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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300호 특집 커버스토리
어느 날 갑자기 덜컥! 300만원의 공돈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크다면 큰 돈이지만 또 작심하고 쓴다 치면 그닥 표 나지도 않을 수 있는 돈 300만원의 달콤한 공상에 빠져봅니다. 왜냐고요? esc가 300호를 맞이했으니까요. 놀기 좋아하고 꿈꾸기 좋아하는 10명의 몽상가들에게 돈 쓸 궁리를 들어봤습니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일정을 짜는 과정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를 위해 300만원의 사치를 부려보는 즐거움,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구상해보시죠.
백옥추남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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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만원이 생겨도 술 사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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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님께 깨알조공을 우선 제 주변 만화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재치있게 대답해 달랬는데 답변은 그저 그렇더군요. 재치있게 명품 지갑을 사겠다는 답변. 로또를 전부 사겠다는 답변 등등 시시껄렁. 그나마 그중 가장 맘에 드는 답변은 ‘민구에게 주겠다’였어요. 네~ 민구는 접니다. 각설하고 저라면 하루에 만원씩 여친님께 계좌이체 시키고 싶어요. 수수료가 더 나온다고요? ○○증권에 매월 펀드 10만원 이상씩 투자하면 수수료가 전액 무료입니다!(광고 아닙니다) 포인트는 보내는 사람 이름에 메시지를 담는 거죠. 최대 일곱자이니까. 사랑하는 여친님,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랑 많이 주세요 등등. 손발이 오글거린다고요? 네 알아요. 하지만 전 이미 트위터상에서 팔로어들에게 2012년 팔불출상을 수상한 사람입니다. 원래 그런 놈이에요. 매일매일 보내면 300일이 지날 테고 그날은 여친님한테 시원하게 한턱 쏘고 선물도 사달라고 조를 겁니다. 아니면 그 돈으로 여친님하고 싶은 걸 하게 한다거나. 계획적이면서 로맨틱하지 않나요? 아님 말고. 마인드C 만화가
냉장고는 아느냐 오로라의 신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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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로 유리창 닦아 봤어? 300만원이 생기면 1만원짜리로 인출해 차 수납함을 꽉 채울 거다. 그리고 소개팅을 해야지. 나는 소형차를 타는데, 소개팅한 여자에게 무시당한 적이 있다. 카페에서 얘기할 때는 내 얼굴과 말솜씨에 반했다. 자리를 옮기려고 주차장에 갔는데 여자가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다. 차 때문이었다. 얼굴이 이 정도 생기면 차는 작은 걸 타도 되는 거 아니니, 속으로 말했다. 그래서 시험하고 싶다. 차에 여자를 태운다. “거기 열어서 휴지 좀 줄래요.” 여자는 수납함을 열고 “어머 이게 뭐예요? 휴지가 안 보여요” 말하겠지. “밑에 깔려 있나? 그냥 만원짜리 몇개 집어 줘요. 앞유리 좀 닦게.” 여자의 무릎을 탁 치며 몇 장 올려줘야겠다. “저를 뭐로 보고 이러는 거예요?” 하면 그 여자랑 오래 만날 거다. 한두번 사양하다 챙겨넣으면 그날은 집에 안 들어가는 날이다. 그때부터는 여자를 꼬신다. 급히 살 게 있다고 말하고 백화점에 간다. 마음에 드는 거 고르라는 말도 덧붙인다. 얼마 전부터 ‘지 제냐’(Z ZEGNA)의 코발트빛 재킷이 갖고 싶었다. 150만원쯤 할 테니까 한참 동안 1만원짜리를 세서 계산하고, 여자에겐 아직 못 골랐으면 다음에 사준다고 한다. 미안하니까 저녁은 호텔 식당에서 먹는다. “제일 비싼 음식이 뭐죠? 와인은 여자분이 마시면 집에 안 들어가고 싶어지는 걸로 주세요.” 그리고 두서없이 이야기한다. “나랑 자요.”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면… 섹스를 하겠지? 섹스가 끝나면 고백해야지.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 여자가 웃으면 그는 내 여자친구가 된다. 물론 여자가 허락한다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면 내 애인이 될 영광을 안 줄 거다. 숙박·식사비는 60만원 정도다. 남은 돈으로는 의자를 산다. 사무실에서 자주 생각했다. ‘잘생긴 내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의자에 앉아 일하다니.’ 포파페드레티의 접이식 의자는 튼튼하고 가볍다. 40만원. 차 안에 1만원짜리가 아직 많을 텐데. 그냥 둬야지. 차에 사람들이 타면 말할 거다. “가져. 정신 나간 미남이 두고 갔어.” 이우성 시인
