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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3 20:40 수정 : 2013.01.24 14:58

법적 시한 1년6개월14일을 꽉 채운 유실물은 완전 불활성물질이 된다. 하지만 경매를 거치면 돈은 국고로 들어가고 물질은 다시 중고물건으로 새 삶을 얻는다. 임종업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라이프

유실물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소멸하는가. 그 과정에 간여하는 사람들은 누구며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유실물 흐름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볼 수는 없을까.

애초 유실물 취재는 구로역에서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다 종점 구실을 하므로 발생 양태를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역무실에서 출구와 가장 가까운 직원이 유실물 담당. 하루 수백통 전화를 응대하느라 질릴 법한데 사근사근하다. 유실물을 위한 기본시설은 금고, 창고, 냉장고. 병든 유기견은 동물보호소로, 널브러진 취객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승객들이 놓고 내린 음식물류는 냉장고, 귀중품은 금고, 기타 잡동사니는 창고로 옮겨 보관한다. 젓갈·물고기 따위는 냉장보관하다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폐기하고 나머지 썩지 않는 것들은 2주간에 걸쳐 주인을 찾아주다가 구로경찰서로 이관한다.

서울지역 전체 경찰서에
남은 물품들은
성동구 유실물센터로 총집결
분기별 경매 통해 판매

구로서 생활질서계. 유실물 관리 외에 노래방·단란주점 단속, 총포화약 관리를 한다. 유실물은 이현국 경장 담당. 이곳에는 구로역 외에 극장 씨지브이 유실물이 들어온다. 공구상가를 품고 있어 파출소를 통해 고액 분실 신고가 종종 들어온다. 이 경장은 두툼한 문서철에서 각각 5000만원, 2500만원 수표 주인을 찾아준 사례를 들려줬다. 한해 1044건의 유실물이 들어오는데 그 가운데 휴대폰 비중이 크다. 노트북은 1년에 4~5개 정도. 관할에 우체국이 없어 유실물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창고는 청사 뒤 별관 지하. 이 경장은 정리중이라 어수선하다고 했다. 선별작업이 끝나면 서울경찰청 유실물관리센터로 보낸단다.

대한항공 유실물센터의 귀중품 보관함. 성동구 유실물 관리센터도 비슷하다. 임종업 기자
은평경찰서. 관할구역에 우체국, 시내버스회사, 영화관이 있다. 담당인 박광호 경사는 서민들이 사는 데여서인지 고액 유실물은 없다고 했다. 우체통에서 수거해 넘어온 지갑이 꽤 많은데 대개는 신분증만 있을 뿐 현금이 없다. 박 경사는 첫번째로 지갑을 손에 넣은 사람이 현금을 쓱싹하고 버린 것을 누군가 주워서 신고했기 때문일 거라며 소매치기와 관련있음을 암시했다. 은평우체국에 물어보니 빈 지갑 또는 신분증 뭉치는 연신내역, 버스정류장 부근 우체통에서 주로 수거된다는 답변이다. 북한산과 가까워 등산가방이 다수 들어오는 것도 특징. 유실물 가운데는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상당수지만 신고되었기 때문에 갖고 있다고 했다. 귀중품은 유실물관리센터로 보내고, 쓸만한 생활용품은 기한이 차면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한다.

그랬다. 모든 선별된 것, 모든 귀중품들은 성동구 홍익동 102번지에 있는 유실물관리센터로 흘러들었다. 서울시내 곳곳에 설치된 경찰서 31곳에서 모아들인 유실물이 한군데로 모여드니 정말 볼만할 터이다. 마침 4분기 경매가 (지난해 12월)24일 있으니 잘됐다. 그에 앞서 21일 경매 참가자를 위한 현장설명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수 센터장은 제발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귀중품을 벌여놓고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보게 하는데, 잠시 한눈을 팔아 분실품이 생기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당신은 그냥 구경한다고 하지만 신경 쓰인다, 당신을 케어할 여력이 없다는 게 이유다.

