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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3 18:53 수정 : 2013.03.13 18:53

[매거진 esc] 독자사연 맛 선물

매해 여름, 어머니는 냄비 한가득 붉은 음식을 볶아내셨다. 차마 범접조차 할 수 없던 그 음식은 바로 닭발. 일년에 딱 한번, 닭발 볶는 날이 되면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떻게 그런 걸 먹을 수 있냐”는 말만 반복했다. 차마 그 옆에 서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인 듯 닭발을 손질하는 엄마에게 멀찌감치 서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닭발을 정성스레 정리했다. 한평생 매니큐어조차 발라본 적 없는 엄마가 마치 매니큐어를 바르는 듯 조심스레 닭 발톱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흉악한 물건이 얼마나 맛있길래 정성을 들이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집 안 가득 매콤한 냄새가 가득 찰 즈음, 이모들도 하나둘 거실에 자리를 잡고, 일년에 한번 있는 만찬을 즐길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서로의 팔이 닿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엄마 형제들의 만찬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은 닭발을 한 손에 들고, 누구는 쪽쪽 양념을 빨고 누구는 아드득아드득 소리를 내며 닭발을 씹었다. 네 명의 여자들이 둘러앉아 까르륵까르륵 웃으며 닭발을 뜯어먹는 모습은 재밌었고, 능숙하게 뼈를 발라내는 이모들의 솜씨만큼이나 끝없이 이어지던 수다도 즐거웠다.

어느 해에는 나도 닭발 먹기에 도전했는데 새침한 사촌언니도 결혼 후 닭발 모임에 처음 참여했다. 큰이모의 말을 통해 비린 것도 질색, 깔끔하기 그지없는 언니라는 이미지가 내게 깊게 남아 있었고, 그런 언니가 먹는 음식이니 나도 먹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한입 베어 문 순간, ‘아뿔싸, 내가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울며 겨자 먹기로 닭발 하나를 꾸역꾸역 힘겹게 먹었다.

오만상을 찌푸린 내게 누군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아직은 맛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은 곧잘 닭발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그 말을 곱씹는다. 우두둑 한 입에 오늘 쌓인 스트레스를, 우두둑 또 한 입에 말 안 듣는 자식 걱정을 씹어 삼켰을 이모들. 그래서일까? 내게 닭발은 어른의 맛이다. 엄마에게 닭발을 선물하고 싶다.

조선경/서울 광진구 능동

응모 방법 ‘맛 선물’ 사연은 <한겨레> esc 블로그 게시판이나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200자 원고지 5장 안팎으로 올려주세요. 문의 메일에 연락처와 성함을 남겨주세요. 상품 로헤 5종 세트(냄비 3종, 프라이팬 2종) 문의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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