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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26 18:24 수정 : 2012.12.27 15:44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강레오·박승건·송경아·유태형·이병률·이해영·전현무·장그래의 이별통보

강레오 요리사
파리에서 드라큘라 부부 된 까닭

올여름 8월, 만삭인 아내와 파리에 갔었다. 스코틀랜드의 산과 바람이 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꺾고 단행한 여행이었다. 파리의 여름은 한적하다. 소란스럽지 않는 그 거리에서 미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파리 드골공항, 내리자마자 기겁을 했다. 아스팔트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아프리카 열대밀림 저리 가라 수준이었다. 아내는 땀을 초 단위로 쭉쭉 뿜어냈다. 내 고집에 끌려왔는데, 미안했다. 우리가 찾은 그날은 100년 만의 불볕더위가 찾아왔다고 난리가 난 날이었다. 파리 시민들도 더위에 초주검 상태였다.

5박6일 동안 호텔 밖에 나오지 못했다. 센 강, 퐁뇌프의 다리, 근처도 못 갔다. 이 호텔 저 호텔, 에어컨 시설이 잘된 곳을 전전했다. 아내는 투정이 늘었다. 당연했다. 돈이 아까워도 돌아왔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임신부에게 더위가 그토록 치명적이라니! 마치 드라큘라 부부처럼 어둠이 짙게 내리면 그제야 호텔문을 나섰다. 기념사진이 모두 밤 풍경이다. 만회할 기회를 찾았다. 역시 음식이다.

물랭루주(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댄스홀)에서 제일 비싼 정찬을 주문하고 화려한 쇼를 봤다. 아내의 얼굴이 서서히 환해지기 시작했다. 미슐랭 별점 레스토랑과 콩(kong.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온 퓨전 바 겸 레스토랑)에서 더위 따위는 잊을 만한 음식을 먹었다. 태어난 지 몇 개월도 안 된 딸! 더위를 못 참는다. 조금만 더워도 칭얼댄다. 아마 그때 딸아이도 뱃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었나 보다.

강레오 요리사


전현무 아나운서
주인공 없는 송별회

운명은 가혹했다. 하필 그날 일들이 겹칠 게 뭐란 말인가! 올해 프리선언을 했다.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다. 케이비에스 입사 전부터 내 꿈은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연기, 엠시,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 나를 던져 보고 싶었다. 지금 나는 5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티브이엔의 <택시>, <세 얼간이>, 엠넷의 <보이스 키즈> 등. 불안감이 마음 한 귀퉁이에 똬리를 틀고 있지만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가는 이의 두근거림이 내게 있다.

9월말 송별회가 있었다. 그야말로 나만을 위한 자리였다. 50명이 넘는 아나운서실 선후배들이 모두 모였다. 그날 나는 그곳을 가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 퇴사하고 인도를 20여일 여행할 때 <택시>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촬영 날짜는 미정이었다. 송별회 이틀 전 연락이 왔다. 바로 그날 녹화를 한다고! 아나운서실 선후배께 너무 미안했다. 막상 떠나고 보니 평소 동료들과 많은 정을 쌓지 못한 것을 못내 후회하고 있던 터였다. 당시 <택시> 촬영 중에 퇴사를 실감하는 일도 겪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려 하니 경비원이 출입을 막았다. 출입증을 끊고 들어가라는 것! 조금 당황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며칠 뒤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간 나에게 선후배 동료들은 따스한 덕담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송별회도 안 온 녀석, 자기 방송만 아는 얄미운 후배’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날 선후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다.

전현무 아나운서


유태형 솔로대첩 제안자
솔로 탈출은 나부터

지금 주변을 둘러보니, 2012년 떠나보내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네요. 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스티벌 ‘솔로대첩’을 제안한 ‘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의 계정 주인장입니다. 24일 오후 3시, 혹시 여의도공원을 오셨었나요? 걱정했었는데 1만여명이나 되는 분들이 모여 솔로대첩 페스티벌을 즐기셨어요. 추운데도 와주신 분들 고마워요. 게다가 인연을 찾으신 분들이 계신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져 오니, 목적을 달성한 셈이네요.

올 한해 떠나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다른 건 있어요. 솔로 생활이겠죠. 솔로대첩도 제가 연애를 하고 있지 않아서 떠오른 것이니까요. 그런데 궁금해합니다. 연애하고 싶으면 혼자서 소개팅이나 소규모 미팅 같은 걸 가면 되지,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님이 연애를 시작하셨습니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많은 분들이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세요. 그런데 못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올린 글을 읽다 보면, 결론이 나와요. 소개팅이나 미팅 모두 첫자리에서 외모나 조건을 보죠. 심지어 사진을 찍어 주선자에게 보내면 그대로 퇴짜 맞는 경우도 있고요.

