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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1 11:18 수정 : 2013.03.21 11:18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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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과연 계절이 바뀌는 시기인 듯싶다. 기자가 환절기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뭘까? 오락가락하는 날씨, 사람들의 옷차림? 둘 다 아니다. 바로 매일같이 전자우편함에 쏟아지는 보도자료다.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는 듯 새로움을 강조하고, 세상 누구나 관심을 둔다는 듯 유행을 앞세운다. 연예인들이 걸친 옷과 가방, 신발의 완판(‘완전 판매’의 줄임말) 사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유행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시기, 사춘기를 겪었던 중학생 시절이다. 남들이 다 하는(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다 갖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베네통 책가방부터 펑퍼짐한 스톰 힙합 바지, 현란한 원색 가죽 운동화. 옷이나 가방, 신발뿐 아니라 펜이나 노트마저도 유행하는 캐릭터가 새겨진 것을 갖고 싶어해 부모님에게 안달복달했더랬다.

결국 유행 아이템은 수중에 들어오곤 했다. 뾰로통한 사춘기 중딩은 “남들은 다 갖고 있는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이 빠듯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여러번 혼을 내다가도 그 한마디에 무너지곤 하는 부모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불시 검문을 하셨다. 책상 서랍 속의 문구류를 모두 꺼내다 책상 위에 늘어놓으셨다. “이렇게 많이 있으면서 뭘 그렇게 계속 사대는 거야!”라며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혼을 내셨다. 꾸지람을 듣고 뭐가 그렇게 서러웠던지 펑펑 울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펜 몇 개 더 샀다고 심한 꾸지람을 하는 어머니가 야속했다. 다음날 아침 책상 위에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하면 이런 낭비는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그 뒤로 무엇을 살 때 ‘한번 더’는 나의 소비 제1원칙이 됐다.

요즘 앞다퉈 다루는 유행의 요소는 다음과 같다. 힐링, 네온 컬러(형광색), 트렌치코트, 초경량 러닝화, 김성령 럭셔리룩, 황사 피해 방지 화장품 등등. 하루에 쏟아진 보도자료에서 간추리고 간추린 유행의 현주소다. 아마 푸릇한 새싹이 돋는 완연한 봄이 닥치면 ‘친환경’을 강조한 유행이 넘실거릴 것이다. 유행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시기와 장소를 막론하고 시대를 풍미하는 흐름은 존재했다. 앞으로도 유행은 끊임없이 돌고 돌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가장 반가운 유행은 합리적이고 지구에 폐를 덜 끼치는 방향으로 소비를 하자는 움직임이다. 이런 흐름을 일컬어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라 이름짓는다. 이 칼럼을 통해 여러차례 소개했던 유행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칼럼을 실을 때마다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친구들은 넌지시 이야기했다. “너도나도 언론에서 그런 걸 다루니까 오히려 벽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벌써 나부터도 죄책감이 들곤 한다고. 과연 옳은 방법일까?” 아직 모르겠다. 한번 더 생각해 물건을 사든, 착한 소비자가 되든, 윤리적인 가치와 기준에 따라 소비생활을 하든 그런 개인의 선택이 모여 의미있는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는 믿음밖에 없다. 이것은 유행이 아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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