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마도 아소만의 섬무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
|
[esc] 커버스토리
부산에서 배로 1시간
거제도 1.7배 크기
당일 코스로 다녀오는
한국 여행객 부쩍 늘어
“뭘 볼 게 있다꼬 대마도 경치를 보러 갑니꺼.” 부산 국제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난 여행사 직원의 반문이다. 대마도(일본명 쓰시마섬)를 잘 알고 있을 듯한 여행사 직원 입에서 “볼 게 없다”는 얘기가 나올 거란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대마도 여행객들의 말도 볼거리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볼 거 없단 얘긴 들었지. 어떤가 하고 가보는 거지 뭐.”(수원에서 온 할머니·68) “면세품 사러 당일치기로 억수로들 간다카데예. 뱃삯 빼고도 남는다카이 우예들 그래 하는지.”(출국장 흡연실에서 만난 50대 남성) “일본도 아이다. 가봐야 맨 한국 사람이라.”(30대 남성) 취재지 선정을 잘못한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오션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다.
대한해협의 거센 파도 때문에 “멀미약을 드시라”(배에서 나눠준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멀미를 할 새도 없이 배는 대마도 북동부의 작은 항구도시 히타카쓰에 닿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2박3일간 둘러본 대마도 경치는 여행객들의 말씀이 무색하게도 참 아름다웠고, 보고 느낄 거리도 많았다.
먼저 대마도 이름 이야기 한 토막. 일본에선 ‘대마’(對馬)라고 적고 ‘쓰시마’로 읽는다. ‘쓰시마’의 유래에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한국 쪽에서 바라보며 불렀던 ‘두 섬(두 시마)’(두 개의 섬)에서 비롯했을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대마’를 ‘마한을 마주 보는 땅’이란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심정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 부대끼고 있는 섬 대마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부산에서 49.5㎞, 히타카쓰항까지 배 타는 시간은 1시간10분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길이 약 82㎞, 폭 약 18㎞에 면적은 거제도 1.7배 크기인 섬이다.
히타카쓰에서 ‘대마도의 강남’으로 불린다는 이즈하라까지 관광버스로 이동하며 가이드가 안내하는 볼거리들을 둘러봤다. 직행하면 2시간30분 걸리는 거리다. ‘일본의 해변 100’에 선정됐던, 초록 물빛이 돋보이는 아담한 미우다 해변을 둘러본 뒤 섬 북쪽 끝 한국전망대에 올랐다. 가이드는 “맑은 날엔 부산항이 또렷이 보인다”고 했다. 밤엔 광안대교와 고층빌딩 불빛 등 야경은 물론 불꽃놀이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엔 여기서 휴대전화 국내 통화가 가능했으나 지금은 전파를 막아 끊겼다고 한다.
|
돌지붕을 얹은 이시야네 창고.
|
|
미우다 해변.
|
|
쓰쓰자키 전망대.
|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아담한 소도시의 조화
한국 역사 유적도 풍부
맑은 날엔
부산 야경도 보여
팔각정 전망대 옆엔 ‘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가 있다. 1703년 부산을 떠나 대마도로 오던 역관 사절단을 태운 배가 풍랑에 뒤집혀 전원이 숨진 것을 추모하는 빗돌(1991년)이다. 한천석 등 108명의 조선 역관과 안내를 맡은 4명의 쓰시마인이 몰사했다고 한다.
한국전망대에서 한시간 넘게 이동해 도착한 곳은 에보시다케 전망대. ‘쓰시마의 할롱베이’로 불리는 리아스식 해안, 아소만의 섬무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아소만 섬들과 함께 360도가 조망되는 대마도 최고의 전망대다. 올록볼록한 섬들과 새로 돋은 연초록 잎들로 덮여가는 산줄기 사이로 스며든 짙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내려오면서 보니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붉은 동백꽃이 만발해, 한국 남해안의 한 섬처럼 여겨졌다.
