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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05 17:51 수정 : 2012.12.08 13:32

다양한 국적의 우퍼들이 1일 경기도 남양주시 한솔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매거진 esc] 라이프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며 숙박·식사 제공받는 ‘우프’ 참여자들의 농사체험기

지난 1일 오전 9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 한솔농장(농장주 김병수)에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한국인 8명, 외국인 5명 등 13명. 이들은 오전에 포도·오미자 묘목에 월동비닐을 씌우고, 오후에는 양계장에 쌓인 닭똥을 걷어냈다. 이들은 일을 하는 동안은 물론 점심을 먹으면서도 재잘재잘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일을 마친 다음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농장주는 유기농 밀로 만든 빵을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젊은이들은 우퍼(WWOOFer), 유기농을 하는 한솔농장은 우퍼 호스트농가다. 우프(WWOOF)는 ‘전세계 유기농가 체험’(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 여행객이 농가에 들어가 하루 4~6시간 노동을 하는 대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는 프로그램이다. 우퍼는 현지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생활언어는 물론 현지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농가에서는 일손을 보충하는 윈윈의 기회가 된다. 2012년 한해 동안 전세계 10만여명의 젊은이가 100여개 나라 1만2000여 농가에서 유기농 체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호스트농가는 56곳, 우퍼는 외국인 350명, 내국인 50여명이라고 한다.

한국 우퍼들이 외국에서 유기농업을 체험하는 모습.
전세계 10만여명
100여개 나라 농가에서
유기농 체험
한국은 호스트농가 56곳

이날 참여한 사람들은 출신과 직업이 다르지만 유기농업과 육체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여행자’ 애나 트레이닌. 유럽 6개국을 돌고 올해 2월부터 사북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노동 뒤의 피로감을 즐긴다면서 그것은 다음 날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고 했다. 우프는 음식을 통한 한국 문화 배우기의 도구다. 특히 한국은 음식을 나누는 전통이 있으며 식탁이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장소라고 파악한다. 시골에 남아 있는 인사말 “밥 먹었어요?”가 그 잔재라는 것. 그는 또 유기농법 또는 자연농법이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자 지속가능한 미래로 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네 살 때인 1991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패스트푸드가 넘치는 미국은 음식의 중요성을 잃어버린 나라라면서, 음식이 존중받는 문화 속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헝가리에서 온 미남 페테르. 그는 자연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창조하며 사는 삶을 최고로 친다. 그에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만들어내는 디지털 세계는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

한국 우퍼들이 외국에서 유기농업을 체험하는 모습.
프랑스인 웹디자이너
미국인 비즈니스 컨설턴트 등
출신 지역·직업도 다양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그는 헝가리를 위해서 두 가지 모두 재앙이었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는 집단농장 체제로 농촌공동체를 파괴했으며 단작을 권장하면서 곡물과 채소의 다양성이 소멸됐는데, 자본주의는 그나마 남은 농업 자체를 말살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농사를 짓지 말라며 보조금을 주고 있으며 농산물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헝가리의 미래를 한국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유기농을 기반으로 한 농촌공동체, 도시와 농촌을 잇는 소비공동체가 그것. 그는 한국의 대학이 아닌 우프활동을 통해 진정한 농업을 배웠다면서 한국 대학생들 역시 농촌 현실에 너무 둔감하다고 비판했다. 페테르는 1~2년 더 한국에서 농사 체험을 한 뒤 헝가리로 돌아가 농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웹디자이너인 사뮈엘 뱅보. 프랑스에 없는 것을 배우기 위해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 왔다. 한국의 농촌공동체를 통해서 다양한 체험을 했지만 꿈꾸는 것을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비대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는 결코 바람직한 미래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살아 있는 농업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농촌이 몸만 쓰려고 한다면서 좀더 똑똑해져서 몸과 머리를 같이 써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인성이 음식에서 온다고 말하고, 쉽게 화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자신의 성격이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식탁을 바꾸면서 화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life tip

우프에 참가하려면

워킹홀리데이가 일하면서 배우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저임으로 혹사당하고 외국어를 제대로 못 배울 가능성이 있다. 우프는 무임이지만 노동시간이 짧아 언어 습득, 문화 체험을 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체험담이 많다. 우선, 가고자 하는 나라의 우프협회에 가입한다. 가입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여권 사본(한국은 주민등록증), 가입비와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낸다. 가입비는 30~70달러. 한국우프 가입비는 5만원이다. 유효기간은 1년.(www.wwoof.org, www.wwoofkorea.org)

가입 승인이 되면 해당국에서 회원번호가 찍힌 우프농사 소개책자를 보내주는데, 그것이 회원증 구실을 한다. 책자에는 연락처, 픽업 방법 외에 숙소, 식사 형태, 하는 일, 일하는 시간 등이 자세하게 언급돼 있으며 주변의 관광지도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이동 경로에 맞춰 그곳 지역 농가들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 방문하기 2주일 전까지 자기소개서와 함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원하는 체류 일정 등을 적어 이메일로 보낸다. 하루 4~6시간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노동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자세한 것은 서로 협의해서 정한다. 만일 현지에서 조건과 다르거나 과도한 노동을 강요당하면 해당국 우프협회에 신고하고 즉시 떠나면 된다. 비자는 워킹홀리데이 또는 관광비자도 관계없다.

6주 전에 한국에 온 벤저민 모건로스. 그에게 우프는 적은 비용으로 여행하면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도구다. 미국에서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일하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서 일본,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고 했다. 각 나라의 로컬푸드와 현지 문화를 체험하면서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었다. 그는 정신노동이 돈벌이 수단으로 좋기는 하지만 노동의 과정과 결과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육체노동이 더 좋다고 했다.

이들과 함께 하루를 보낸 한국인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출판사 직원인 김선영씨, 지에스칼텍스에서 일하는 박상욱씨는 단골 우퍼. 주중의 정신적 피로를 노동으로 푼다고 했다. 처음 참가한 한국농수산대 1학년 윤혜연, 조혜운씨는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유기농을 실제 체험했다면서 졸업하면 ‘강소농’을 꾸리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우프코리아,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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