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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3 18:45 수정 : 2013.04.05 14:29

왼쪽부터 ‘푸시버튼’ 박승건, ‘카이’ 계한희, ‘쟈니헤잇재즈’ 최지형, ‘제이 쿠’ 구연주·최진우, ‘레이’ 이상현의 작품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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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약진한
남성복 강세
올해도 괄목할 성과
신구 조화 돋보여

지난 3월25일부터 30일까지, 2013년도 춘계 서울패션위크(2013 가을/겨울)가 열렸다. 지난번에 이어 강남이 아닌 강북의 두 곳이 선정됐는데, 여의도 아이에프씨 서울 빌딩과 한남동의 종합 공연장 블루스퀘어였다.

최근 몇년간 서울패션위크에선 ‘남성복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두터운 고객층을 지닌 여성복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꾸준히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발전하는 컬렉션을 목격하는 것이 남성복 컬렉션만의 즐거움이었다. 이번 남성복 컬렉션에선 ‘커다란 한 방’은 없었지만, 신구 디자이너가 조화를 이루며 서울패션위크를 지탱했다.

슈트에 관한 독자적인 해석으로 이름 높은 김서룡 옴므는 울 소재 진보라색 슈트와 밤색 코트처럼 화려하면서도 여백이 느껴지는 남성복을 선보였다. 꽃무늬 자수가 놓인 붉은 바지에 걸친 새하얀 퍼 코트는, 세계 남성복 시장에 불어닥친 ‘모피’ 열풍을 떠오르게 했다.

‘이상한 조합’(스트레인지 아상블라주)이란 주제로 컬렉션을 선보인 레이(디자이너 이상현)는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이래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는 디자이너이다. 몸에 꼭 붙는 감색 더블브레스트(두 줄 단추식) 코트와 가느다란 실루엣의 검은 바지가 이 조합의 가장 얌전한 모습이었다면, 트렌치코트를 변형한 상아색 코트와 코트보다 긴 셔츠의 조합은 ‘왜 레이가 (남성복이면서도) 여성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지’ 대변했다.

오랜만에 서울패션위크에 귀환한 그라운드웨이브(디자이너 김선호)에 붙는 수식어는 ‘가장 한국적인 남성복’이다. “보통 남성복 치수를 몇배 이상 키우고, 그 안에서 다시 어깨와 팔의 형태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김선호) 부드러운 울 대신 딱딱한 펠트를 사용해 부피감을 극대화하고, 보통 내부에 숨기는 재봉선을 바깥으로 드러냈다.

무대 뒤에서 스티브 제이 앤 요니 피의 의상(왼쪽)을 입고 포즈를 취한 모델들. 그라운드웨이브 김선호는 한국적인 남성복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수년간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각기 다른 콘셉트에 맞춰 고른 수준의 컬렉션을 선보이는데, 제너레이션 넥스트(참가 기준은 독립 브랜드 1년 이상~5년 미만의 신진디자이너)에 참여한 몇몇 디자이너의 컬렉션 또한 무척 흥미로웠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한 디자이너 듀오 제이 쿠(디자이너 구연주/최진우)는 남성복 테일러링을 염두에 두고 여성복을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처럼 그 둘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을 슬기롭게 보여줬다. 넉넉한 크기의 검은 울 테일러드 재킷은 같은 소재 치마와 한 쌍을 이뤘고, 긴 코트와 라이더 재킷, 바지까지 통일된 소재를 사용한 모습에서는 젊은 디자이너 특유의 에너지에 세심한 테일러링이 더해진 느낌이었다. 기하학적인 패턴이 들어간 하늘색 실크 원피스와 오버사이즈(넉넉한 크기)의 보라색 윈드브레이커(바람막이 재킷)로 여성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 또한 훌륭했다.

