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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24일 오전 11시 즈음. 경기도 부천시 역곡로 야산 입구에 등번호가 달린 연두색 조끼 차림의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느 지역 등산모임이지 싶은데 배낭을 멘 사람이 하나도 없다. 더 이상한 것은 모두 귀에 리시버를 끼고 있다는 것. 게다가 임금 왕(王)자 모양으로 생긴 물건을 들고 있는데, 듣자니 전파 수신기란다. 아마추어무선통신(햄) 동호인들의 2013 신년 에이아르디에프(ARDF·Amateur Radio Direction Finding) 대회다. 에이아르디에프 대회는 일정한 지역 내에 심어둔 전파송신기(폭스) 5개를 누가 빨리 많이 찾아내는가를 겨루는 대회. 오리엔티어링과 전파탐지 기술을 결합한 레포츠다. 선수들은 전파 수신기와 지도, 나침반을 이용해 송신기가 발신하는 전파의 방향을 쫓아가 숨겨진 송신기를 찾아내야 한다. 보통 송신기는 루트를 따라 500m 간격으로 설치되는데, 1~5번 송신기는 1분씩 순차적으로 자신의 번호 즉, 돈쓰(·-), 돈돈쓰(··-), 돈돈돈쓰(···-), 돈돈돈돈쓰(····-), 돈돈돈돈돈(·····) 신호음을 발신한다. 11시35분.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자 61번 조동익(64, 전북 전주시)씨를 비롯한 1조 선수 4명이 산길을 내달렸다. 언덕에 이르자 이들은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길을 찾듯이 안테나를 휘둘러 전파의 길을 찾았다. 전파와 안테나의 방향이 일치할 때 신호음이 가장 큰 성질을 이용해 폭스의 방향을 탐지하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호음이 커지는 성질을 이용해 자신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식이다. 할당된 주파수에서동호인들과 교신하거나
통신장비 조립하는 등
전파 즐기는 아마추어 무선통신 대로 양쪽 산에서 폭스 5개를 모두 찾아낸 조씨는 144.420㎒로 수신 주파수를 바꿨다. 지금까지는 144.760㎒ 경기 주파수였고, 이제는 피니시 송신기가 발신하는 삐삐 신호음을 찾아야 했다. 산울림청소년수련관 도착점을 찍은 시각은 오후 1시4분. 5㎞ 산길을 달리며 5개의 폭스를 찾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29분. 땀범벅이 된 조씨는 출발 때와 4번 즈음에서 헷갈려 시간이 더 걸렸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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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등 디지털 시대에
저물어가는 취미활동
40대 이상과 10대 스카우트
단원들이 명맥 유지 한국전파진흥원의 통계를 보면 국내 자격증 소지자는 2012년 말 기준 19만8982명. 이 가운데 입문자들이 몰리는 3급이 95%인 18만9751명이다. 지난해 3급 취득자 826명은 10년 전인 2002년 4947명과 비교하면 17%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관계자의 말을 들으면 전성기에는 매달 실시하는 자격시험 응시자를 위한 강습회 지원자가 많아 서울지역은 선착순 100명으로 끊었으나 최근에는 20명 미만이라고 말했다. 자격 취득 뒤 실제 통신기기를 구매·등록해 무선통신을 즐기는 아마추어무선국 운용자는 2012년 말 현재 3만9047명(중앙전파관리소 자료). 이 수치는 2002년 7만1831명의 54%에 불과하다. 10년 만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이상이 2만8815명으로 75%를 차지하고 있다. 신규 진입이 미미한 가운데 10년 전과 비슷한 출생연대별 분포곡선을 그리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추어 무선통신 인구는 심각하게 노령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휴대전화가 도입되면서 예정된 것. 휴대전화 보급이 활성화한 2000년대 초 통계를 보면 2001년 6236명이던 아마추어 무선통신 신규 자격 취득자가 2004년 3463명으로 불과 3년 새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에 따라 국내 아마추어 무선통신 장비업체는 전무한 실정. 신년 에이아르디에프 참가자들이 휴대하여 산야를 누빈 수신기는 우크라이나제와 중국제가 대부분이었다. 우크라이나와 중국은 아마추어무선 인구가 많아 생산이 활발한 반면 한국은 신규 진입자가 급속하게 줄어들어 몇 해 전부터 생산이 중단됐다고 한다. “아마추어 통신장비 시장은 일본 업체에 완전히 점령됐어요. 거기에다 아마추어 무선통신 신규 인력 진입이 지지부진한 현상이 몇 년간 지속되면 전파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입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자격증 취득, 무선통신국 개설 요건 완화가 시급합니다.” 아마추어무선연맹 손대근 이사장의 말은 절박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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