이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외모, 능력? 일단 따지지 말고 이야기를 나눠 보자는 거예요. 진심과 진심이 만나 서로 좋아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솔로대첩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죠. 목표는 단 하나예요. 젊은이들끼리 색다른 낭만을 누릴 수 있기를요. 절반은 성공한 것 같네요. 그런데 정작 저는 솔로 탈출을…. 내년을 기다려 봐야 할까요?

유태형 솔로대첩 제안자


이해영 영화감독
화려해진 홍대문화 이제 안녕

서른 즈음에 홍대 앞으로 이사해 10년 동안 살았다. 그동안 감독으로 데뷔해 <천하장사 마돈나>(2006), <페스티발>(2010)을 찍었다. 그 전에는 <품행제로>(2002), <안녕! 유에프오>(2004) 시나리오를 썼다. 이 모든 작품들 바탕에는 홍대문화가 깔려 있다. 카페, 클럽, 인디밴드 등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깔이 자양분이 됐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음악을 들으며 썼다. 밤늦도록 일하고, 새벽에 나가 복작대는 분위기에 묻히기도 했다. 그런 기운을 받아 현재 이해영이 만들어진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홍대 앞이 많이 변했다. 이동인구가 많아지고 거리도 무척 화려해졌다. 인디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홍대 앞 분위기는 강남에서도 맛볼 수 있다. 오리지낼리티가 사라졌기도 하고 하향 평준화가 된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서촌으로 이사했다. 마흔 줄에 들었거니와 홍대문화와 작별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제 젊음을 누리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재미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서촌은 일렉트로닉한 홍대와 달리 문학적인 느낌이 난다. 슬렁슬렁 골목길을 산책하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으려 한다. 특이성보다는 일상과 삶을 정직하게 보면서 그런 것을 작품에 반영하고 싶다.

이해영 영화감독


이병률 시인
현실의 구정물을 뒤집어쓰다

그는 시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고 했다. 시를 쓰고 싶지만 시를 쓰는 일은 나를 만나고 나서야 겨우 가능할 거라고 오래 생각해왔다고 했다. 약속을 정하지 못하고 허둥대던 나는 누군가에게 희망인 것도 나 스스로의 위안일 거라 여기고 덜컥 그와 약속을 정했다.

지난봄이었다. 소주 몇 잔이 오고 갔다. 한 시간 정도는 시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 정도까지는 그래도 시인의 소임을 다한 자리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생활고를 겪고 있는 가장임을 밝히면서 방향이 뒤틀리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의 규모, 내가 타는 차의 종류, 일 년 동안의 수입 등을 물어왔다.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안색에 담을 일은 아니었다. 결혼을 왜 하지 않았느냐고도 물었다. 그러고도 입고 있는 옷과 신발에 대한 가격을 물어오면서 나는 몹쓸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모르는 사람. 그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나온 것도 없지만 그 알량한 뭔가를 베풀겠다고 나온 내가 한심했다. 이윽고 그가 쉽게 말했다. 자신의 사촌이 조그마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출판사에서 나의 책을 내면 자신에게도 경제적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시 이야기를 한다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꺼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럼 어떻게 어떤 식으로 자기 할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시가 아닌 희망에 관한 이야기도 아닌 현실의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돌아서는 길, 아무 이유 없이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잊고 싶은 것,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은 삶의 비루함이 사람 가슴에 맺히게 한 독이다. 설령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희망을 가져온다 해도 말이다.

이병률 시인


박승건 디자이너
다이어트 도전은 쭉 이어진다

제가 디자인하고 있는 브랜드 ‘푸시버튼’을 아시나요? 올 한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뤘죠. 하비니콜스라는 유명 해외 백화점과 협업을 해서, 해외 수출도 많이 했답니다. 미국과 뉴욕에서도 푸시버튼의 옷이 팔리고 있고요. 홍콩에 가서는 유명 잡지사와 인터뷰도 해보고, 기분 좋았죠.

