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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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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우리나라 최초의 경차 티코는 그 작은 크기 때문에 놀림감이 되곤 했다. 티코가 갑자기 멈춰 서길래 이유를 알아보니 바닥에 붙어 있던 껌 때문이었다거나, 티코 운전자가 장갑을 끼는 이유는 코너 돌 때 땅을 짚기 위해서라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에 대해 설명할 때 가장 유용한 것은 크기다. ‘큰 차 탄다’는 말은 ‘큰 집 산다’는 것과 비슷한 뜻으로 운전자가 경제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반대로 ‘작은 차를 탄다’는 말은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다. 작은 차 운전자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변변치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은 수입차를 탈 때는 “얼마나 수입차 타고 싶었으면…” 하는 비아냥을 견딜 각오쯤 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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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코리아가 지난해 선보인 새로운 디자인의 ‘더 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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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소형차 친퀘첸토
5일 국내 첫 출시
미니 쿠퍼와 비틀
양분한 소형수입차 시장
흔들까 관심사 그러나 유럽에서는 정반대다. 특히 남서유럽으로 갈수록 작은 차 사랑은 매우 강렬해서, 거리에서 트렁크가 있는 세단 형태의 차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승용차의 90% 이상이 소형 해치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도 트렁크가 생략된 해치백 형태의 자동차를 탈 정도로 ‘자동차=해치백’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젊은 사람이 자가용으로 커다란 세단이나 에스유브이(SUV)를 타고 다니면 ‘트렁크에 시체라도 싣고 다니느냐’라든가, ‘물건이 작아서 큰 차를 좋아한다’는 식의 농담을 듣게 된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셈이다. 지난 5일 국내 출시된 피아트 친퀘첸토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차다. 이탈리아의 국민차로 태어난 친퀘첸토는 우리나라의 티코처럼 놀림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1957년 처음 등장한 이래 1975년 ‘126’ 모델한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20년 가까이 생산되면서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반드시 타봤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로 구성된 이탈리아의 도로에는 작은 차가 어울렸기 때문에 이 차는 남녀노소,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사랑받았다. 2007년,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탄생한 ‘누오바 친퀘첸토’(새로운 500)가 등장하자 열광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뿐만 아니었다. 친퀘첸토는 지금 전 유럽과 아시아, 미국에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작은 스타’다. 차체는 예전에 비하면 훨씬 커졌지만 여전히 앙증맞다. 그래도 성인 둘이 편히 탈 수 있으며, 단거리라면 넷이 타도 무리가 없다. 머리 공간이 충분해 비좁다는 느낌은 없으며, 시내는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잘 달린다. 페라리나 알파 로메오 등 레이스에서 명성을 쌓은 제작사와 한 식구인 피아트답게 엔진의 힘도 충분하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델 중에는 2기통 900㏄ 엔진을 실은 것도 있는데, 1000㏄ 국산 경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잘 달린다. 터보가 장착돼 가속력이 충분한데다 언덕에서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국내에는 1.4리터 휘발유 엔진이 탑재된 모델이 들어올 예정인데, 차체가 워낙 작고 탄탄하기 때문에 달리기 성능에는 불만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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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국에 출시된 피아트 친퀘첸토(500)의 주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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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취향 따라
꾸미는 프로그램도 다양
차체 작아도
힘 좋고 탄력 넘쳐 승차감은 이탈리아 차 특유의 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 굽은 길을 달릴 때는 차체가 많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타이어가 얼마나 노면에 잘 밀착되어 있는지를 차체의 기울기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스포츠성을 중요시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정인데, 페라리나 마세라티 같은 최고급 스포츠카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에게 익숙한 감각이 아니라는 점이 우려되긴 하지만, 딱딱한 독일 차와는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퀘첸토의 라이벌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미니 쿠퍼와 폴크스바겐 더 비틀이다. 미니가 영국 스포츠카의 날렵함과 독일 차의 신뢰도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차라면, 피아트는 이탈리안다운 디자인 감각과 경쾌한 발놀림을 즐기는 차다. 핸들링이 가볍고 차체가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여성 운전자도 운전이 쉽고 즐겁다. 폴크스바겐의 더 비틀은 지난해 모델이 바뀌면서 생김새가 좀더 남성스러워졌다. 귀여운 이미지를 벗고 오리지널 비틀의 남성미를 강조하면서 좀 무뚝뚝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운전 감각이 폴크스바겐답게 듬직하고 탄탄하다는 점에서 날렵한 스포츠카인 미니와 친퀘첸토와는 구분된다. 미니가 운동 좋아하는 남동생 같은 느낌이라면 친퀘첸토는 옷 좋아하는 여동생 같은 차다. 더 비틀은 이제 멋지게 성장해서 근육이 붙기 시작한 청년에 가깝다. 친퀘첸토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도로를 색다르게 바꿔줄 것이라는 점이다. 빨강, 노랑 등의 원색 외에도 베이지나 카키색, 오렌지색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운전자의 선택에 따라 꾸밀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으며, 고급차 뺨치는 소재로 꾸민 고급사양이나 패션 브랜드 구치와의 컬래버레이션 모델, 페라리와 협력해 만든 스포츠 모델 등 가지치기 모델도 개성이 넘친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영화배우나 뮤지션도 많이 애용한다. 피아트 그룹의 후계자이자 패셔니스타로 잘 알려진 라포 엘칸도 평소 이 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니와 더 비틀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친퀘첸토는 불리한 게 사실이다. 피아트라는 브랜드가 이 차의 주된 고객인 젊은층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다. 게다가 톡톡 튀는 이미지를 전달하기에는 한집안 식구인 크라이슬러가 너무 점잖은 이미지인데다, 개성보다는 보편성을 앞세운 패밀리 카인 프리몬트가 동시에 론칭한다는 것도 ‘피아트’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을 강조하기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글 신동헌 <레옹> 부편집장·사진제공 피아트-크라이슬러코리아,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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