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1.30 20:27
수정 : 2013.01.3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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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 클루브 아야르드의 디저트 ‘어항’. 2. 사차의 리노네스 알 시불레테(소 콩팥요리). 3. 라 타스키타 데 엔프렌테의 쇠고기 안심과 등골로 만든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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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요리
최근 몇년간 세계 미식계
이끈 고급 레스토랑 즐비
시장통의 하몬·치즈·타파스도
놓치면 아까운 별미
지난 21일 스페인 마드리드는 이따금 날리는 눈발로 을씨년스러웠다. ‘태양의 나라’는 사라지고 우울한 잿빛의 제국이 들어섰다. 하지만 여행객은 불운한 날씨를 곧 잊는다. 끼니마다 펼쳐지는 맛의 향연에 넋을 놓는다. 스페인은 지난 몇 년 동안 줄곧 전세계 미식계를 이끌었다. 페란 아드리아, 후안 마리 아르사크, 조안·조르디 로카 형제 등 걸출한 재능을 타고난 셰프들이 황홀한 요리를 선보였다. 분자요리로 유명했던 엘불리(현재 폐업), 아르사크, 무가리츠 같은 레스토랑들은 수년간 세계의 권위있는 요리 관련 상을 휩쓸었다. 이들의 요리가 섬세하고 정교하다면 스페인 전통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파에야는 팬에 사프란, 쌀과 오징어, 조개 같은 해산물이나 닭과 콩을 넣어 볶으면 끝이다. 한국의 놀이공원에서도 많이 파는 스페인 대표 간식 추로스는 밀가루 반죽을 튀기면 완성이다. 타파스는 모양과 형태가 수백 가지다. 사실 만들기 나름이기에 그 수를 짐작하기 어렵다.
마드리드에서는 해마다 세계적인 요리박람회, ‘마드리드 퓨전’이 열린다. 행사를 찾은 이들은 어둠이 깔리면 마드리드 미식여행으로 향한다. 돈키호테처럼 기상천외하거나 플라멩코처럼 열정적인 맛을 기대한다.
밤 8시께
사차(Sacha: Juan Hurtado de Mendoza 11번지/91-345-59-52/4.5~24.8유로)에는 손님이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바칼라오 콘 카르도(Bacalao Con Cardo: 대구요리), 리노네스 알 시불레테(Rinones al Ciboulette: 소 콩팥요리), 플루마 데 부에이 알 아호(Pluma de Buey al Ajo: 마늘을 곁들인 쇠고기요리) 등을 한바탕 먹어치운 밤 9시가 돼서야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식사는 밤 9시부터 시작해 새벽까지 이어진다. 점심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다.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이 맛인 사람들이다. 도대체 ‘사랑’은 언제 할까 싶다. 식욕이 성욕을 앞지르는 나라처럼 보인다. 사차는 40년이 넘게 한자리를 지켰다. 서빙을 하는 이들의 머리카락도 희끗하다. 소 콩팥요리는 특유의 구수한 맛이 느껴져 일품이다. 다양한 내장요리는 스페인 음식의 한 특징이다. 쇠고기요리는 질감을 잘 살렸고, 생선요리는 바다 맛을 풍긴다. 전통이 감동을 주는 이곳은 미슐랭 별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마드리드 퓨전 기간에 스타 셰프들이 늘 찾는 단골집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쪽에 후안 마리 아르사크, 로카 형제, 키케 다코스타 등의 얼굴이 보인다. 관광객이 우르르 몰려가는 레스토랑 ‘소브리노 데 보틴’(Sobrino de Botin)의 새끼돼지구이는 이곳에 없다. 새끼돼지구이는 대표적인 내륙지방 요리다. 겨울철 보양식이었다고 한다. 돼지 뒷다리를 염장해 숙성시켜 만든 하몬과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 초리소는 남쪽 지방이 고향이다.
