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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26 18:02 수정 : 2012.12.27 15:45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독자사연공모전 당선작

여러분의 2012년은 어떻게 저물어가고 있습니까? 형편없는 성적표나 불합격 통지서, 애인의 이별통보와 갑자기 엄습해온 병 등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했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esc와 함께 그 흑역사를 털어버리고자 공모전에 동참해왔습니다. 아깝게 탈락한 독자 여러분께도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선자 7명에게 롯데월드 자유이용권 4매씩 드립니다.

응가야 좀만 참아줘~

7시50분, 내가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차로 6~7분 거리, 밀릴 염려도 없는 주택가 도로임을 고려한다면 나의 출근길은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시 정도에 밥을 먹고 준비해서 7시40분께 집에서 출발하면 느긋한 맘으로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느긋한 나의 이 출근길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명 ×이라 불리는 대변이다.

지금껏 내 인생에서 아침에 대변을 보지 않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배설기관을 작동시키는 것.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지라 항상 가뿐하게 아침을 시작하는데, 문제는 희한하게도 아침을 먹고 나서 7시40분만 되면 후속타가 생긴다는 것이다. “나 다녀올게” 하고 인사까지 다 마치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면, 그때서야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호가 오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꺼림칙하다. 옷이며 가방이며 다 준비된 것들을 다시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야 하는 참담함, 그리고 오늘도 늦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암담함. 그래도 어쨌거나 가뿐한 몸으로 출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 뒤늦은 쾌감.

아침잠이 없어 새벽에 항상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인 나는, 이 말 못할 배설작용으로 올 한해 게으름뱅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라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3년 새해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당하게 외친다. “×아, 이제 나를 놓아다오~”

임주성/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양다리의 길은 멀고도 험난해

스물다섯이 되도록 애인 없이 모태솔로로 지내던 나에게 소개팅은 거의 일상이었다. 끝나가는 스물다섯을 한탄하며 ‘이번에는 꼭!’이라는 각오로 소개팅을 하게 됐다. 다행히 괜찮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기는구나’ 하는 기대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상대는 만날수록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다른 지인에게서 새로운 소개팅 제안을 받았고 약속 날까지 잡았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는 기분이랄까.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뭐! 하고 생각하며 남자1호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문제의 발단은 남자2호를 만나기 전에 1호의 고백을 받게 된 거였다. 나의 예상 시나리오는 두 사람을 만나보고 더 나은 상대를 택하는 것이었는데! 팔자에도 없는 저울질을 하려다 보니 일이 꼬인 것인지, 남자1호에게 나는 시간을 달라는 애매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 들은 사람이라면 예상했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놓쳤구나?’ 이 정도였다면 그렇게 지우고 싶은 기억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자1호는 자꾸만 대답을 듣고 싶어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만났을까. 정말, 거짓말처럼 남자2호와의 약속이 잡힌 바로 전날 인내심이 바닥난 남자1호가 이별 선언(?)을 해온 것이다. 떠나겠다는 사람 잡을 이유는 없었기에 쿨하게 안녕 하고 다음날 소개팅에 나갔지만, 더는 쿨할 수가 없었다.

남자2호가 영 아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자꾸만 남자1호가 생각나고 마음에 걸렸다. 가슴앓이를 하는 나를 주선자는 신기해했다. 지금껏 내가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연락을 하고야 말았다. 무려 세번이나! 주선자를 통해서도 해보고 내가 시도도 해보고. 결국 세번 다 까였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떠나는 2012년과 함께 정말 잊고 싶은 기억이 돼버렸다.

문송이/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카드명세서

내게는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 귀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나지만 그 녀석 앞에만 서면 내 심장은 ‘쫄깃쫄깃’해진다. 그 녀석은 한달에 한번씩 꼭 찾아와서는 나를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떠나가 버린다. ‘대금 결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그렇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바로 카드 값이다.

