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06 19:03
수정 : 2013.03.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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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씨와이 초이의 ‘두 개의 그림자’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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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
패션 브랜드 Cy Choi
디자이너 최철용
주축으로 한 패션협업그룹
으로 전시 활동
예쁜 옷 멋진 옷이 아닌
예술행위로서 옷을 가공
유행따라 변하는 옷 아니라
오리지널리티를 완성하고 싶어
패션의 최전선은 패션쇼다. 창조적인 디자이너들은 한 계절 앞서 자신의 색깔과 지향을 드러낸 옷과 그 밖의 것들을 10분 안팎의 패션쇼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그렇게 선보인 작품들 가운데 상품화할 만한 옷들은 공장에서 만든다. 종착역은 그것들이 팔리는 다양한 형태의 옷가게이다. 보통의 디자이너 브랜드 옷들이 창작되고 생산되는 경로이다. ‘보통’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경로를 벗어난 브랜드가 있다. ‘딴짓’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패션 브랜드’로 통하는 씨와이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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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최철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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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Choi)가 그 주인공이다. 이 브랜드의 패션쇼 무대는 여러번 찾았지만, 이들이 그저 ‘브랜드’가 아니라 패션협업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처음 접했다. 패션협업그룹? 그 정체부터 궁금해진다. 이들 그룹에서 패션을 담당하며 선장 노릇을 하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최철용 씨와이 초이 대표를 지난 1일 만났다.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전시장이다.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전시관인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씨와이 초이의 세번째 전시 ‘두 개의 그림자’가 열리고 있었다. 패션 브랜드의 전시이니 당연히 옷이 여러 벌 걸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해였다. “이 전시에 옷을 보러 오신다면 실망하실 거예요.” 최 대표는 말했다. 실제로 전시된 옷은 달랑 세 벌이다. 그것도 멋진 모양새를 강조하기 위해 마네킹에 입혀 놓은 것도 아니다. 전시장을 통틀어 하나 있는 굵은 기둥을 둘러 걸어 놓고,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았다. “씨와이 초이는 패션쇼가 아닌 전시에서는 옷이란 요소를 많이 배제해요. 옷을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 속의 소재로 활용하거나 하죠. 옷을 예술 행위로 가공한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실제 옷을 보여주더라도 예쁘게 보이려 노력하기보다는 전시장에 툭 내려놓죠. 뒤집어 놓기도 하고요.”
이번 전시의 주제는 ‘두 개의 그림자’이다. 지난 1월 파리패션위크에서 선보인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주제이기도 하다. 컬렉션의 주제를 옷이 아닌 다양한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시도는 새롭지만 어렵게 느껴진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씨와이 초이의 이미지와 옷을 떠올려 본다. ‘낯설게 하기’의 방식을 의도했다면 성공한 듯싶다. “미술 전시 가운데 대중에게 익숙한 피카소나 마티스의 작품 전시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죠. 그렇지만 미술 사조가 모두 대중적일 수는 없어요. 개념예술이라든지 하는 미술 사조들은 사실 대중에게는 무척 어렵게 느껴지죠. 그러나 존재하고 있고, 정말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있어요. 씨와이 초이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죠. 저희의 일차 생산물인 옷도 마찬가지 느낌으로 다가갈 거라 생각해요.” 관객들이 낯설어하며 “이게 뭐야?”라고 질타할 수도 있다고 최 대표는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씨와이 초이의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패션 협업물 전시가 긴 시간 동안 유지되면 언젠가는 더 이해할 것”이라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다.
브랜드가 아닌 ‘패션협업그룹’으로서의 씨와이 초이에는 선장인 최철용 대표 외에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선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권진, 그래픽디자이너 김도형, 영상 아티스트 안마노, 일러스트레이터 오정택, 산업디자이너 최근식씨가 함께한다. 전시 작품들도 영상, 사진, 사진을 활용한 그림 등 다채롭다. 대단한 일을 꾸며보겠다고 작정하고 모인 사람들은 아니다. 최 대표는 “어떤 뚜렷한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단기로 모인 그룹이 아니다. 지금은 서로를 모두 파트너로 여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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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씨와이 초이에서 그동안 선보인 룩북과 가방, 도장들.
3. 씨와이 초이 옷을 입은 모델을 사진 촬영한 뒤 재창조한 미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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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대부분 이들이 실제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오물조물 만든 것이다. 전시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의 라운지에 모아 놓은 씨와이 초이의 역사 자료의 만듦새를 꼼꼼하게 훑어보면, 그 노고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매 시기 내놓은 룩북(옷 사진을 모아 놓은 책)과 룩북을 만들 때 쓴 도장, 씨와이 초이의 브랜드 로고를 새긴 첫 표지판, 그간 전시를 통해 선보인 영상 모음 등을 작은 라운지 공간 안에 모았다. 마치 작은 박물관 같다.
씨와이 초이는 느리게 걷고 있다. 이런 전시가 상품으로서의 ‘옷’을 팔 때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패션 브랜드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 이 브랜드는 이런 이미지야’ 하고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가 몇이나 될까요? ‘진짜’(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브랜드는 많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브랜드 속을 이제 20% 정도 채웠다고 봐요. 이 과정에 몇가지 정말 새로운 것을 찾기도 했죠. 이런 새로움을 저희 그룹의 손노동을 통해 이뤄가고 있어요. 20%라도 채울 수 있는 힘이었죠.”
일반 패션디자이너의 삶은 치열하다. 매 시기 새로운 방향과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석달이다. 씨와이 초이의 ‘딴짓’은 과연 지속할 수 있을까? “피곤할 때도 많죠. 하지만 좋아하니까 합니다. 저희가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언젠가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이런 생각은 좀 고쳐야 하는데.(웃음) 비생산적이더라도 앞으로도 꾸준히 테이프 붙이고 색칠하고, 뚝딱거리면서 즐겨볼 생각이에요.” ‘딴짓’의 지속가능성은 ‘재미’에서 온다고 믿는다. 관객 입장에서 그 재미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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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와이 초이(Cy Choi)의 옷은 비이커 이태원과 청담동 매장, 므스크샵(msk shop), 갤러리아백화점 맨지디에스(Man gds)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도 참가한다.
▣ 전시는 24일까지 열린다. 대림미술관의 프로젝트 전시공간 ‘구슬모아 당구장’은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29-4 1층에 자리잡고 있다. 씨와이 초이가 참여하는 관람객과의 대화 ‘페이스 토크’는 10일 오후 4시 전시장에서 열린다. 문의 (02)3785-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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