미식에서 시장은 빼놓을 수 없다. 마요르광장 동쪽에 있는
산미겔 시장(Mercado de San Miguel)에는 바칼라오, 하몬, 치즈, 타파스 등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마치 우리네 백화점 푸드코트 같다. 늦은 오후 출출할 때 찾기 딱 좋다. 각양각색의 올리브요리는 동공을 확장시킨다. 솔솔 풍기는 구수한 향들이 저마다 유혹한다. 주머니 얇은 이들의 맛의 천국이다.
지역마다 맛 색깔 뚜렷
새끼돼지구이는 내륙음식
유명 셰프 즐비한 북부
해산물 요리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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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차의 실내. 5. 마요르광장 동쪽에 있는 산미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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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가이드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부른다.
엘 클루브 아야르드(El Club Allard: C/Ferraz 2번지-28008/
tinu.maestro@elcluballard.com/91-542-95-89, 699-488-799/14가지 코스 약 90유로)는 처음 문을 연 1998년에는 회원제 레스토랑이었다. 2003년 셰프 디에고 게레로가 맡으면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2011년 미슐랭 가이드 별점 2개를 획득한 곳이다. 앉자마자 식탁에 ‘조용한 혁명에 동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명함이 눈에 띈다. 종업원이 고소한 소스를 가져와 명함을 찍어 먹으란다. 우리를 염소로 착각한 걸까! 명함은 감자전분으로 만들어서 식용이 가능하다. 웃음을 자아내는 장치다. 캐비아와 치즈요리, 고추냉이 마요네즈를 곁들인 꼴뚜기구이와 목이버섯, 김과 캐러멜을 곁들인 수프와 메로 등 정교하고 섬세한 맛의 세계에 홀딱 빠진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휘황찬란한 맛 평가가 저절로 입안에 맴돈다. ‘어항’이란 이름의 디저트 요리는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과 술을 이용해 거품을 만들고, 그 위에 홍차로 만든 마시멜로를 물고기 니모 모양으로 만들어 얹었다.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앙증맞다.
그다음의 마지막 디저트(왼쪽 사진)는 화룡점정이다. 모양은 딱 삶은 달걀인데 밀크초콜릿과 코코넛, 망고 등으로 만들었다. 이곳은 수프와 고기요리에 우리 장을 쓴다. 장을 쓰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2013 마드리드 퓨전’ 행사 준비를 위해 마드리드를 찾은 샘표식품 최정윤 과장이 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가 우리 장을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며칠 뒤 셰프가 맛에 반해 제품 구매를 요청했다고 한다.
마드리드에는 프라도미술관이 있다. 그림 애호가들이 평생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때로 미술관 같은 레스토랑을 만나면 분위기에 먼저 취한다.
라 타스키타 데 엔프렌테(La Tasquita de Enfrente: Ballesta 6, 28004 Madrid/91-532-54-49/www.latasquitadeenfrente.com/16~28유로)는 벽마다 아름다운 미술품이 걸려 있다. 갈리시아의 조개와 말라가 지방의 와인을 활용한 요리, 쇠고기 등골요리 등이 맛깔스럽다. 스페인 북부의 갈리시아, 바스크, 카탈루냐는 ‘미식의 천국’이다. 질 좋은 바칼라오(bacalao: 염장하고 말린 대구), 안초비, 풀포(pulpo: 문어요리),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 빵에 마늘조각이나 생토마토를 문지르고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먹는 음식) 등의 요리가 있고, 새우·오징어 등 해산물도 풍부하다. 유명 셰프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한다. 바스크는 더 가까운 프랑스의 영향 탓인지 다른 스페인 지역과 달리 올리브유와 함께 버터도 사용한다. 바스크 지방에 혀가 당기는 이들은 마드리드 여행이 아쉽기만 하다. 투우의 고장 안달루시아를 빼면 섭섭하다. 토마토·올리브유 등이 들어간 차가운 수프, 가스파초가 유명하다. 열정적인 투우만큼 뜨거운 날씨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페인 음식에는 올리브유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된장과 간장이 있다면 이곳에는 올리브유가 있다.