그간 카드 좀 긁었다. 벌이가 변변치 않아, 일단 카드로 결제하고 다음달에 메우는 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현금서비스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결제일이 다가올수록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혹자는 내게 ‘화끈하게 놀았구먼!’ 하고 질책할 것이다. ‘얼마나 절제하지 못하고 긁었으면….’ 하지만 난 화끈하게 놀지 않았다. 이상한 곳에서 긁지도 않았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 카드 의존도가 높았을 뿐이다. 누군들 한달에 한번씩 꼭 ‘멘붕’을 맞고 싶겠는가!

2013년 새해부터는 카드 값의 공포에서부터 벗어나고 싶다. 새해부터는 재무설계를 똑 부러지게 할 생각이다. 더 졸라맬 허리띠도 없지만 그래도 개미허리가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다. 체크카드도 이용할 생각이다. 통장의 잔고 범위에서 지출하는 체크카드를 쓴다면 계획성 있게 돈을 쓸 것 같다. 재무설계를 똑 부러지게 하고 체크카드도 쓴다면, 2013년은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카드 값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 것이다.

곽동운/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


점집도 보이스피싱?

철학원을 주기적으로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재미삼아 토정비결이나 사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가끔씩 점집을 다닙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서 한 철학원을 소개받았습니다. 다녀오신 어머니는 신이 나셔서 “어찌나 신기하게 잘 맞히던지 아주 용한 곳”이라며 회사일로 고민 많은 제게 당장 가볼 것을 종용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직설적으로 말하지만 틀린 말이 없어. 내 사주에 오복이 들어 있어서 아주 좋은데 니 아빠 사주 때문에 가려졌다고 하더라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며 언제나처럼 본인 자랑으로 시작해 마무리는 아버지 욕으로 끝나는 엄마의 말씀에 홀려 다음날, 찾아가기도 힘든 그곳을 가고야 말았습니다.

앉자마자 생년월일시를, 거친 필체로 한문과 숫자로 적더니 대뜸 “사주에 남자가 없다”며 “비구니나 성직자의 길을 가라”더군요. 저 결혼 4년차 30대 초반 여자입니다. 이 무슨 막말이냐고요! 만약 장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 물음에 “그런 소리 하지도 말아. 이런 사람은 돈 욕심 부리면 집안을 말아먹어” 하며 눈을 부릅뜨더니 종교 쪽을 공부하라는 겁니다. 종교 없다니까 이제부터라도 종교를 가지라면서. 더 황당한 건 제 이름입니다. 제 이름이 나쁘다며 다시 와 상담받고 이름을 고치라고 하던 그 할아버지는 제 이름 풀이를 한문으로 뭐라 적더니 그 뜻을 읊어주더군요. 그 뜻은 무시무시하게도 “말에서 떨어져 사지를 못 씀.”

이 모든 어이없는 소리를 듣고 앉은 게 길어야 10분. 그리고 제 지갑에서 나간 돈 10만원. 즉 1분에 1만원. 이거 보이스피싱보다 더한 것 아닌가요?

도대체 요즘 세상에 누가 보이스피싱에 당하냐며 한심해하던 제가 이렇게 어이없이 철학원에서 돈을 뜯기다니. 저희 어머니가 이 철학관과 짜고, 다신 제가 점보러 가지 못하게 꾸며낸 계략인가, 아니면 이 철학원에서 커미션을 받나 심히 의심스러웠습니다. 2012년 가장 한심했던 이 일을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혼자 실소와 한숨을 반씩 섞어 되새김질해봅니다.

