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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27 18:47 수정 : 2013.02.27 18:47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해방촌 108계단.

[매거진 esc] 여행

서울에서 낡고 뒤처진
동네 대표격인 용산구 해방촌
장기체류 외국인과
젊은이들 발길 늘어

낡고 쇠잔한 풍경에
학생·주민 함께 작업한
골목 벽화
이국적 카페·레스토랑들이

“여긴 못 살 데여. 걸어다니기도 힘들고 개발도 안 되고.”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속칭 해방촌. 해방촌 들머리 골목길에서 만난 70대 어르신은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못 살 데’서 35년째 살고 있는 그는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일 것”이라고 했다. 주민 스스로 가장 뒤처진 동네라고 여기는 동네. 1945년 광복 뒤 이북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이 터를 잡은 이래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몰려와 정착하며 이뤄진, 남산 자락 비탈마을이 해방촌이다.

해방촌 옛 ‘선천군민회’ 쪽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수십년간 정체됐던 이 산비탈 골목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몇년 전부터 이태원 쪽에 비해 물가·방값 싼 곳을 찾아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늘어났고, 들머리 도로변으론 덩달아 영어 간판을 단 레스토랑·카페들이 잇따라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태원 쪽과 가까운 언덕길 도로변 가게들엔 영어 병기 간판이 즐비하다. 해방촌 언덕길 들머리 고바우수퍼 주인은 “3~4년 전부터 외국인이 크게 늘어, 이젠 손님의 80%가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요즘엔 해방촌 낡은 골목길을 탐방하는 젊은이들 발길도 부쩍 늘고 있다. 용산구청이 마련한 ‘아트빌리지’ ‘그린파킹(담장 허물기)’ 사업 등이 지난 1월 마무리돼, 동네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고 조형물이 설치되면서 볼거리도 풍성해졌다.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뜻있는 주민들의 노력도 이어진다. 지역민 쉼터이자 도서관인 ‘종점 수다방’, 열린 공간 ‘빈가게’, 연구 공간 ‘수유너머 아르(R)’ 등 주민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하는 공간들이 그곳이다. 이렇듯 ‘못 살 데’에서 ‘구경하며 느끼고 배울 만한 동네’로 변하고 있는 해방촌 골목길을 산책하고 왔다. 말이 산책이지, 가벼운 산행에 가까운 골목길 탐방이다. 그래도 그 정도 발품은 팔며 둘러볼 만한 동네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이나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해방촌 탐방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남산 남서쪽 자락의 한 종점(해방촌 옛 버스종점)과 다른 종점(후암동 종점)을 잇는 길이다. 더 다르게 표현하면, 용산 미군부대 동쪽 담벽(녹사
해방촌 들머리의 한 카페
평역)~북쪽 담벽을 산비탈로 에둘러 걸으며 둘러보는 탐방로다.

어느 길에서 탐방을 시작하든 거치게 돼 있는 곳이, 해방촌의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한 중심거리 ‘해방촌 오거리’다. 오거리에 서서, 모여든 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남산과 용산 미군부대 사이 산비탈에 자리잡은 해방촌의 얼개를 금세 이해하게 된다.

“예미, 이 좁아터진 골목길로, 차들이 줄을 서요, 줄을.”

오거리 한편 건물 처마 밑에서 20여년째 두부·메밀묵 좌판을 하고 있는 ‘두부 아줌마’(65)가 혼잣말을 내뱉으셨다. “터널 요금 안 낼라구들 이리로 지나간다데요.” 이 오거리가 어떤 오거리인가. 편도 1차로 너비를 겨우 면한 비좁은 비탈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들을 달고 모여들어 손바닥만한 공간을 만들고는 온종일 뿡뿡 빵빵 정체를 빚으며 법석을 떠는 곳이다.

차선도 없고 건널목도 없고 신호등도 없으며 인도도 따로 없는, 차량·손수레·보행자들 모두의 해방구다. 마을버스, 트럭·승용차들과 폐지를 실은 손수레, 아기를 태운 유모차, 통학하는 학생들, 보행기에 의지한 실향민 어르신, 개 목줄을 잡고 산책하는 외국인 들이 뒤엉켜 오고가는 사이로 경유 배달, 피자 배달 오토바이들이 날쌔게 비집고 내달리는 거리다.

다섯 가닥의 길 중 남산순환로인 소월로로 이어지는 맨 위쪽 길을 빼고 네 가닥이 모두 가파른 비탈길이다. 길 두 가닥은 우여곡절을 거쳐 경리단(국군재정관리단) 쪽으로 내려가고, 다른 두 가닥은 좌고우면하다 후암동 쪽으로 내려간다. 오거리로 숨차게 올라오는 모든 길들의 지배자는 두말할 것 없이 전깃줄들과 남산타워(N서울타워)다. 어느 골목길이든 어김없이 얽히고설킨 전깃줄들이 탐방자를 기다리고, 어느 골목길에서든 어김없이 남산타워가 탐방자를 지켜본다. 남산타워는 대개 거미줄(전깃줄)에 휘감긴 모습으로 나타난다.

