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6 17:23
수정 : 2012.12.27 15:47
[매거진 esc] 나의 첫 화장
어렸을 적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모든 첫 경험은 할머니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세대가 많이 알지 못하는 나무와 꽃의 이름부터, 할머니들의 최고 인기 게임인 화투까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화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장날이나 도시에 나갈 때 화장을 하곤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린 피부를 가진 손녀의 손에 화장품이 닿지 않도록 높은 다락에 화장품 함을 깊숙이 넣어 놓으셨다. 어린 손녀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리길래 할머니 얼굴이 저렇게 뽀얘지고 입술이 발갛게 물드는지.
다락 안 신비의 마법 상자를 향해 손을 넣을 수 있을 만큼 키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지루했다. 틈을 봤다. 할머니가 옆집 할머니와 화투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가 기회였다. 7살 여름, 나의 첫 도전은 시작됐다. 마루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 다락 아래에 뒀다. 낑낑대며 마법 상자를 꺼냈다. 제일 신기한 것은 향기로운 크림이었다. 마요네즈처럼 생긴 게 향기로웠다. 얼굴에 바르자 미끄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때 들리는 인기척. 할머니가 생각보다 빨리 들어오셨다. 후다닥 마법 상자를 제자리에 두려다 그만 의자에서 ‘미끄덩’ 하고 넘어졌다. 다락 밑에 있던 장기판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하여 남은 뺨의 상처. 나의 첫 화장은 콜드크림에서 시작해, 흉터로 끝났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잊을 수 없는 나의 첫 화장이다.
지영선/대구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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