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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일씨가 2004년 단돈 2600만원으로 지은 집. 지금은 ‘갤러리 담담’ 소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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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버려지는 자재 재활용해 주택 십여채 지은 도예가 정원일씨의 집짓기 이야기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 산곡저수지 옆. 길 쪽으로 등 돌린 창고에 ‘등경요’란 간판이 걸렸다. 옆쪽 철문으로 들어가자 자갈 깔린 마당. 그 끝 창고에 ㄱ자로 붙은 살림채가 보인다. 유리 문간채가 달렸을 뿐 영락없는 시멘트 블록 창고다.
“원래 창고 맞아요. 거기에다 모델하우스에서 뜯어온 창호로 창과 문을 냈지요. 싱크대도 가져와 놓았구요. 모델하우스 거라 최고급 천연석으로 만들었어요. 천장의 등, 저기 걸린 액자 모두 재활용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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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정원일(53)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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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지은 몽골식 주택. 재료비 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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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 값으로 한채 짓겠다
농담을 실천으로 옮겨 “애초 도면 없이 큰 얼개만 갖고 시작해요. 지어가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구조에 반영합니다. 넓은 공간, 좁은 공간이 미로처럼 얽혀, 사람들이 호기심 일게 내부를 만들죠.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원래 2평짜리 2층을 올려 화장실로 쓰려고 했어요.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사방을 틔웠지요. 근데 사람들이 무슨 화장실을 머리 위에 올리냐, 나중에 후회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오붓하게 대화하기에 좋은 다실로 꾸몄죠. 손님이 오면 모두들 그리로 올라갔어요. 한 여자분은 이혼 직후에 다시 찾아와 혼자 그곳에서 두 시간을 울고 갑디다.” 그 집에서 염색 일을 하면서 2년을 더 살았다. 그런데 포항의 자활후견기관에서 10년 임대료 5000만원을 선불로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했다. 그러마고 했다. 그 돈이면 새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올해 1억6000만원에 아예 집문서를 넘겼다. “지을 때 집에 대한 즐거움은 모두 맛봐요. 일단 짓고 나면 건물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한곳에 10년 이상 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집이란 머무는 동안 즐겁고 따뜻하게 지내면 그만인 데죠. 영원한 내 집이란 없어요.” 두번째 지은 집이 도리 1491번지 언덕배기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지은 몽골식 주택이다. 외국 잡지를 보고 관심이 동했다. 통콘크리트 기초 가운데 쇠기둥을 세우고 철근으로 뼈대를 만든 다음 360도 유리로 둘렀다. 25평에 900만원 들었다. 경치가 죽여줬다. 페치카로 불을 때 난방을 하고, 미군부대서 나온 중고 태양열 전지판으로 불 밝히고 전기밥솥을 돌렸다. 독성물질을 쓰는 염색 일에 회의감이 몰려오던 터, 헬렌 니어링의 책을 보고 최소한의 삶을 살고 싶었다. 암 환자처럼 산에서 채취한 뿌리와 이파리만 먹었다. 그런데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웠다. 결국 유리 안팎을 열반사 필름으로 싸고 나무판을 한차례 더 둘렀다. 경치를 희생하고 단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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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코치해 재활용 자재로 지은 김희욱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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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만원으로 첫집 완성
경주·포항 일대에 15채 지어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집을 두세 채 지어주었다. 스스로 짓고 싶다는 사람한테는 집 짓는 방식과 자재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지어진 집이 경주, 포항 일대에 15채다. 주인들은 모두 만족하는 편이다. 내남면 안심리 수통골, 애초 주인 정아무개씨한테서 집을 사서 이사온 김희욱씨는 워낙 외관이 근사하고 단열이 잘돼 있어 재활용 자재로 지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다만 창호 구석에 ‘모델하우스용’이란 표시가 있어서 의아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요즘도 아파트 한 평 값이면 집 한 채 지을 재료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열쇠만 가지고 집에 들어가 살려고 해요. 건축업자가 지은 똑같은 집에 가구만으로 자기 색깔을 내는 정도죠. 그러니 집에 탈이 나면 스스로 고치지 못하고 사람을 불러야 합니다.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경주=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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