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06 18:38
수정 : 2013.02.06 18:38
[매거진 esc] 나의 첫 화장
중학생 시절 ‘화장’은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기껏 손가락 한두개 정도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귓불 끝에 정면이 아닌 뒤쪽으로 귀걸이를 하고서 머리를 내려 가렸다. 선생님들도 이해를 해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학생부장 선생님은 달랐다. 불시 단속은 예사였고, 매니큐어나 마스카라, 화장 도구들을 ‘압수’해 가셨다. 압수된 것들을 돌려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이 용기를 내어 교무실에 들어가 돌려달라고 애원을 하면, 선생님은 씨익 웃으시며 “졸업식 때 와”라고 하셨다. 우리는 졸업식 날을 벼르고 별렀지만, 정작 그날은 우리의 보물을 잊고 말았다. 졸업 몇 년 뒤 우연히 기억이 날 수도, 안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졸업하고 선생님을 찾아가, 화장품 돌려주실 수 있는지를 장난삼아 여쭤본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다시 씨익 웃으시며 교무실 구석 압수물품이 가득한 커다란 상자를 열어 보여주셨다. 거기에는 몇 년치 화투며 물총, 불량식품, 심지어 라이터, 담배 등 압수한 물품들이 온통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첫 화장품들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유물이 되어 있었다.
주미연/인천 남동구 서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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