그런데 정작 저를 정말 우울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해외 잡지사에서 취재를 왔으니, 멋지게 보이고 싶었죠. ‘꽃미남’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다이어트, 일도 아니지’ 하고 마음먹었죠. 어렸을 때는 마음만 먹으면 7㎏ 정도는 우습게 뺐었거든요. 당연히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살만 빼면 정말 멋진 얼굴이다.”

하지만 ‘꽃미남으로 거듭나리라’며 굳게 먹은 마음은 만날 약해지기만 하더라고요. 올해 다이어트를 시도한 게 서너번이나 돼요. 서너번 모두, 하루 이틀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죠. 굶기도 해보고, 헬스장 등록도 해보고. 심지어 운동하겠다고 트레이닝복에 멋진 운동화, 짐백(운동용 가방)까지 사서 라커룸에 넣어 놓았는데, 등록 기한이 지난 뒤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다가오는 해, 다이어트 도전은 아마 계속 하겠죠. 하지만 다이어트 실패는 영원히 저에게서 멀어졌으면 좋겠네요. 승마운동기구가 다이어트 효과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쉬워 보이면서도 평소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운동기구로 딱 찍어뒀어요. 저에게 선물을 줄 친구가 있다면 이 글 보고 참고해줬으면 좋겠어요.

박승건 디자이너


송경아 모델
낯선 이에게 말걸기

저는 첫인상이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해요. 두가지 이유겠지요. 우선 저의 직업. 런웨이나 화보에서 보는 모델들은 모두 키가 크고 많이 말랐잖아요. 여기에 짙은 메이크업까지 하고 대중 앞에 나서니 많은 사람들이 갖는 모델에 대한 이미지는 차갑다, 얼음장 같다는 등등 뭔가 친근한 느낌은 아니죠. 여기에 낯을 많이 가리는 제 성격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티브이나 잡지 같은 매체에서 제 이야기를 종종 하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전화통화도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이거든요.

데뷔 초창기에는 인터뷰할 일이 생기면 숨고 싶을 만큼 부담스러워하곤 했어요. 이전과 비교하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지금도 낯선 사람들과 만날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고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러다 보니 차가워 보인다, 까다로워 보인다는 인상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숫기 없는 제 성격을 이제는 좀 털어버리는 게 저의 바람이 되었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수더분하게 말 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한 친구들 앞에서만 보이게 되는 저의 모습, 저의 재미있는 면이나 매력도 선뜻 편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어릴 때부터 어떤 자리에 억지로 끌려나가면 열심히 하곤 했는데 이제는 “잘할 수 있으면서 왜 그래?”라는 말은 듣지 않을래요. 저 잘할 수 있겠죠?

송경아 모델


장그래 만화 <미생> 주인공
비루한 훈수질을 멈추자

본래 나는 바둑천재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고수다. 조훈현처럼 살려고 했지. 하지만 인생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따라 풀리지는 않더라. 지금은 종합상사 영업팀의 인턴사원이다. 내 운명은 나도 모른다. 나는 바둑판이 아닌 진짜 전쟁터에 던져졌다.

올해 ‘비루한 훈수질’을 날려 보내고 싶다. 시작은 옥상에서였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이티 영업팀 박 대리에게 한마디 던졌다. “거래처와 관계에서 인심 잃지 않고 일하는 모범이시라구요.” 나도 모르게 지른 아부!

기분이 업 된 박 대리는 최근 사고를 친 거래처로 나를 끌고 갔다. 실전을 전수시켜주겠다는 취지였다. 아부의 끝은 순진한 상사의 과다한 격려로 이어지니 주의 요망! 그곳에서 우연히 거래처 담당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리 그 친구 말랑해서 적당히 얘기하면 된다니깐!” 박 대리는 그동안 거래처 직원들에게 만만한 인사였다. “절차대로 합시다.” 박 대리는 확고한 의지를 질렀다. 거래처 사장은 박 대리 앞에서 부하 직원을 과하게 야단치는 꼼수를 부렸다.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랄까! 박 대리의 장자방을 자처한 나! 꼼수에는 정수가 최고다. 회사에 바로 거래처의 행태를 알리자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간 일을 말할 책임이 있는 박 대리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다.

이때 나는 ‘비루한 훈수질’을 했다. ‘무책임해지세요.’ 쪽지를 건넸다. 거래처를 마음껏 비난하라는 소리였다. 어라, 그런데 그는 문제의 심각성을 초기에 알지 못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모두 자기만의 바둑이 있는 건데, 내가 뭐라고! 죄송합니다, 박 대리님!

장그래 만화 <미생> 주인공


일러스트레이션 정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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