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21 11:08
수정 : 2013.03.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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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작은방
우연수집가
혼자 사는 주제에 거실이 운동장만한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투자처럼 생각되었다. 난 시끄러운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다. 그곳에서 나는 말수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인지 남자답지 않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거실 인테리어 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8인용 식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큰 식탁은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가격과 배송비가 비싸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목재를 직접 사서 길이가 2m30㎝에 달하는 대형 식탁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보는 식탁이었지만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친구와 둘이서 목재를 알맞은 길이로 자른 뒤에 나사못을 박는 간단한 과정만으로 두시간 만에 완성을 하였다. 비용도 7만원이 채 들지 않아 가구를 직접 만드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스스로 감탄을 하였다.
기다란 식탁은 디자인적으로도 거실에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홈 바처럼 보이는 식탁은 오래된 싱크대에서 시선을 분산시켜 주면서 거실을 실용적으로 나누는 역할도 했다.
직접 만든 식탁을 자랑하고 싶어서 집들이를 한달 동안 6번이나 하였다. 그렇게 거실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자 식탁은 다양한 역할이 되어주었다. 남자들끼리 맥주와 피자를 시켜 먹으면서 포커를 치는 향락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진지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숱한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얻게 해준 것이다.
한번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친한 누나와 그의 일본인 친구가 게스트하우스처럼 우리 집에서 며칠 머무른 적이 있었다. 우리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일본인 친구가 선물로 가져온 매실장아찌를 먹으면서 서툰 영어로 서로의 나라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출국을 하는 날 회사에 있었던 나는 배웅을 하지 못했다. 늦은 밤 퇴근 후에 집에 와보니 식탁 위에는 고마웠다는 편지와 함께 갖가지 밑반찬이 만들어져 있었다. 독신남의 가슴에 따뜻한 뭔가가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밥은 배만 채우는 게 아니고 식탁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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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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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 poeticz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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