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27 19:12
수정 : 2013.04.10 18:30
[매거진 esc] 독자사연 맛 선물
5년 전 제주도 여행을 함께 떠난 친한 언니가 있다. 지금은 3년째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낸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그 언니에게 이 맛을 선물하고 싶다. 30대 초반의 두 여자가 제주도 자전거 여행 계획을 세우자 주변에서는 “워~워~” 하며 만류를 하거나 ‘저러다 제풀에 지치겠지’ 하는 불신의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일에 지쳐 있었고 세상에 지쳐 있었고, 자신에게 지쳐 있었다.
제주도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시름과 고뇌, 걱정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모두를 만끽하기에는 우리의 체력은 너무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 지 삼십분도 안 되어 헉헉대던 우리는 지나가던 트럭을 얻어 타고 말았다.
그리고 도착한 바다. 바다를 보고 흥분한 언니가 자전거 앞바퀴가 뒤집어진 줄도 모르고 올라타는 바람에 그대로 한 바퀴를 굴러 입술이 터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다음날 ‘조금이라도 더 달렸다 쉬어야지’ 하는 욕심을 부리다 다리가 풀려 나도 한 바퀴를 구르고 말았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3박4일의 제주도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진짜 제주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숨쉬는 제주도 음식을 맛봤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다녔으면 만나지 못했을 제주도 주민들을 우리는 자전거 덕분에 만났다. 부산에서 시집와서 억센 제주도 여성들에게 삶을 배웠다는 추사 김정희박물관 앞 식당 아줌마의 이야기와 손맛,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아저씨가 안내해준 만원짜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었던 공짜 미역국, 할머니 해녀가 따온 해산물과 소주 반병 등,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제주도의 생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서울에 돌아와서 가끔 생각나는 맛이 있는데, 다름 아닌 ‘제주도 짬뽕’이다. 허기진 배를 쥐고 무심코 들어갔던 제주도의 한 중국집. 우린 둘 다 짬뽕을 시켰는데 가격도 싸고 푸짐했다. 그런데 제주도산 양배추와 양파, 돼지고기, 해산물이 가득한 그 짬뽕은 오직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7성급 호텔에서나 나올 법한 제주도의 맛이었다. 그 맛있는 걸 매일 즐기는 제주도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라면수프 맛이 진한 육지 짬뽕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그 맛을 몇 년째 이렇다 할 데뷔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지친 그 언니에게 선물하고 싶다.
정인선/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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