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6 18:08
수정 : 2013.02.06 18:08
[매거진 esc] 독자사연 맛 선물
우리 할머니는 3년 전, 당신의 92번째 생일상을 받으시고 4일 뒤에 하늘로 가셨다. 요즘은 ‘9988234’라고 건배를 한다고 했던가! ‘99살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자’라는 의미란다. 할머니께서는 99살까지는 계시지 못하셨지만 92살까지는 ‘88’하게 사시다가 정말 딱 4일만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나를 비롯한 손주들은 초등학생 때까지 의무가 있었다. 방학 동안 할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에 가 있는 것이다. 얼추 5~6명의 손주들이 한달 정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에서 ‘자란다’. 여름이면 물 좋은 냇가에서 멱 감기, 겨울이면 얼음지치기만으로도 하루해가 다 간다. 해가 짧은 겨울엔 한참을 놀다가 굴뚝에 연기가 올라가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도시에서 온 우리들도 발길을 돌린다.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잠자리를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셨고, 할머니는 가마솥에 밥을 짓고 계셨다. 장작이 타고 남은 아궁이의 잔불에 할머니가 보글보글 끓이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할머니의 ‘담북장’이다. 할머니는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것을 담요까지 덮어가며 고이고이 모셨고, 몇 날 밤을 우리와 함께 잔 그 녀석은 어느새 밥상 위에서 우리의 속을 채워주었다. 할머니는 밤이면 고구마를 깎아주셨고, 쌀, 검은콩, 땅콩, 검은깨, 참깨, 들깨 등으로 직접 강정을 만드셨다. 그때 내 할머니는 못하는 게 없는 분이셨다. 어른이 되어 할머니가 그때 끓여주시던 ‘담북장’이 바로 ‘청국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골에서 먹으면 구수한 그 맛이 입에 감기는데, 도시의 아파트에서 끓여 먹으면 아무리 멋진 뚝배기에 끓여도 그 맛이 안 난다. 그저 고약한 냄새의 음식일 뿐이다. 게다가 남편도 아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때를 함께 보낸 작은오빠는 ‘담북장=청국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담북장은 청국장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어른들이 추억 서린 음식을 먹으며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야’ 하는 마음이지 싶다. 지금이야 청국장을 냄새 불구하고 건강에 좋다고 많이들 찾지만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먹던 청국장은 겨울이면 으레 먹는 할머니의 제철 음식이었다.
이선영/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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