마드리드=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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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tip
한국서도 즐길 수 있어요
스페인 여행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동안 입맛이 없다. ‘태양의 나라’에서 맛본 강렬한 맛 때문이다. 우리 순대에 매운 고춧가루 넣어 마치 매운맛의 초리소(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인 양 먹어봐도 애절한 혀의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다. 치료법이 있다. 한국 주재 스페인대사관 직원들이 자주 찾는 스페인식당을 가는 것. 대사관 직원들이 기꺼이 추천에 나섰다.
▣ 셰프 에스파냐(Chef Espana)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출신 요리사 만사노 로드리게스와 알레한드로 베르무데스, 한국인 요리사 조해민씨가 솜씨를 발휘하는 곳이다. 만사노는 스페인에서 10년 일한 요리사다. 조씨는 ‘르 코르동 블뢰’에서 수학한 요리사다. 10여가지 타파스와 파에야, 피자, 하몬, 새우요리 등이 있다. (마포구 서교동/02-336-9876/파에야 2인 세트 4만6000원, 스테이크 3만3000원, 소 볼살요리 2만원, 도미요리 1만8000원 등)
▣ 미 카사(Mi Casa)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라운지바. ‘미 카사’는 ‘나의 집’이란 뜻. ‘스페인 하몬과 만체고 치즈 샐러드’, ‘마늘 하몬 수프’, ‘새우와 버섯과 하몬을 넣은 스페인식 고로케’ 등 다양한 스페인 음식이 즐비하다. (용산구 이태원동/02-790-0063/7000~2만9000원)
▣ 스페인 클럽(Spain Club) 신사동점, 홍대점, 이태원점, 3곳이다. 수제 소시지(로모, 초리소, 살치촌), 이베리코 하몬, 갈리시아 문어타파스 등 10가지 넘는 타파스, 5가지 파에야, 냄비요리 등. (강남구 신사동, 마포구 서교동, 용산구 이태원동/02-515-1118, 02-3143-1118, 02-795-1118/4800~3만2000원)
▣ 엘 쁠라또(El Plato) 강남구 신사동과 광화문에 있다. 파에야, 하몬, 추로스 등. 파에야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췄다. 타파스는 20여가지. (강남구 신사동, 중구 태평로1가/02-325-3515, 02-319-3502/추로스는 4조각에 6400원. 파에야 1인분 1만8500원, 타파스는 약 7000원선. 부가세 별도)
▣ 까사 에스파냐(Casa Espana) 외국생활을 오래 한 부부가 운영하는 곳. 오징어 파에야, 모둠 파에야, 흑미안심 파에야 등 8가지 파에야가 있다. 피자처럼 보이는 스페인식 빵 요리인 코카 등도 찾는 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강남구 역삼동/02-563-4567/9000~3만7000원. 파에야는 2만원)
▣미 마드레(Mi Madre) 스페인 가정식 요리를 하는 곳. 주인장은 1년간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웠다. 실내가 소박하고 순박하다. 구운 가지 요리, 파에야 등 가벼운 마음으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용산구 이태원동/02-790-7875/5000~1만9000원대. 부가세 별도)
▣ 엘 올리보(El Olivo) 마드리드가 고향인 요리사 페드로 루이스가 맛을 책임진다. 새끼돼지고기요리와 바칼라오(염장해 말린 대구), 추로스가 없을 뿐, 북쪽 바르셀로나부터 남쪽 안달루시아까지 스페인 전역의 음식이 있다. 최고급 이베리코 하몬 100g을 7만원에 판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02-502-1156/9000~7만원)
이밖에 소모스(Somos: 서대문구 창천동/02-322-0913), 빠끼토(Pakito: 마포구 서교동/02-6407-6064), 라빠에야(La Paella: 마포구 서교동/02-322-8870)도 가볼 만한 스페인음식 전문점이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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