다큐멘터리 감독 선언! 생각해 보니 30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중고 악기와 앰프, 스피커 등을 사서 4인조 밴드를 하나 구성할 수도 있고 참신한 소재의 독립영화 한 편을 만들 수도 있다. 심지어 부동산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찾아보니 순천에 있는 13.2㎡(4평)짜리 가게를 최소 입찰가 270만원(6번 유찰된 가격)보다 조금 더 쓴 가격으로 입찰받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불모지에 가까운 땅을 좀 살까? 300만원이면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묘목을 무려 1000그루쯤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내겐 그걸 심을 만한 여분의 땅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마을 아름답게 가꾸기’에 동참해 달라며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건 어떨까? 마을 이름이 ‘운교리’니까, 구름처럼 하얀 꽃이 피는 나무면 좋겠다. 매화나 목련, 작약, 불두화 같은. 한가한 일요일 오후 달콤한 공상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꿈에서 사라방드(사라반드)가 온종일 울려 퍼지는 음악학교에 갔다. 그 때문인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중고 피아노를 사서 사라방드 딱 한 곡만 칠 수 있을 만큼의 속성 개인레슨을 받아보면 어떨까?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트랙터로 전국 국토 순례에 이어 세계 일주 떠났던 청년 강기태. 얼마 전 전주에 가서 만나보니 헐, 이번엔 리어카 여행 중이었다. 하동에서부터 리어카를 끌고 남원, 임실, 전주를 거쳐 완주의 한 시골 분교로 가서 작은 음악회 같은 걸 열 거라고 했다. 그러고 나면 이번 리어카 여행을 후원하는 지인들 500여명에게 1만원씩을 받아서 네팔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그 여행에 동참해 볼까?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말이다. ‘네팔 아이들은 거의 평생 여행이라는 걸 모르고 산다. 어느 날 그들 앞에 여행신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강기태가 나타나고 함께 노새에 짐을 싣고 여행을 떠난다. 그들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 무심한 듯 쿨한 거의 완벽한 연출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좋다. 일단 중고 카메라부터 사자. 김경 칼럼니스트
더블린의 기네스 내가 마셔주마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하다. 통장 잔액이 300원도 안 되는 처지에 할 얘기는 아니지만, 300만원은 너무 애매하지 않은가. 진짜 300만원을 줄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3억짜리 공수표 정도는 날려줬으면 얼마나 좋은가. 여하튼 그거밖에 못 주시겠다니 300만원짜리 상상력을 발휘해보기로 하자. 어차피 상상 속의 돈이니 한껏 사치를 부려보기로 하자. 역시 최고의 사치는 ‘먹어 치우는 것’ 아니겠는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요리들을 찾아봤다. 캐비아를 가득 넣은 오믈렛, 와규를 갈아 만든 패티에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끼워 넣은 햄버거, 식용 금을 첨가한 아이스크림 등. 근데 이런 것들은 너무 거창해서 되레 사치를 부린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런 고급 재료들은 자주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는데, 배고프면 가장 먼저 라면을 떠올리는 내가 그 참맛을 알 리 만무하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아일랜드가 떠올랐다. ‘우리는 유럽의 검둥이’라고 자조하던 영화 <커미트먼트>의 주인공들이 열정적으로 솔(soul)을 연주하던, 그리고 록밴드 유투가 목놓아 외쳐 부른 ‘블러디 선데이’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아일랜드 말이다. 그런데 이 비극의 고장을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먹는 기네스 맥주는 진짜배기 기네스 맥주에 비하면 너무 맛이 없다.’ 이런 역사의식 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비싼 돈 들여 아일랜드까지 가서는 기껏 한다는 얘기가 겨우 그거냐? 근데 얼마나 맛있기에 다들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일단 더블린 공항까지 가는 왕복 운임이 210만원 정도, 그리고 호텔 숙박료가 대략 1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으니 비행일정 등을 고려해 50만원으로 5일간 숙박을 하자. 그러면 정말 밥값하고 맥주 마실 돈 정도가 남을 것 같다. 맥주 한 잔에 300만원이면 정말 사치 중의 사치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여기에 먼저 말한 오믈렛이나 햄버거 등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다. 그러니 부디 통권 500호 특집 때는 5000만원 정도는 주기 바란다. 박근홍 게이트 플라워즈 보컬리스트