바닷물에 잠긴 도리이(신사 문)들이 이채로운 와타즈미 신사에 들렀다. 하늘신과 바다신을 모셨다는 곳이다. 고종황제 황녀인 덕혜옹주(1912~1989)가 1931년 쓰시마 도주의 조카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당한 뒤 대마도를 방문해, 이 신사에 들렀다고 한다. 대마도는 두 개의 섬처럼 보이지만, 본디 하나의 섬이었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군이 구축함 등을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1900년 만제키 운하를 뚫었다. 만제키 다리를 건너 대마도의 가장 큰 도시인 이즈하라로 진입했다.
|
쓰쓰마을의 거목.
|
대마도만의 흥미로운 풍경을 좀더 가까이서 보려면 구석구석 개별 여행을 해보는 게 좋다. 이즈하라에서 차를 빌려타고 대마도 남쪽 섬을 한 바퀴 돌며 때묻지 않은 경관을 둘러봤다. 아소만이 보이는 또다른 전망대인 가미자카 전망대(멋진 숲길과 일본군 옛 진지가 볼만하다)를 거쳐 울창한 삼나무·편백나무 숲길을 달렸다. 산기슭에선 숯가마터도 눈에 띈다.
해안마을 고모다에서 고모다하마 신사를 만났다. 13세기 후반 병선 900척을 끌고 일본 정벌에 나선 여·몽연합군(몽고군 2만명, 고려군 1만명)이 이곳을 초토화시켰는데 이때 희생된 이들을 모신 신사다. 청일전쟁 때 전리품이라는 대포알들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가 아담한 농촌 시네 마을에서 만난 대여섯채의 전통 농가 창고다. 돌을 쪼개 만든 판석들로 지붕을 올린 독특한 목조건물이다. 길안내를 한 이즈하라의 주민 오시이 다카시(66)는 “돌지붕(이시야네) 창고는 대마도에만 전해오는 건물로, 지주들의 곡식·의류 창고”라고 말했다.
대마도의 남서쪽 끝을 향해 달렸다. 해안 쪽의 절벽 조야마(성산) 정상엔 백제 유민과 왜군이, 신라 공격에 대비해 쌓은(667년) 한국식 산성 가네다성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산속에서 ‘미녀총’이란 빗돌을 만났다. 한 처녀가 일본 궁녀로 선발돼 끌려가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자결했는데, 이를 기려 세운 것이다.
수중 바위에 세운 등대가 바라다보이는 쓰쓰자키 전망대 주변이 오사키야마 자연공원이다. 쓰쓰마을 태생인 오시이는 “60년 전 이곳에 미군이 주둔했었다”며 “소학교 때 초콜릿을 얻어먹으러 찾아왔었다”고 회상했다. 건물 일부와 탄약고 등 흔적이 남아 있다.
쓰쓰마을의 다쿠즈다마 신사의 울창한 숲에서 아주 멋진 거목 몇 그루를 만났다. 푸조나무·구실잣밤나무·나한송 들로 가장 큰 나무는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가슴높이 둘레 7m가 넘는 엄청난 크기다. 원시림으로 이름난 다테라산 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길 전체가 암반으로 이뤄진 세카와강이 인상적인 아유모도시(은어가 돌아온다는 뜻) 공원을 거쳐 이즈하라 시내로 돌아왔다. 볼거리마다 잠깐씩 머물렀는데도 4시간이나 걸렸다.
시청에서 만난 관광안내소 직원 사지키바라 히데코는 “1천년 가까이 된 거목들이 많아 거목 탐방 여행을 해봐도 좋다”며 “1500년 된 은행나무도 있다”고 말했다.
대마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얼마나 될까. 사지키바라는 “지난해 약 15만명이 찾아 전년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이틀 머물며 섬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여행객은 매우 적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 3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당일 여행객이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면세품 쇼핑객들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대마도에 볼 것이 없다’는 인식의 많은 부분이 왜곡된 여행 방식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마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