이정희/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드라마의 늪 이젠 빠져나올래

2013년이 다가옵니다. 2012년 저의 인생은 한마디로 ‘육아와의 전쟁’이었습니다. 한창 말썽을 부리는 네살배기 첫째, 그리고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둘째. 하나 키우기도 힘든데 둘째가 생기니 부담 백배,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네요.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올 한해, 저는 드라마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도대체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건가요? 한번 보는 것이 어렵지 한번 봤다 하면 그다음 이야기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드라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하지 않는 시간이 없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 배부른 몸으로 밤늦게까지 잠 안 자고 드라마를 봤습니다. <신사의 품격>을 보느라 졸린 눈을 비빈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달 전 태어난 둘째 아이는 밤에 잠을 잘 안 자네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그리워 넝쿨째 굴러온 우리 복덩이 첫째를 억지로 재우기도 하고, 졸려하는 애를 참게 해서 같이 드라마를 보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보지 못했을 때는 아이가 먼저 묻더군요. “엄마, 어제 넝굴당 어떻게 됐어요?”

저 이제 맹세합니다. 드라마의 유혹에서 벗어나 드라마의 늪에서 빠져나와 육아에 전념하겠습니다. 아이들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 더 잘 보살펴 주겠습니다. 드라마, 2013년부터는 정말 정말 보지 않겠습니다. (아니, 아주 조금만 볼게요^^;)

안숙현/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뚝 떨어진 성적표 불태워버리겠어!

지난 11월8일 수능이 끝나는 그때부터 실질적인 ‘고3’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공부도 많이 안 했으면서 왜 그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던지. 인터넷강의 들을 때마다 이벤트랍시고 주는 스터디 플래너에 쓴 공부 계획이 무색하게, 친구들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하던 공부도 접고 영화관으로 향하고, 평소에는 스포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올림픽 때는 누가 메달 따나 바보상자 앞에서 하루 종일 살고, 결국 그놈의 스터디 플래너는 한두달 쓰다 버릴 처지에 놓였습니다.

분명히 1학년 말에 ‘2학년 때는 꼭 공부를 계획성 있게 해야지’ 하는 결심을 했는데, 결국 한용운 시인의 말마따나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논 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더니, 제게 돌아온 것은 20점 이상 떨어진 성적표입니다.

이제까지 깃발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깃발은 바람이 불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요즘 문득 내가 놀고 싶은 유혹에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깃발처럼 느껴집니다. 우연히 교과서의 겉장에 눈이 갔습니다. 최선, 믿음, 미소. 제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정했던 좌우명입니다. 지금은 별생각 안 하고 새로운 책 살 때마다 겉장에 습관적으로 쓰는 문구지만, 처음 정할 때만 해도 정말 열심히 하자고, 나를 가꾸어 나가자고 생각했었는데….

수능이 300일 남짓 남았습니다. 이제 친구들의 영화 보러 가자는 유혹도 인터넷에서 예고편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수업시간에 밀려오는 졸음의 유혹도 밤에 푹 자는 것으로 이겨내 보렵니다. 그 전에! 우선 20점 떨어진 전국모의고사 성적표부터 소각해버리고 싶습니다.

박대현/충남 천안고등학교 2학년


불합격의 설움 바이바이~

2012년 한해 동안 내겐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어떤 해보다 찬란했다. 연초에 스타워즈 3D 시사회에 당첨됐고, 공부의 비법2 방청을 가기도 했다. 2012년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좋은 일이 너무 많이 터져서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제 운이 다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과 ‘앞으로 이렇게 주욱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땐 정말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하루하루 감사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도 사귀고 날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서 더 기대가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어렸을 적부터 꿈꾸었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지금 이 글을 쓰듯 정성껏 원서를 쓰고 발표 날을 기다렸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1차에서 떨어졌다. 친구들의 위로도 많이 받고 선생님들의 격려도 들었지만 슬프기만 해서 그 뒤에 본 기말고사도 보기 좋게 망치고 말았다. 제일 슬픈 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면 비웃는다고 생각되고, 특목고를 간 친구가 날 무시한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남몰래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감정을 추스른 뒤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이것이 내 16년 삶 중 가장 마음이 아픈 일일지라도, 이 쓴 매를 나를 채찍질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내가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잊지 않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길을 향해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다시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이름처럼 더욱 진화하는 나를 위해, 다사다난했던 2012년이여, 안녕!

김진화/인천시 서운중학교 3학년


일러스트레이션 정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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