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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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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③ 지구본 공장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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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때 작업량 엄청나
수도 이전·분리독립
촉각 기울이며 운영 공장을 돌아보다 가장 재미나 보였던 작업은 북반구와 남반구를 조립하는 공정이었다. 15년 경력의 (공장 직원 대부분의 경력이 15년 이상이다) 북반구 남반구 결합 전문가는 탁자와 배 사이에다 지구를 꼭 끼운다. 지구를 꼼짝 못하게 고정시키고 나서는, 꼼꼼하게 확인하려는 표정도 없이, 그저 무심하게, 여기저기를 툭툭 쳐가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충 끼워 넣는다. 곧 지구가 완성된다. 아, 이렇게 쉬울 수가…. 자, 여러분,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우주의 중심에 별들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는데요, 그 공장에는 북반구와 남반구를 결합하는 수많은 조립자들이 살고 있었어요. 별들이 넘치고 넘쳐 공장 창고의 밀도가 높아지고, 이내 빅뱅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창고에 쌓여 있던 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어요. 별들에게 생명이 주어졌고, 시간이 시작된 거예요. 참, 쉽죠? 그런데, 그 많던 조립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자, 아는 분 손들어보세요. 지구본 공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꾸만 우주를 생각하게 되고, 창조주를 생각하게 된다. 우주란 게 무엇인지, 우주 속의 티끌보다 작은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지구본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지, 여기서 살고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지구본 속에 적힌 나라 이름과 도시의 이름이 무슨 소용인지 생각하게 된다. 둥근 지구와 나라 이름과 도시 이름을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지구본을 들여다보는 우리들이야 아무렇게나 상념에 잠겨도 되지만, 공장을 운영하는 분들에게는 이게 다 실무고 스트레스다. “가장 힘들 때요? 심심하면 수도를 옮기는 나라들이 있어요. 나라마다 사정이 있는 거겠지만 그 사람들이 수도를 옮길 때마다 우리는 지도를 바꾸고 지구본 데이터를 업데이트해 줘야 됩니다. 1992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됐을 때 엄청난 작업이 있었고요, 버마가 미얀마로 바뀌기도 했고, 최근에 있었던 큰일은 남수단이 분리 독립했을 때죠. 그런 정보를 빨리 얻어내는 저희만의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 둥근 공 모양에다 지구의 지도를 새겨 넣으면 되는 일 같지만, 간단할 리 없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간단하지 않다. ㅅ지구본 회사는 정확한 지구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적도에 관련된 특허를 얻기도 했다. 지구본의 적도에는 접합을 위해 선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이전에는 그 부분을 적도선이라고 그었지만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다. 적도선이란 건 가상의 선일 뿐인데, 그걸 긋고 나니 실제 땅이 보이지 않았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이어 붙일 때 지도를 안으로 접어 넣는 방식으로 더 정확한 지도를 표현할 수 있었다. 적도선을 그리게 되면 적도 부근의 사람들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지구본이란 어떤 것일까. 동그란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구본도 만들면 재미있겠다)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표시해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 (엉터리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지구본도 꽤 많다고 한다) 재빠른 정보 업데이트도 중요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지구본의 요소에는 디자인도 무척 중요하다. 지구본 디자인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텐데, 바다와 땅을 어떤 색으로 채우는지 보면 지구본에 들어간 정성을 알 수 있고, 나라 이름과 도시의 이름을 어떻게 써 넣었는지를 보면 회사의 꼼꼼함을 알 수 있다. 카토그래퍼가 하는 게 그런 일들이다. ㅅ지구본 회사에는 매일 지구를 들여다보는 카토그래퍼가 있다. 어떻게 하면 도시 이름과 나라 이름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가, 좀더 아름다운 색의 지구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다. 영어와는 달리 문자가 좀더 복잡한 한국어로 지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고충은 크겠지만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둥근 공 모양에다 간단하게 지도를 박아 넣는 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그 좁은 곳에다 압축해 넣는 일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는 지구본을 돌리며 세계 정복을 꿈꾸는 독재자가 등장한다. 실제로 히틀러의 지구본이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지구본의 대서양과 지중해에는 잠수함의 경로를 그려놓은 흔적이 있다고 한다. 지구본을 그렇게 사용한 사람도 있었다. 독재자는 지구본을 보면서 이렇게 좁은 지구를 금방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겠지. 지금도, 지구본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ㄱ팀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지구본이 불티나게 팔리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렇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리비아 내전이 일어났을 때, 지구본이 팔린다. 이라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리비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지구본을 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 나라의 위치를 가르치기 위해 지구본을 사는 것이다. 얘들아, 여기에서 지금 사람들이 죽고 있단다. 이렇게 지구본을 돌려보면 참 가까운 나라인데 말이지, 거기에서 지금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거야. 독재자의 생각처럼, 지구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지구본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은 지구를 완전한 구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지구의 핵에서 바람을 빼는 전문가는 이리저리 굴려가며 지구를 건조시킨다. 완전한 구의 형태가 된다. 동그랗고 단단해진 지구는 커다란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지구는 이제 아주 따끈따끈할 것이다. 팽팽하고, 따끈따끈하고, 온화하고, 주름 하나 없는, 새것인 지구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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