해방촌 신흥로14길의 벽화.
전깃줄·비탈길·계단길 3요소로 구성된 해방촌에서 가장 이름난 계단이 ‘108계단’이다. 후암동 종점 로터리에서 올려다보이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108개의 대리석 계단이다. 지금은 계단이 둘로 나뉘고 가운데 정원이 만들어져 있지만, 본디 하나의 널찍한 돌층계였다. 일본인들은 왜 이곳에 돌계단을 만들었을까.

“계단 위쪽에 왜놈들이 참배하는 신사가 있었어요.” 평남 중화 출신 실향민 주민 최용관(80)씨는 “지금 빌라촌이 된 옛 선천군민회 자리가 바로 신사 터였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옛 숭실학교 자리인 외국인학교 아래쪽의 빌라·연립주택촌 일대를 ‘선천군민회’라 부른다. 광복 뒤 주로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들이 모여살며 붙은 이름이다. 이 일대엔 지금도 낡고 허물어져 가는, 50~60년대 집들이 몇 채 남아 있다. 옛 해방촌 흔적으로 용산2가동 주민센터 뒤쪽에 선 비석(동장 이봉천 기적비)도 있다. 남산기원에서 만난 주민 김영무(71)씨는 “해방촌에서 투표로 뽑은 첫 동장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말했다. 세금 감면 등 주민을 위해 크게 애쓴 분이라고 한다.

해방촌에 남은 낡고 쇠잔한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해방촌성당 옆에서 미로처럼 이어지는 비탈길로 내려서거나, 후미진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신흥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된다. 오거리에서 외국인학교 쪽으로 내려가다(또는 해방교회 쪽에서 내려가다) 보면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드리운 신흥시장 입구를 만난다. 희미한 불빛 아래 정육점과 반찬가게 몇 곳만이 남아 있다. 30년째 반찬가게를 해왔다는 할머니(75)는 “동네가 공원이 돼 시장이 철거된다고 해서 다 떠나고, 시장 안에 집이 있는 사람만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용산공원과 남산을 잇는 녹지축 공원 계획은 무산된 지 오래다. 그래도 시장 입구에는 ‘저렴한 가격, 싱싱한 물건, 전통시장 상품권으로 제수용품을 마련합시다’ 펼침막이 펄럭인다.

해방촌 신흥로14길의 벽화.
해방촌의 시장 상권이 쇠퇴하게 된 건 60~70년대 크게 번창했던 일명 ‘요꼬’(스웨터 가내수공업)라 불리는 편물업이 시들해지면서라고 한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 스웨터를 만들던 편물업은 의류산업 발달로 설자리를 잃게 됐다. ‘요꼬’ 이전 50년대의 해방촌 주력 ‘산업’은 가짜 담배(일명 ‘야미 담배’) 제조였다. “담배꽁초를 주워다가 까서 말린 다음, 타자기처럼 생긴 담배 마는 기계를 써서 가짜 담배를 만들어 팔았다.”(주민 김영무씨)

낡은 해방촌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는 풍경이 벽화들이다. 108계단 주변에서부터 신천교회, 외국인학교 등을 거쳐, 해방촌성당과 해방촌 오거리로 오르는 골목과 도로변 곳곳에 보성여고생들과 서울대 건축학과 학생, 주민들이 함께 작업한 벽화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벽화는 이태원 쪽 들머리에서 오거리 쪽으로 오르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신흥로14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번듯한 주택들이 대부분인 이 골목 벽화는 ‘그린파킹’ 사업(담장 허물기 사업)을 하며 그려진 것들이다.

해방촌 탐방을 후암동 쪽으로 내려서며 마무리한다면 후암동 종점로터리 북쪽 골목길 ‘두텁바위(후암동의 옛 한글 지명)로’ 안으로 들어서볼 만하다. 또다른 벽화 골목이다. 두텁바위로 안 ‘복지법인 영락보린원’ 정문 앞에 조선시대 궁중 제사 때 쓸 가축을 기르던 관아였던 ‘전생서’ 터 표석이 있다.

용산고 정문 옆엔 ‘이태원 터’ 표석도 있다. 이태원이란 조선시대 서울 근교에 설치했던 여행자들의 숙소 4곳 중 한 곳. 이태원동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용산고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전쟁 때 포병으로 참전해 순국한 학생들을 기리는 순국학도탑을 볼 수 있다. 포병 자원 학도병들이 용산고에서 모여 평양으로 향했다고 한다.

가는 길 |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 4호선 숙대입구역 3번 출구를 이용한다. 2번 마을버스가 후암동 종점~해방촌 오거리~경리단 쪽 해방촌 입구(한신아파트)를 오간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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