결국 26일 영하 18도로 호되게 추운 날 아침에 그곳 ‘엘도라도’를 찾아갔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경매가 끝난 탓인지 사무실 분위기는 느긋했고 경매물이 빠져나간 유실물 보관창고는 썰렁했다. 서초동 핸드폰찾기 콜센터에서 이관받은 휴대폰이 한가득 쌓여 있을 뿐. 근무인원은 센터장을 포함해 5명. 이 가운데 3명이 강력반 출신이다. 이날 근무자로 센터 현황을 설명하고 안내해준 이상철 경사 역시 그렇다.

24일 실시된 4분기 유실물 경매에는 642건이 나왔는데, 예정가는 1400만원이었고 낙찰가는 1620만원이었다고 한다. 건당 평균 2만5233원인 셈이다. 서울시내 경찰서에서 선별해 올린 것치고 그리 비싼 값은 아니다.

카메라·귀금속·노트북 등
18개월 14일 긴잠 깨어나
중고 사이트 통해 새생명

“값비싼 물품은 주인들이 금세 찾아갑니다. 이곳에는 지하철·백화점 등 유실물센터에서 주인을 찾아주고 남은 것들이 경찰서를 거쳐 마지막으로 오는 곳입니다.” 이 경사는 ‘엘도라도’라는 환상을 일거에 깨뜨렸다. 주인과의 관계가 끈끈한 유실물은 대부분 보름 안에 원위치되고 나머지 역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제자리로 되돌아가고, 이곳에 남아 경매대에 오른 것들은 주인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은 것들이다. 애를 써 찾고 싶지 않은, 애매한 가치의 물품들 사이에 횡액을 당한 귀중품이 끼어 있는 정도랄까. 이번에 낙찰받은 이는 경매꾼이 아닌 일반인인데 재미삼아 응찰했다고 한다. 중고품으로 팔지 않고 보관할 것이라며 가족들이 함께 와서 실어갔다고 했다.

경매는 전자입찰 방식. 매물 리스트와 예정가를 포함해 입찰공고를 내고 현장설명회를 거쳐 경매에 부쳐 최고가를 쓴 사람한테 낙찰된다. 현장입찰과 달리 예정가를 넘으면 한명이 입찰해도 유효하다. 보통 3~4명이 응찰하는데 이번에는 2명이었다. “특별한 거 없어요. 철 지난 카메라, 시계, 전자제품, 금패물 등이고요. 통상 낯익은 분이 가져가요. ‘중고나라’ 같은 인터넷사이트에서 나누어 파는 것 같아요.” 8년 동안 경매를 담당한 조문숙 경사는 기자의 호기심을 싹둑 잘랐다.

예정가는 2명의 감정평가사(감평사)가 시차를 두고 산정한 가격을 평균 내어 얻는다. 감평사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인터넷을 통해 겨우 구했다고 한다. 그런 탓에 1차는 전자제품·귀금속을 한 사람이 맡았지만 2차는 그런 사람을 못 구해 분야별로 두 사람이 나눠서 평가했다.

“물품마다 하나하나 값을 매기는데, 서너 시간이 걸려요. 대개 두 사람이 낸 가격이 큰 차이가 없어요. 간혹 큰 차이가 나면 제3인을 불러 다시 평가를 합니다. 가격 산정 작업에 간여한 감평사는 경매에 참여할 수 없어요.”

경매에 앞서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그 안에 담긴 모든 정보를 삭제한다. 노트북의 경우 전문업체에 맡겨 하드디스크를 완전히 포맷하여 윈도를 새로 깔아야 하는 상태로 만든다. 현재까지는 개인정보 유출이 문제된 적이 없다. 경매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염려해 분기마다 다른 업체에 포맷을 맡긴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서마다 유실물을 살펴보면 지역별 특색과 격차가 일목요연하지 않을까. 부자들이 사는 강남·수서와 서민이 사는 도봉·중랑경찰서를 비교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관내에 지하철유실물센터, 재래시장, 대형 쇼핑몰이 있는 경찰서의 수량이 도드라질 뿐이다. 유실물은 인구 이동량과 관련되며, 서울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라는 점이 확인된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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