‘콘셉트코리아’로 두번 뉴욕패션위크를 밟은 카이(디자이너 계한희)는 런웨이 컬렉션 경험을 더할수록 디자이너 특유의 유머와 섬세함을 영리하게 조합해낸다. 화려한 그라피티 프린트는 황금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와 스웨트셔츠, 레깅스의 조합은 ‘스트리트 패션’과 ‘기성복’이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가장 인기있는 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스티브 제이 앤 요니 피(디자이너 정혁서/배승연)는 ‘클래식 미트 펑크’라는 주제로 그들이 생각하는 ‘스트리트’와 ‘패션’의 교차점을 풀어냈다. 높은 웨지힐에 시스루 코트를 겹쳐 입고 ‘다이아몬드’와 ‘해골’을 조합한 프린트가 들어간 실크 원피스는 스티브 제이 앤 요니 피의 ‘정석’이었지만,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남성복에선 그대로 길거리에 입고 나갈 만한 옷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은유한 클래식이 고급스러운 여성복을 칭한다면, 펑크는 섹스피스톨스 시대의 영국이면서도 2013년, 우리가 접하는 길거리 문화를 뜻하지 않을까? ‘스티브 요니’의 색이 드러나면서도 점진적인 변화들이 자연스럽게 안착한다는 점에서, 고개 끄덕일 만한 컬렉션이었다.

최고 인기쇼
스티브 제이·요니 피
개성과 변화의 앙상블
불황 탄 보수적 분위기 속
푸시버튼 박승건 단연 튀어

쟈니헤잇재즈(디자이너 최지형)는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한 뒤로 많은 여성이 기대하는 컬렉션 중 하나였지만, 브랜드 콘셉트와 시즌의 주제가 명확하게 겹치지 않은 컬렉션을 선보일 때에는 내심 갸우뚱한 면도 있었다. 디자이너가 절치부심하며 준비한 흔적이 역력한 이번 컬렉션 주제는 ‘헌터 온 더 그레이’였다. 20세기 중반 숙녀들에게 영감받은 컬렉션은 디자이너 최지형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던 지난 컬렉션들과 달리, 이번에는 ‘회색’을 바탕으로 몇가지 색만을 사용했다. 그것은 일종의 제한으로, ‘남성복을 여성복 디자이너가 변형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에 관한 명민한 해답이었다.

서울패션위크를 보면서 종종 드는 아쉬움 중 하나는, 경기 불황의 여파인지 극적인 쇼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이 줄고 상업성에 집중하는 컬렉션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적이면서도 자기 색을 확실히 다진 디자이너가 있었으니, 바로 푸시버튼의 박승건이었다. 콧소리 가득한 샹송 음악과 뚜벅뚜벅 모습을 드러낸 자주색 코트의 모델은 20세기 초반 파리 어느 골목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여서, 어딘지 뻔한 컬렉션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견장 달린 금색 단추의 롱코트와 자주색 더블브레스트 코트는 분명 ‘복고’적이었지만, 그 실루엣까지 답습하진 않았다. 특히 남성 테일러드 재킷과 입은 바지는 요새 길거리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헐렁했고, 지그재그 패턴이 들어간 퍼 코트와 니트 카디건 시리즈는 긴 호흡으로 양껏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 컬렉션의 ‘쉼표’이자 ‘느낌표’였다. 패션 사진가 보리가 찍은 사진을 콜라주 한 에코백에는 ‘패션 피플’을 줄인 ‘패-피’(Fa-Pe)라는 머리글자가 들어갔다. 패션의 과시적인 외양을 비아냥거리던 단어를, 디자이너 박승건은 패션과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로 사용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보고서, 외국 패션위크 사대주의를 떨칠 만한 시금석이 이번 패션위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됐다. 싸이(Psy)와 케이팝을 필두에 둔 한류의 존재를 이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만들어가는 패션 또한, 세계 패션 흐름을 답습하지 않고 독자적인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창구 구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유행을 넘어서, 각각의 디자이너가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 동시에 컬렉션의 옷을 사람들이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조적인 해법이 함께한다면, 여전히 ‘그들만의 축제’에 가까운 서울패션위크가 새로운 한류의 축을 담당할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글 홍석우 패션 저널리스트, 스펙트럼 매거진 편집장·사진제공 서울패션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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