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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남면 하서4리~읍천리 해안길(파도소리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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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신라 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인 경주의 여행지는 흔히 네 권역으로 나눈다. 신라 왕과 왕족들의 거대한 능으로 덮인 시내권과 석굴암·불국사권, 노천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권, 그리고 동해안권이다. 감포읍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권역은, 내륙 쪽의 무수한 볼거리들에 가려져, 뒷전으로 밀렸던 여행지다. 최근 경주 동해안의 바다 경치와 볼거리들이 새로 주목을 받고 있다. 눈부신 청색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멋진 바위 경치와 곳곳에 숨은 유적들, 그리고 바닷가 식당들이 내는 싱싱한 해산물이 3박자를 이루는 해안 여행지다.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양남면 주상절리 해안의 독특한 바위 무리와 감포 일대 볼거리들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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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꼴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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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때
많이 훼손됐지만
여전히 보기드문 경관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 전시장 양남 하서~읍천 해안 “요래 생긴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드문 기라.” 경주시 양남면 하서4리 주민들의 주상절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주민 김장수(66)씨가 하서리~읍천리 해안에 깔린 가지각색의 주상절리 바위 무리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제주도처럼 빨딱 서 있는 기 아이고, 자빠져 있는 기라. 부채꼴 주상절리는 영국 주상절리 담으로 규모가 크다 카데.” 주상절리란, 분출된 용암이 급속도로 냉각돼 수축되며 생긴 기둥 형태의 바위 무리를 가리킨다. 주로 4~6각형 모습으로 형성되는데, 제주도 남쪽 해안 절벽의 수직 주상절리대가 대표적이다. 양남면 해안의 주상절리는 수직 형태는 물론, 바닥에 누운 형태, 비스듬히 기운 형태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잘 다듬어진 석재들을 무수히 쌓아올린 듯한 모습, 부채꼴로 둥글게 펼쳐진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곳 주상절리 무리는 지난해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됐다. 경주시 쪽은 지난해 6월 하서4리(진리마을)에서 해안을 따라 읍천리까지 1.7㎞의 해안 산책로를 만들고 ‘파도소리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파도 소리보다는 파도와 바위 빛깔이 눈부신 길이다. 짙푸르게 펼쳐지는 동해 바다와 솟고 누운 다채로운 형상의 검은빛 바위 무리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발길을 멈출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고, 전망 좋은 곳들엔 어김없이 군부대 경비초소 흔적이 나타난다. “여긴 오년 전까지도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던 지역입니다. 해 지면 주민들도 일체 발길을 끊었어요. 그만큼 취약지역이죠. 간첩 침투가 많았던 곳입니다.” 주민 김명곤(60)씨는 “어렸을 때 간첩선에 포사격을 가해 간첩 시체를 끌어내는 걸 직접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흔히 군부대 주둔지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자연경관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전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곳도 그럴까. 하지만 이곳은 군부대 주둔에도 불구하고, 나라 정책과 주민들에 의해 경관이 파괴된 곳이다. “요거 지금 남은 주상절리는 한 20~30%밖엔 안 될 기요. 우리 손으로 거의 다 깨뜨려가 망가뜨려삔 기라. 이게 그래 중요한 건지 우예 알겠노.” 주민 김장수씨는 “새마을운동 때 마을 정비사업 하고, 담 쌓고 길 내는 곳마다 주상절리 바위를 깨다 사용했다”고 말했다. “정을 대고 쇠망치로 때려 잘라내 4명이 조를 이뤄 목도로 져날라 담 쌓는 데 썼다”고 한다. 김씨는 바닷가의 낮고 평평해진 주상절리 무리는 대부분 지금보다 2m 이상 높았다고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하는 얘기 중에 신라 충신 박제상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왜에 볼모로 가 있던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해내고 잡힌 뒤 충절을 지키다가 죽은 충신이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출발한 곳이 바로 하서4리 ‘동메(동뫼)’ 앞바다라고 한다. “저게 바로 동메라.” 김씨가 가리키는 작은 언덕엔 소나무 몇 그루가 우거져 있다. 동메 왼쪽 또 하나의 작은 언덕은 주민들이 뒤문당이라 부르는 곳이다. 파도소리길은 편도 40분 정도의 완만한 해안길이다. 이곳 주상절리의 백미로 불리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길 중간쯤 지나 군부대 통제지역 앞에서 찻길 쪽으로 나왔다가, 다시 해안 쪽으로 내려가 언덕으로 오르면 내려다보인다. 파도소리길 끝에서 만나는 포구는 읍천항. 주택 담벽마다 벽화로 장식된 벽화 포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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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이라 전해오는 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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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로 장식한 감포읍내 낡은 뒷골목 ‘해국길’. 깍지길의 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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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깍지길엔
소나무숲과 바위굴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풍성 문무대왕 넋 서린 대왕암·감은사지·이견대와 감포 깍지길 읍천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려 월성원전단지 지나면 봉길리. 신라 30대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 있는 곳이다. 200m 앞바다에 용의 모습처럼 길게 늘어선, 길이 20m쯤 되는 섬인데, ‘죽어서도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장례를 지냈다고 전해온다. 다시 한굽이 돌아 왼쪽으로 차를 몰면 문무왕 때 짓기 시작해 신문왕 때 완성된 고찰 감은사 터(감은사지)에 이른다. 단아한 모습으로 선 거대한 동·서탑과 금당 터 바닥의 독특한 돌널 구조가 눈길을 끈다. 죽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건물 밑에 설치한 공간이라고 한다. 감은사 터에서 해안 쪽으로 나와 국도변에서 만나는 이견정은 옛 이견대 터에 새로 지은 정자다. 신문왕이 바다에 떠다니던 섬에서 구한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모든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 등 큰 이익을 얻은 곳에 세우고 역대 왕들이 참배했다는 이견대 터다. 정자 앞 정면으로 긴 용을 닮은 대왕암이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감포읍에선 지난해, 대본리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걷거나, 내륙 쪽의 볼거리들을 아울러 둘러볼 수 있는 탐방로 ‘감포 깍지길’을 개설했다. 해안길·자전거길·읍내골목길·바닷길 등 8개 구간으로 짜였다. 문무왕수중릉에서 나정해안~전촌항~감포항 거쳐 연동 어촌체험장에 이르는 해안 깍지길(18.8㎞) 1구간에는 수려한 바위절벽 경치와 울창한 소나무숲, 전설 얽힌 노거수·바위굴 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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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감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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