럭셔리 와인 한병 훌렁~ ‘공짜로 300만원이 생긴다면 뭘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내가 뭘 제일 먼저 했을 것 같은가. 당연히 ‘300만원’을 구글 검색 창에 쳐 넣었다. 300만원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도무지 생각나는 게 없었던 탓이다. 생각해보면 300만원은 참 어중간한 돈이다. 뭘 해도 애매한 금액이다. 100만원이 조건이었다면 ‘신발을 사겠다’고 답했을 것이다. 신발은 옷보다 오래간다. 옷보다 더 큰 돈을 써도 죄책감이 덜 든다. 게다가 나는 신발 중독이다. 돈이 생기면 일단 신발을 살 궁리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300만원이라니. 신발 한 짝에 300만원을 쓸 수는 없는데다, 그만큼 비싼 신발 또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글에 300만원을 쳐 넣었다. ‘바람난 아내 뒷조사 300만원 줬더니…’라는 기사와 ‘300만원으로 100억 번 개미의 색다른 투자’, 그리고 ‘리미티드 에디션 와인이 한 병에 300만원…’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300만원은 바람난 마누라 뒷조사를 맡길 수 있는 돈이고, 100억을 벌 수 있는 종잣돈도 되며, 그냥 와인 한 병 값이기도 하다. 셋 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냥 300만원짜리 와인 한 병을 사고 말겠다. 나는 아내가 없고, 300만원으로 100억을 벌려다 10억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클 정도로 돈 관념이 없다. 그러니 답은 와인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꽤 근사한 300만원 탕진법이다. 공짜로 들어온 돈은 공짜처럼 써야 제맛이다. 누구도 초대하지 않고 혼자 식탁 앞에 앉아 300만원짜리 와인을 거침없이 따버린 다음 커다란 글라스에 콸콸 붓고 맛을 음미할 순간도 없이 훌렁 마셔버려야지. 이토록 방탕한 호사라니, 이토록 방자한 사치라니. 김도훈 피처 디렉터
300만원짜리 심리검사에 투척 최근 인기 있는 시에프(CF)의 한 장면, ‘장롱면허 4년, 택시도 무섭고 버스도 무섭지만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 그렇다. 내 얘기다. 장롱면허란 얘기가 아니고, 나도 내가 제일 무섭다는 거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이리도 정체성이 모호한지. 바른 사회 정의를 부르짖다가도, 술 먹고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모른 척 지나치는 이 무심함, 지하철 쩍벌남에게 찍소리 못하고, 한쪽 구석에 더 바싹 붙는 이 소심함,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현빈을 지우고, 동생을 사랑하는 조인성을 짝사랑하는 이 변덕, 한국에서만 유독 비싼 명품 브랜드를 욕하면서도, 세일 시즌을 기다리는 이 이중성이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난 뭘 좋아해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예측할 수 없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궁금하다. 그래서 공짜로 300만원이 생긴다면 뭐에 쓸 거냐란 질문에 답해보자면, 한마디로, 나는 진정한 나를 찾는 구도의 길을 조금 단축시켜 볼 생각이다. 어떻게? 전문가의 도움을 빌려서! 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심리를 꼼꼼하게 조사해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다”라고 얘기해주는 검사가 있다고 한다. 300만원이 조금 넘는다는데 그땐 하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났는데, 공돈 300만원이라면 과감하게 나를 알아보는 검사에 투자할 수 있을 것 같다. 구도의 길도 돈이 있으면 좀 단축되는 좋은 세상이다. 심선애 샘표식품 홍보팀 차장 ■ >[esc] 300호 특집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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