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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곤충마니아들 양대 인기 종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도로를 꽉 메운 딱정벌레 같은 승용차들. 이것들은 혹시 곤충사육 상자에서 튀어나온 건 아닐까.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안덕규(20·서울 구로구)씨는 최근 운전면허를 땄다. 곤충 마니아인 그는 마음껏 채집여행을 갈 꿈에 부풀어 있다. 발전기를 싣고 곤충들이 있을 만한 숲을 찾아가 밝은 수은등을 켜고 기다리면 하룻밤에 수십마리를 잡을 수 있다. 강기원(28·경기도 안성)씨는 한달 전 꿈에 그리던 차를 뽑았다. 그는 12살 때부터 왕사슴벌레를 키워온 곤충 마니아. 차가 없을 때는 안성 부근의 산속을 뒤지거나 한해 몇 차례 원정에 그쳤지만 지금은 제주도, 전라남도 섬, 강원도 강릉 등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 성인이 된 곤충 마니아의 ‘일순위 득템’은 승용차다. 채집여행을 위해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려서부터 키워온 곤충의 부추김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마니아 가운데 80%를 사로잡은 딱정벌레목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의 속삭임은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서울 강서구의 충우곤충박물관 장영철 관장은 사슴벌레의 인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은 원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장난감 로봇이나 자동차가 스스로 못 움직이는데 곤충은 스스로 움직이니 환장할 수밖에 없지요. 거기다 겉모양이 장난감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편하게 갖고 놀아요. 다른 벌레처럼 터지지 않고 생명력이 강해요. 싸움 시키는 재미도 커요. 해마다 곤충싸움대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전갈과 싸움을 붙이기도 해요. 남자아이들은 자기 것을 크고 강하게 만들려 합니다.” 인하대 생명공학과에 진학하는 장영종씨는 초등학교 때 사물함에 사슴벌레를 키웠다. “집게발이 꼭 로봇 같았어요. 딱딱한 껍질은 프라모델 같았고요. 딱정벌레를 키우면서 학교나 온라인에서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었어요. 저의 진로 선택에도 도움이 됐죠.” 그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와 생물자원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승용차는 딱정벌레를 빼다 박았다. 딱딱한 외피, 유선형 몸통, 이마에 돋은 범퍼, 날개와 다리의 장점을 취한 바퀴. 승용차들은 딱정벌레처럼 지구의 거죽을 지배한다. 만천곤충박물관(서울시 영등포구) 김태완 관장은 자동차회사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딱정벌레를 구입해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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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숍인 장풍이닷컴의 사슴벌레 사육장.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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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모양새에 키우는 재미까지
열혈 마니아들은
자동차로 채집 다니기도 딱정벌레는 지구상 100만종의 곤충 가운데 25만종이나 차지하는 지배종. 딱정벌레는 딱딱한 껍질로 온몸을 둘러 외부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마 쪽에 달린 멋진 가위와 뿔로는 다른 곤충들과 싸워 자기 종족을 보전할 수 있었다. 유선형의 몸에 날개가 달려 먹이나 배우자를 찾아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천적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성장 단계에 따라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 등 다른 형태로 탈바꿈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게다가 생식능력은 어떻고. 딱정벌레 붐이 불기는 10여년 전. 사육 붐을 타고 7년 전 곤충숍 장풍이닷컴을 연 신희원씨는 애초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판매비율이 7 대 3이었는데 요즘은 반반이라고 말했다. 장수풍뎅이의 수명이 길어야 3개월밖에 되지 않고 사슴벌레는 5개월에서 최장 3년을 살기 때문이다. 곤충 마니아들은 딱정벌레를 사육하면서 라이프사이클을 배우는데 궁극 목표는 크게 키우기다. 국내에 서식하는 사슴벌레는 17종. 가장 흔한 것이 넓적사슴벌레, 애사슴벌레, 참넓적사슴벌레 세 종류. 식성이나 서식 환경이 까다롭지 않아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기르기 쉽다. 몸통이 큰 왕사슴벌레는 충청, 전라, 강원 일부에서 보이는데 희귀한 편이다. 큰 가위가 달린 사슴벌레는 중부 이북에서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거제도에서도 발견된다. 자연에서 채집하기도 하고 곤충숍에서 구입하거나 마니아끼리 교환하기도 한다. 자연상태에서 암컷은 최대 35㎜, 수컷은 60㎜ 이하인데, 인공사육해 부화시키면 그보다 훨씬 커져 암컷은 최대 50㎜, 수컷은 80㎜까지 자란다고 한다. 가격은 크기에 민감하게 변한다. 72㎜는 3만원 안팎에 거래되며, 75㎜면 5만~6만원인데 78㎜가 되면 15만~20만원으로 뛴다. 애벌레 상태에서도 사고파는데 1령 5000원, 2령 7000~8000원, 3령 2만~3만원 선이라고 말했다. “어려서는 아무렇지 않게 개미를 밟아 죽이고 그랬는데, 사슴벌레를 키우면서부터는 먹이를 주고 사육통을 청소하는 등 부모 된 마음을 갖게 되며,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게 마니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런데 곤충 마니아 가운데 20대 이상의 성인층은 10% 미만이다. 왜일까? 충우박물관 장영철 관장은 대학교 진학 또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시간 여유가 없기도 하려니와 돈의 여유가 생기면서 눈 줄 곳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이는 파충류로, 어떤 이는 표본 수집으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창궐하는 승용차에는 ‘쇠로 된 딱정벌레’로 갈아탄 곤충 마니아들이 타고 있지 않겠는가.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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