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0 18:33
수정 : 2013.02.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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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문을 여는 오브젝트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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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의 한 거리. 희한한 간판이 내걸렸다. 가게 이름보다는 그 옆 짧은 문구가 궁금증을 더한다. ‘현명한 소비의 시작’이라 새겨져 있다. 유감스럽게도 홍익대 앞 거리 한복판은 지금 현명한 소비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 매장이나 외국계 에스피에이(SPA) 브랜드들이 그 공간을 잠식해가는 중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현명한 소비’라는 슬로건을 내건 브랜드 ‘오브젝트’를 이끄는 이영택, 유세미나씨를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15일 오후, 직접 가 본 오브젝트의 본격 오프라인 매장은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 가게는 3월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가게 인테리어와 전기 공사로 분주했다. 두 손에 작업용 장갑을 낀 두 사람과 지인들은 가게 곳곳 페인트칠에 여념이 없었다.
홍대 앞 문여는 ‘오브젝트’
현명한 소비 슬로건으로
‘재사용’ 개념 적극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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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을 대여해 직접 만든 팔찌를 팔 김연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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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의 첫 가게는 곧 문을 열지만, 브랜드가 탄생한 지는 2년이 넘었다. 2010년 10월, 브랜드 오브젝트가 태어났다. 그 시작은 작은 가게의 한 선반에서 출발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일본에서 사온 찻잔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안 쓰는 것 같은데 제게 달라고 했어요. 이것을 지금은 문을 닫은 ‘반지하드림’에 갖고 갔죠. 이곳에서 선반 하나를 빌려 그 찻잔을 팔았어요. 그게 오브젝트의 시작이에요”라고 이영택씨는 말했다. 거창한 포부보다는 ‘상식’에서 출발한 브랜드였다. 쓰지 않는 물건이 제자리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했을 뿐이었다.
그 첫 도전은 실패했다. 10개월 정도 운영했지만, 반지하드림은 곧 문을 닫게 됐다. 수익은 많이 나지 않았고, 가게 월세는 올라만 갔다. 곧장 다른 가게를 열었지만, 역시 오래 운영하지 못했다. “점점 밀려나게 됐던 거죠. 이게 저희가 처한 현실이고요. 지금도 낙관적인 상황은 분명 아닐지 몰라요.” 이영택씨는 씁쓸한 듯 말을 이어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어요. 그때는 홍대 앞에 작은 공방들과 옷집, 공연장 정도뿐이었어요. 상업적인 브랜드가 넘치는 곳으로 변했지만 또다시 변할 수 있다고 봐요.” 그 새로운 변화를 위한 방법으로 ‘현명한 소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소비를 위한 길을 오브젝트는 여럿 제시하고 있다. 오브젝트에는 하위 브랜드가 있다. 직접 제작한 생활용품 ‘오브젝트 오리지널’, 재사용 옷과 직접 디자인한 옷을 포함한 ‘오브젝트 웨어’, 재활용 물건인 ‘오브젝트 리싸이클’, 물물교환 장터 ‘오브젝트 바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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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tip오브젝트는 여기서!
오브젝트 오프라인 매장은 3월1일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옷과 디자인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을 만날 수 있다. 물물교환 코너도 함께 운영될 예정이다. 선반 대여는 선착순으로 이뤄지고 있다. 위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0-1번지 1층. 먼저 문을 열어 운영중인 온라인 쇼핑몰(objectwear.co.kr)에서도 오브젝트 웨어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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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방을 재사용해 만든 오브젝트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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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의 머천다이저인 유세미나씨는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디자인과 튼튼한 옷감을 결합시킨 옷”을 만드는 데 애쓰고 있다. 유씨의 본업은 온라인쇼핑몰의 머천다이저이다. 이 일을 하면서 조금만 고쳐 입으면 될 옷들이 버려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대문 의류상점의 상인들에게도 작은 손상이 있는 옷들은 처치 곤란이에요. 이 손상이 있는 부분에 옷감을 덧대는 식으로 수선을 하게 되면 멋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옷이 되는데도 말이에요.” 오브젝트가 먼저 선보인 온라인 쇼핑몰에 가보면, 담백한 디자인의 옷을 구경해볼 수 있다.
최소의 디자인은 옷뿐 아니라 직접 만드는 생활용품에도 적용된다. 이유는 이렇다. “재사용이나 업사이클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도 디자인을 많이 바꾸게 되면 가공하면서 이런저런 오염이나 쓰레기들이 많이 생기게 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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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웨어가 내놓은 기본형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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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요.” 이영택씨는 설명했다. 물건뿐 아니라 쇼핑백이나 포장상자도 재사용한다. 이들은 재활용이라는 말보다 ‘재사용’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재활용은 버려진 물건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뜻하고, 재사용은 기본 용도는 그대로 둔 채 개보수를 거쳐 다시 쓰는 것을 뜻한다. 이 구분으로 보자면, 오브젝트의 지향은 ‘재사용’에 가까워 보인다. “저희가 내건 브랜드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사물’(思物)이에요. 결국 물건은 사람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물건을 생산자나 소비자가 생각해보자는 거죠. 이렇게 물건의 쓰임,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고 소비하게 되면, 작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건의 쓰임,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소비하게 되면
작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 나가겠지요”
그가 생각하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가게의 기능이다. 이영택씨의 구상 속에 오브젝트 매장은 물건만 파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창작자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공간이길 바란다.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분명 많을 것이라고 봐요. 그런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죠. 창작자들을 모아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거죠.” 그래서 ‘선반 대여’도 진행한다. 이날 공사중인 매장 안으로 김연경, 이진선씨가 들어왔다. 그들은 ‘추즈미’(choose me)라는 액세서리 브랜드를 갓 세상에 내놓았다. 오브젝트에서 선반 대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팔 물건을 들고 직접 찾아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입구를 확인하더니, 잘 보일 만한 선반을 찜했다. 이진선씨는 “오프라인에 팔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곳에서 선반 대여를 한다고 해서 찾아왔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고 떨린다”고 말했다.
봄이 오면, 오브젝트가 자리잡은 근처 골목이 더욱 북적일지 모른다. 이영택씨는 “구석진 골목이지만 작은 벼룩시장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물물교환도 할 수 있을 거고요. 현명한 소비는 그저 물건을 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물건의 교환이나 공유를 포함한 개념이어야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오브젝트의 도전은 가게를 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면, 공유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 ‘오브젝트 셰어’라는 이름으로요. 아마 먼 훗날이 되겠지만요.”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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