코 바람직한 미래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살아 있는 농업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농촌이 몸만 쓰려고 한다면서 좀더 똑똑해져서 몸과 머리를 같이 써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인성이 음식에서 온다고 말하고, 쉽게 화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자신의 성격이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식탁을 바꾸면서 화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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