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28 11:31
수정 : 2013.03.28 11:33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천만원쯤 생기면 어떡할래?” 한달 전쯤 남편이 난데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빈둥대며 휴일 오후를 즐기다가 저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습니다. “천만원 생겼어? 왜? 어떻게? 로또 당첨됐어? 회사에 가장 평범한 직원에게 주는 포상제도라도 생긴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추궁을 거듭했지만 남편은 용의주도하게 대답을 피해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청소는 언제 할거야?” “설거지 좀 하지?” 지시사항이 생길때마다 “백만원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며 약을 바짝 올리더군요. “진짜돈이 있기는 한 거야? 없으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텐데” 반협박조로 나가도 “글쎄”라며 끄떡없는 모습입니다. ‘뻥’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혹시나라는 한가닥 기대때문에 요새 성질 죽이고 착한 아내 코스프레 중입니다. 하아~ 돈이 뭐라구요.
300만원이 생긴다면 남편이 애걸복걸해왔던 애플의 노트북 컴퓨터를 사주겠습니다.(사실은 사주겠다고 거짓말하겠습니다.)
안 믿을 게 뻔하니 특별히 싸게 살 기회가 생겼다거나 하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야겠지요. 언제 집에 오냐, 물어볼 때마다 ‘기다려봐 언젠간 오겠지’라고 선문답처럼 말하겠어요. 그러고는 창고에 가까운 공부방 정리와 묵혔던 집안 곳곳의 수리, 몇달째 방치되고 있는 자동차의 큰 얼룩 등을 이 기회에 다 해치울 생각입니다. 최소 한달 정도는 써먹을 수 있는 미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상대방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도달할 즈음에 저는 멋지게 복수극을 마치고 가방에 돈을 넣어 표표히 떠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돼야겠지요. 300만원의 상상.
생각만 해도 고소하군요.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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