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21 10:55
수정 : 2013.03.2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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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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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야구탓
시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저자
야구에서 에이스는 보통 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발투수를 일컫는다. 연승은 이어가며 연패는 막아준다. 최소 7이닝 이상 소화하여 불펜투수의 체력을 보충해준다. 강력한 구위로 빠르게 수비를 마감하여 타자들의 컨디션을 북돋아준다. 달리 에이스란 칭호를 받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에이스는 동료에게 믿음을 준다. 그리고 믿음에 보답한다.
아이가 태어났다. 2월15일이 딸의 생일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꼭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같이 입고 야구장에 가는 일은 가장 우선순위였다. 작은 저지를 입힌 아이를 목말 태우고, 여러 야구 규칙을 설명하면서 그라운드에 떠다니는 설렘이나 환호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는 우릴 비출 것이다. 주위 관중은 아이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을 하겠지.
아이는 태어나 2주 후, 다운증후군 확진을 받았다. 심장기형 증세를 동반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에 있으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는 여러 증상에 시달린다고 한다. 척박한 복지 환경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불안감, 아이를 고통스러운 세상에 놓아버렸다는 죄책감, 자신의 삶이 수렁 속에 빠지는 것 같은 상실감. 나는 거의 일주일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처럼 살았다.
그렇게 실의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아픈 아이를 살뜰히 챙기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났다. 병원에서 버둥버둥 노는 아이가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아내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직후 선동열과 장채근처럼 꼭 껴안았다. 야구장에 막 들어선 봄날처럼 두근거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아름답다. 게다가 아이는 내 딸이다.
아이는 이제 험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수술을 하고 심장이나 폐의 문제를 이겨내야 한다. 배밀이를 하는 것도, 두 발로 일어서는 것도, 말을 하고 글을 배우는 일도 모두 느릴 것이다.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혼자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함께할 것이다. 세상이 함께할 것이다. 재밌는 게임이 될 것이다. 내가 아이를 지켜줄 것이다. 아이는 잘 견딜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세상의 에이스가 될 것 같다. 대형 신인이 탄생한 것이다.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안고 야구장에 갈 것이다. 혹시 우리를 만난다면, 조그마한 에이스의 볼을 모두 쓰다듬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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