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3.06 15:28 수정 : 2013.03.06 16:59

모래와 자갈 등을 걸러내자 모습을 드러낸 사금 조각들.

냇가에서 금 찾는
사금 탐사 채취
취미·레저 활동으로 확산

사금 채취 빠져들며
광물·지질학 공부도
다양한 샘플 모으는 즐거움
돈벌이 수단은 아냐

“취미로 냇가에서 사금을 캔다고?” 이 물음은 두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냇물에 정말 사금이 있느냐는 궁금증과, 금에 눈이 멀면 패가망신한다는데 그게 취미생활로 가능하겠냐는 물음이다. 답. “우리 하천 곳곳에 사금이 엄연히 존재하고, 사금 채취를 취미생활로 즐기는 이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즐기는 이들은 누굴까. ‘일확천금’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우리는요. 그냥 낚시꾼·등산객처럼 자연 속에서 주말 한때를 보내는 보통 서민들이죠.” “사금 한 알만 봐도 직장에서 쌓인 피로가 확 풀리거든요.” 주말마다 떠나는 사금 채취 여행으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들 얘기다.

사금잡이 고수들은 찾아낸 사금과 갖가지 광석들을 유리병에 담아 모은다.

사금 채취. 솔직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따위의 지당하면서도 부담스러운, ‘황금’에 대한 옛날 얘기는 일단 접어두고, 한번 해보고 싶지 않은가? 내 손으로, 내 주변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그 값비싼 금싸라기를, 누런 황금을 찾아보는 거 말이다.(물론, 큼직한 금덩어리는 아니고, 자디잔 금가루다.) 사금 채취 고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렵지 않다. 누구나 우리 하천 어디서나 환경훼손 없이 반짝이는 사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따라가 봤다.

지난 2월26일 오전, 경기도 양평 남한강의 한 작은 지류. 주변 산과 들은 아직 눈에 덮였고, 마른 억새풀 우거진 냇가 한쪽엔 얼음장도 깔려 있다.

큼직한 사금 조각들도 적잖이 나온다.

“기서 좀 잡힐 거 같네요.” 사금 탐사 4년 경력의 ‘e맑은세상’도, 입문 넉달째인 ‘고기장사’와 ‘제이디짱’도, 이제 한달 된 초보 ‘겨울소나타’도 방수복에 고무장갑을 낀 차림으로 물에 들어가 탐사경을 들여다본다. 나이는 30~40대,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다. 닉네임(카페 아이디)으로 서로 통하는 이들은 국내 유일의 ‘취미 사금 탐사’ 인터넷 카페인 ‘금을 줍자’의 회원들이다.

이들은 사금을 채취하는(줍는) 행위를 ‘잡는다’고 표현한다. 다슬기 등을 잡는 ‘잡는다’일까, 한몫 잡는다의 ‘잡는다’일까. 양쪽 다 맞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보니, 흐르는 물길 가운데서 몸을 수그리고 수경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다슬기 잡는 자세다. 그나저나, 저렇게 해서 과연 금을 찾을 수 있을까.

지난 2월말 양평의 하천에서 동호인들이 탐사경으로 사금을 찾고 있다.

“자, 이제 잡았나 확인해 볼까요.” 30분쯤 탐사경을 통해 여기저기 물속 바위틈의 흙과 모래를 수동펌프(석션)로 빨아들이던 ‘e맑은세상’이 물 밖으로 나오며 부른다. 우묵한 플라스틱 판(패닝접시)에 펌프의 흙과 물을 쏟아붓더니, 흐르는 물에 반쯤 잠기게 하고, 쌀바가지 일듯이 접시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패닝). 가벼운 흙모래를 먼저 흘려보내고, 무거운 돌들도 걸러내고 나니 뭐가 뭔지 모를 흙가루만 남았다. 저게 사금이라고?

하지만 그는 다시 접시에 약간의 물을 받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접시를 일어 물과 흙가루를 분리해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뽀얀 가루가 환하게 눈에 들어왔다. 금이다. 자세히 보니, 미세한 금가루 말고도 납작한 금조각(엽상 사금)들과, 작은 좁쌀 모양의 사금(알금)들이 보이고, 그 빛깔은 과연 누런 황금색이었다. 작은 납조각들도 섞였다. 그가 확대경을 꺼내 들이댔다. 가지각색의 싯누런 금조각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탄성이 절로 터질 정도로 눈부신 황금 세상이다.

탐사 경력 5년차 고수 ‘마노’의 말씀. “사금 채취를 하면서 이렇게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금 말고도 다양한 광물 원석 조각들이 나오는데 정말 빛깔이 아름다워요. 황홀경이 따로 없지요.”

“이 정도면 0.5g은 되겠네요. 순도는 80~90%쯤 돼 보입니다.” 스포이드로 금가루를 물과 함께 조심스럽게 빨아들인 ‘e맑은세상’은 사금과는 별도로 납과 쇳조각을 따로 모아 담으며 첫번째 채취작업을 마무리했다. 채취한 사금과 금속들은 유리병에 담아 채취 지역 등을 표시해 보관한다.

지난해 10월초 홍천의 한 냇가에 모인 사금잡이 고수들. 사금 채취의 건전한 취미생활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다.

국내에서 ‘취미생활로서의 사금 채취’가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몇년 새 ‘황금에 눈 먼…’ ‘황금 만능주의’ ‘일확천금’처럼 ‘금’이란 단어에 따라붙어온 불편한 표현들을 씻어내고, 건전한 주말 취미생활이자, 어엿한 레저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짧은 대중화 기간에도, 다양한 도구를 개발해 보급하면서 철저히 수작업으로 사금을 채취해온 ‘개념 있는’ 사금잡이들이 있어서다.

“그동안 금 채취 하면 금광, 광산업자를 떠올리면서 부정적 시각이 자리잡아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작업으로 하는 취미로서의 사금 채취는 엔진 달린 대형 장비로 흙을 파헤쳐 대량 채취를 노리는 업자들의 행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인터넷 카페 ‘금을 줍자’ 운영자인 ‘태양중심’은 사금 채취가 세간에 부정적으로 비칠까 조심스러워했다. “미국·호주나 일본에선 사금 채취가 건전한 취미생활로 자리잡은 지 오랩니다.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고 지역별로 대회를 열기도 하지요.” 그는 지난해 가을, 취미활동으로서의 ‘사금 탐사와 채취’를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 책 <주말 취미생활 사금 채취>의 저자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사금 채취를 취미로 즐기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사금잡이 고수들의 말을 종합하면 거의 매주 활동하는 마니아층만 200~3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고수들은 조만간 마니아층이 급속한 확산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금을 줍자’ 회원 수는 3월초 현재 6750여명. 지난해 가을 3000여명에서 6개월 만에 갑절 이상으로 급증했다. 부부, 가족단위 탐사자들도 늘고 있다.

매 주말 등산을 하다 지난해 가을부터 사금 탐사에 나섰다는 ‘고기장사’(41)는 “온 가족이 주말을 함께 즐기면서 운동도 되는 레저활동을 찾다가 이거다 싶어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날 풀리면 아내, 두 아이와 물놀이 겸 사금 채취를 다닐 계획”이다.

사금잡이 고수들은 사금 탐사의 매력이 단순히 금을 찾는 데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빠져들수록 학문적 소양이 필요하고, 그만큼 흥미가 배가되는 취미가 사금 채취라고 입을 모은다. 태양중심은 “사금 채취에 빠져들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광물·지질·식물·환경 등 분야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걸 알게 된다”며 “이미 각 분야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분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일부 고수들은 일본의 사금 채취 동호회와 탐사 장비·기술 등 정보 교류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국내에서 개발한 간편하고 효율적인 장비가 외국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사금 채취가 활발한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계획도 추진중이다. ‘금을 줍자’를 이끄는 주요 회원들은 공통된 꿈을 하나 가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사금 박물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채취한 각양각색의 사금들을 유리병들에 담아 보물처럼 모셔두는 이유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아무리 취미활동이라지만 채취한 사금이 많다면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여러 고수들에게 던져본 ‘기대(?) 반 우려 반’의 질문은 금세 무색해졌다.

“이걸로 돈벌이하겠다고 매달리는 순간, 끝장이에요. 그만큼 나오지도 않고요. ‘금에 눈멀면 인생 망가지는 거 순식간’이란 말 유효합니다.” 한 고수가 덧붙였다. “금을 많이 갖고 싶다면, 주말 사금 채취 대신 그 경비로 금반지를 하나씩 사 모으는 게 빠를 겁니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